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얼굴을 바꿔온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나선
그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도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서울 한가운데 던졌다.
건축을 넘어 도시의 감정과 경험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그와의 대담.


‘도시를 다시 사람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토마스 헤더윅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리틀 아일랜드, 베슬, 도쿄 아자부다이 힐스 등 도시 풍경을 새롭게 정의한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감정과 경험을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증명해왔다. 최근에는 노들섬, 코엑스, 갤러리아백화점 리노베이션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연이어 맡으며 서울과의 관계 역시 한층 더 밀도 있게 확장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이번 제5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Radically More Human, 매력 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도시를 더 따뜻하고 감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탐구했다. 서울을 찾은 헤더윅은 “서울이 가진 잠재력은 앞으로 세계 건축 담론을 이끌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서울에서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늘려가며 도시의 풍경과 경험을 재정의하는 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의 손끝에서 어떤 개념과 아이디어가 구체화될지, 그리고 그것이 이 도시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을지 무척이나 기대되는 지점이다. 도시와 건축, 그리고 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았다.



올해의 주제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급진적으로 더 인간적인 도시 Radically More Human’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열악한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다시 자각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새 건물이 더 매끈하고 반짝일수록 좋다고 여기며 ‘무난함’을 정상으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심지어 영향력 있는 사람들조차 “나는 개발자도 아니고 도시계획가도 아니니까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죠. 이번 비엔날레는 우리의 건축 환경이 건강과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자극이 되기 바랍니다. 도시는 원래 경제적 필요에서 발전했지만, 디지털 시대일수록 물리적 경험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우리가 함께 쓰는 공간을 더 넉넉하고 즐겁고 건강하게 만들자는 초대이자 외침입니다.
인간 중심 도시는 기능적, 효율적 도시와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기능적’이라는 단어 자체를 의심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간이라면 그것은 비기능적인 것이죠. 인간 중심 도시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입니다. 삐뚤고 얼룩졌지만 살아 있는 베네치아처럼. 우리가 매끄러운 완벽함에 집착하는 사이 도시는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진정한 기능성이란 사람들이 부수기보다 보존하고 변형하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물일수록 오래 살아남고, 이것이 진짜 지속 가능성입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예민하고 깊이 사고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감정과 다양성에 맞춰 디자인해야 합니다.
1428장의 강철 패널로 구성된 휴머나이즈 월은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휴머나이즈 월은 4층 높이, 90m 길이의 구조물로 수백만 명의 시민이 매일 마주합니다. 비틀리며 열리는 형태는 사람들을 송현녹지광장과 도시 담론 속으로 초대합니다. 그 안에는 서울 9개 구의 시민과, 건축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례들이 담겨 있습니다. 패치워크 형식의 디자인은 한국의 전통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초기에는 ‘비빔밥 벽’이라고 부르자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웃음) 원래 임시 설치물로 계획했으나 내구성 높은 소재 덕분에 이동 가능한 영구 구조물이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모두가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허락’을 주는 것입니다.


서울이 세계 건축 담론에서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나요? 서울은 이미 다른 도시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공공성’에 대한 깊은 배려를 보여줍니다. 공원에는 수천 개의 의자가 놓이고, 광장에는 야외 도서관이 있으며, 겨울에는 보행자들이 몸을 녹일 수 있는 쉼터가 인도에 마련되어 있고, 여름에는 신호등 앞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커다란 파라솔이 있습니다. 이런 사소한 제스처들이 모여
놀라운 ‘관대함’을 만듭니다. 저는 이를 ‘시각적 영양’이라 부르며, 눈과 마음을 채워주는 풍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이 이 관대함을 확장한다면, 감정적으로 건강한 도시 설계의 세계적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건물 디자인이 기분에 영향을 준다’고도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번 비엔날레를 시작했을 때는 사람들의 반응이 냉소적이지 않고, 오히려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건강’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건축 환경은 스트레스, 고립감, 기대 수명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서울은 공공 공간을 공공 보건 시스템의 일부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이 사고방식은 전 세계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앞으로 건축 비엔날레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요? 전시는 수단일 뿐이며, 진짜 목적은 대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가 건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대화는 개발자와 정책 결정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비엔날레의 역할은 바로 그 ‘불씨’를 만들어 건축을 모두의 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공개된 갤러리아백화점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주요 핵심은 무엇인가요? 건물과 주변, 그리고 한강과의 연결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안으로 닫힌 쇼핑몰이 아닌 도시를 향해 열린 공간, 강렬한 실루엣의 게이트 같은 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파사드와 주변 공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공 장소가 되도록 계획했습니다. 서울 시민들이 함께 모이고 쇼핑하며 도시를 즐길 수 있는 정원 같은 새로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뉴욕의 베슬이나 도쿄의 아자부다이 힐스와 비교했을 때, 일부 아시아 도시의 건축 미감은 다소 다른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의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요? 아시아는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이 속도는 위험과 기회를 모두 가져옵니다. 위험은 지역의 질감을 무시하고 외부 미학을 그대로 가져오는 ‘획일성’이며, 기회는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민첩성’입니다. 특히 한국은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정의할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으며, 속도에 깊이를 더한다면 새로운 세계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강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데, 한국 건축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번 건축 비엔날레를 비롯해 노들섬 프로젝트, 갤러리아백화점, 코엑스 외관 리뉴얼까지 주거 및 문화 공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 성장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큰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건축의 매력은 전통과 현대, 야망과 친밀함이 충돌하는 ‘대조’에 있습니다. 마당과 기와지붕을 가진 한옥마을은 현대 건축이 배워야 할 시각적 풍요를 지니고 있고, 서울은 이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건축가, 디자이너, 음악가, 영화감독 등 창의적 커뮤니티의 잠재력도 무궁무진합니다.
총감독으로서 바라본 한국 건축의 미래와 잠재력은 무엇인가요? 한국은 음악, 뷰티, 드라마, 디자인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건축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사람들이 애정을 가진 공간은 오래 지속되고, 철거는 사회가 사랑하지 않는 건물에서만 일어납니다. ‘못생긴’ 건물이라도 개성이 있다면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하는 ‘지루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