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복식의 상징으로 머물던 갓이
이제는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장인 박형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5대째 갓 만들기를 잇고, 연구하고,
새롭게 해석하며 현대와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캐릭터가 갓을 쓰고 등장하며 갓이 다시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유교적 상징이자 예복의 일부였던 갓이 오늘날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바로 장인 박형박이다. 국가무형유산 갓일(입자장)으로서 60년 넘게 이어온 부친 박창영 장인의 뒤를 잇는 그는, 단순히 기술을 전승하는 데 머물지 않고 갓의 역사적 기록을 연구하며 오늘의 맥락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전통 복식의 정점이던 갓은 이제 드라마와 K팝 무대를 거쳐 세계인의 시선을 끄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장인은 이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 오늘날 갓이 전하는 ‘멋’은 무엇일까?


가업을 잇게 된 과정을 들려주세요. 아버지는 경북 예천 출신으로 집안의 갓일을 이어오셨습니다. 워낙 고된 일이라 원래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만, 제가 군 제대 후 의상 전공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죠. 집안 어른들 곁에서 늘 갓 만드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이어졌습니다.
공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나요? 갓일은 분업으로 이루어집니다. 모자부를 엮는 총모자장, 차양(양태)을 짜는 양태장이 중간재를 만들고, 저는 입자장으로서 이를 넘겨받아 직선과 곡선의 형태를 잡고 그 위에 다양한 재를 가미 하고 흑색을 내기 위해 먹칠과 옻칠을 통해 사립, 포립 같은 다양한 갓을 만듭니다. 현재도 총모자, 양태 단계는 제주에 계신 장인 두 분이 맡고, 저는 그 부품을 받아 최종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중간재는 각각 보름 이상, 입자장 단계는 기본 7~10일 걸리고, 옻칠을 2~3회 올리면 그만큼 더 소요됩니다. 특히 사립은 그 위에 실을 한 올 한 올 붙이는 공정이라 1~3개월까지 늘어납니다.
연구자로도 활동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박사 과정 주제를 아예 ‘조선시대 갓 제작 기법’으로 삼고 국내 여러 박물관의 유물을 조사했습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구조를 읽어낼 수 있어 보존 처리에도 직접 참여했지요. 예컨대 손상 부위를 어떤 순서로 접합해야 원형의 직선과 곡선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지, 재료의 물성(대나무, 말총)을 고려해 어떤 보강을 해야 하는지 같은 실무적 판단이 가능합니다. 연구 과정에서 용어도 바로잡았습니다. 대중 매체에 흔한 ‘음양사립’ 같은 분류는 문헌 근거가 약하고, 실제 기록에서는 사립, 포립처럼 간명하게 구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더군요. 이런 조사와 기록, 복원 실무, 그리고 현장 기술 전승을 동시 병행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계기로 세계에 갓이 알려진 이후,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또 한 번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사실 갓의 발음이 영어 단어 ‘God’과 같아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고, 이미 조선 말기에도 서양인들이 ‘모자의 나라’라 부르며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기록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갓의 오리지널리티와 정교한 가치를 더 잘 이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 역시 시각적 매체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는 갓을 단순한 전통 소품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헤드웨어로 보고, MZ 세대는 이를 패션 액세서리처럼 즐깁니다. 전통이 가볍게 소비된다고 우려할 수도 있지만, 저는 문화가 확산되는 하나의 긍정적인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의 전시 반응은 어땠나요? 반응은 일관됐습니다. ‘대나무를 머리카락처럼 얇게 쪼개 직물처럼 엮어내는 방식이 믿기지 않는다’는 놀라움이죠. 한국의 갓은 바구니편처럼 평면으로 엮어서 형태를 만드는 주변국 방식과 달리, 극도로 가는 죽사를 4가닥을 엮고 그 사이에 다시 죽사를 넣어 만들어내는 차양(양태)과정 분을 다시 완만한 곡선으로 만들고 직선의 마름모꼴 모자가 협쳐진 모자입니다. 착용법도 ‘푹 눌러 쓰는 모자’가 아니라 머리에 얹는 예모라는 점이 독특하다고 말합니다. 전시 맥락으로는 프랑스의 모자 박물관, 필리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협업 전시(코리아나 화장박물관과 공동), 미국과 유럽권 등에서 쇼케이스가 있었고, 관계자들과 직접 설명과 질의응답을 충분히 진행한 것도 좋은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매년 국가유산청에서 진행하는 공개 시연 행사에서도 한국 관객보다 외국 관객들이 대나무로 만드는 가는 죽사와 그 재료를 붙이고 가공하여 갓을 만드는 기술적 디테일을 유심히 보며 오래 머뭅니다.
새로운 재료를 활용한 시도도 하셨다고요. 2019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 열린 전시 <수묵의 독백>에서는 ‘흑과 백’이라는 주제에 맞춰 은사(자수용 금속실)를 적용해 은갓을 제작했습니다. 빛의 반사로 백을 드러내도록 의도한 작업인데, 전통 사립의 광택을 다른 재료의 반사 특성으로 치환해본 사례입니다. 또 기록을 근거로 붉은색 실을 한 올 한 올 붙여 만드는 ‘주립’을 재현해보았는데, 당시에는 실물 유물을 찾지 못했으나 이후 유사 사례 유물을 확인해 해석의 타당성을 점검했습니다. 상부 부속인 천계의 독특한 패턴을 평면 오브제로 확장하는 시도, 서양 문화권에서 파티 때 쓰는 작은 모자에서 영감을 얻어 갓을 50% 축소 버전으로 만든 칵테일 갓도 시도해봤습니다. 이런 실험은 어디까지나 전통 기법을 기반에 둔 변주입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갓’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기준을 전제로요.
장인으로서 갓의 현대화를 어떻게 그리시나요?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따라 변주가 필요합니다. 외국 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할 기회도 고민하고 있고요. 다만 ‘갓’이라 불리려면 기본적인 직선과 곡선, 재료의 물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갓이 전하는 멋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선비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구분 없이 쓰일 수 있고, 보는 이마다 다른 해석을 낳는다는 점에서 더 열린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