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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사고와 현대적 감각을 결합해 새로운 미를 제안하는 스튜디오 왈자.
작은 오브제 하나에도 공간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담는다.

이클립스와 만 시리즈, 노리개 시계 등 대표 작업들이 가득한 스튜디오 왈자 작업실 전경.

세계 디자인 무대에서 한국적 미학이 새로운 언어로 주목받고 있다. K팝과 K콘텐츠처럼, ‘한국적인 것’은 단순히 전통 재현을 넘어 오늘날의 감각으로 해석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 스튜디오 왈자 김윤지, 한어진은 그 흐름 속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을 아트 퍼니처와 오브제, 설치작업으로 풀어내는 젊은 디자이너 듀오다. 지난해 파리 메종 & 오브제에 참가하며 세계 컬렉터와 바이어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경험은, 단일 사례임에도 그들의 한국적 미학이 국제 맥락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됐다. 금속 조소를 전공한 김윤지와 도자 조형을 전공한 한어진은 중고등학교와 대학 친구로, 늘 ‘나중에 같이 작업하자’는 약속을 나누었다. 대학 휴학 후 함께 떠난 유럽 배낭여행은 작업 방향을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여러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드러내는 모습에서 큰 자극을 받았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작업을 하자고 했지만, 정작 한국적인 게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깨닫게 됐죠.” 그런 계기로 ‘한국적인 새로운 형태를 찾아가자’는 목표가 세워졌다.

링크서울 전시에서 선보인 ‘근원의 축’.
얇은 술을 길게 내단 노리개 01 시계.

왈자의 작업은 늘 상반된 개념 간의 긴장에서 시작된다. 비움과 채움, 여백과 밀도, 음과 양처럼 서로 다른 요소가 충돌하고 조화를 이루는 지점을 탐구한다. 이를 현대적인 형태와 감각으로 재구성해, 단순한 오브제조차 공간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힘을 지니게 한다. 대표작인 ‘이클립스’ 시리즈는 일식과 월식의 순간을 조형으로 포착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비어 보이기도, 채워져 보이기도 하는 구조는 음과 양의 교차, 비움과 채움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또 다른 작업 ‘노리개 #01 시계’는 전통 장신구의 술을 현대적 오브제로 확장한 것인데, 얇은 실이 모여 만들어내는 고밀도의 힘을 표현한다. 최근 링크서울에서 선보인 설치작업은 공간과 오브제를 긴밀하게 연결한 사례다. 벽면에 이어진 거울 조형물 ‘근원의 축’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만 잊힌 민족성과 집단적 기억의 씨앗을 상징한다. 함께 선보인 ‘합 MASS’는 이클립스를 공간으로 확장한 듯한 구조로서, 관람자 시선에 따라 비움과 채움이 시각적으로 변화하며 실체 없는 덩어리의 무게를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설치작업은 관람자가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한국적 힘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링크서울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설치작업 ‘합 MASS’.
스튜디오 왈자에서 함께 활동하는 한어진, 김윤지 작가.

작업 과정 또한 두 작가의 시너지가 돋보인다. 김윤지 작가는 안으로 파고드는 섬세한 시선이라면, 한어진 작가는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성향이다. 구상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이들은,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작품을 과감히 접는다. “완벽하게 둘 다 마음에 들어야만 진행해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작업이 나오죠.” 이들의 작업 방식은 충돌과 합의의 반복이며, 그 긴장감이 곧 왈자의 조형 언어가 된다. 앞으로 두 작가는 세라믹 라인을 비롯해 공간 프로젝트로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도 준비 중이며, 오브제와 공간, 일상 속 경험을 연결하는 다양한 실험을 이어갈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곧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왈자가 만든 한국적임’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나왔으면 해요.” 왈자는 작가 자신 안에서 발견되고 공유되는 모든 것이 한국적 미학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오브제가 놓이는 순간, 평범한 공간은 갤러리로 변하고, 형태가 요란하지 않아도 압도적인 힘과 밀도가 느껴진다. 세계가 한국적 미학을 주목하는 지금, 스튜디오 왈자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