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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조명 브랜드 카텔라니 & 스미스의 창립자 엔조 카텔라니가
더쇼룸에서 열리는 전시 <빛을 조각하는 시간>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세리오 강변의 실험실 같은 공방에서 오롯이 ‘손으로 빚은 빛’을 만들어온 그가
빛과 시간, 장인정신에 대한 깊은 세계관을 들려줬다.

<빛을 조각하는 시간> 전은 더쇼룸에서 11월 28일까지.

카텔라니 & 스미스의 ‘스미스’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 당신이 키우던 말의 이름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브랜드 이름에 담긴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카텔라니 & 스미스 Catellani & Smith는 유희성에서 시작됐습니다. 스미스는 제가 키우던 말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제 상상 속에서는 영국 건축가 로건 스미스로 존재했어요. 그는 경마장 복원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인물이지요. 어느 날 저녁, 미노르카에서 로건 스미스와 대장장이의 아들 카를로 카텔라니가 약간 취기가 있던 상태에서 ‘머리와 손으로 만든 조명’을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경영의 스트레스와는 거리가 먼 세계에서 말이에요. 브랜드 이름에는 제 안의 이중성이 담겨 있습니다. 실재와 상상, 장인과 몽상가가 공존하는 나만의 야누스 같은 정체성 말이죠. 처음엔 아이러니였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의 철학이 됐습니다.
‘조명이 빛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에 형태를 준다’는 철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제게 빛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은 이미 사물 속에 존재하고, 저는 다만 그 빛에 형태를 부여할 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직감이었지만, 점차 제 작업 전체를 이끄는 철학이 되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빛은 숨 쉬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빛입니다. 결국 빛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기 위한 것’입니다.
공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나요? 아틀리에는 베르가모의 세리오 강변에 있습니다. 물 흐르는 소리와 작업하는 소리만 들릴 만큼 아주 고요한 곳이지요. 우리는 기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손뿐입니다. 구부리고, 붙이고, 만지는 동작 하나하나가 결과가 됩니다. ‘생산’에 목적을 둔 게 아니라 ‘몸짓의 공예’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완벽함보다 수작업의 우연성과 불규칙함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완벽함은 너무 차갑습니다. 저는 사물 속에 남는 ‘생명’에 더 매혹됩니다. 손의 흔적, 아주 작은 불규칙성, 미묘한 차이 등 이야기처럼 남는 표정 말이죠. 공예란 인간과 재료의 지속적인 대화입니다. 진짜 대화에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고, 우리의 조명은 그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완벽함이 끝이라면, 불완전함은 언제나 ‘시작’입니다.

빛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진 엔조 카텔라니.
바람의 결에 따라 회전하며 다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셰도 Shadow 플로어 조명.
기다란 선 형태의 플로어 조명 에토리노 Ettorino, 책 위에 놓인 작은 테이블 조명은 루나 Luna.
벽면에 거대한 달이 드리운 듯한 모습의 벨라트릭스 Bellatrix 벽 조명.
플로어 조명 Lederam F0과 루나 테이블 조명.
거친 가장자리와 가느다란 금속 구조의 대비가 인상적인 포스트크리스 61 Postkrisi 61 테이블 조명.

더쇼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 <빛을 조각하는 시간>을 통해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는 일반적인 시간이 아닌 ‘내면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천천히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시간 말이죠. 한국 관객이 작품 속 제스처의 평온함, 그리고 천천히 태어나는 빛의 호흡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관람객들이 조명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주의 깊게, 천천히, 그리고 경이로움과 함께 말이죠.
전시를 볼 때 특히 주목하면 좋은 포인트가 있나요? 첫째, 재료의 표정입니다. 표면의 결, 주름, 불규칙한 손의 자취 같은 흔적을 꼭 눈여겨보세요. 둘째, 빛의 작용입니다. 램프 자체보다 공간 속에서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분위기를 감상해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침묵입니다. 작품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공간의 조용한 떨림을 느껴보세요. 그 순간에 숨겨진 시가 드러납니다.
골드문 Gold Moon, 엔소 Ens , 포타 Pòta! 등 대표 컬렉션은 각각 어떤 철학을 담고 있나요? 골드문은 제게 있어 신비의 감정이에요. 달빛처럼 고요하고, 숨 쉬듯 반사되는 금빛 표면은 시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엔소는 순수한 ‘행위’를 표현한 것입니다. 일본 철학에서 배운 공(空)과 연속성의 개념이 녹아 있습니다. 포타는 그 반대죠. 감탄사 같은 에너지, 생명력, 베르가모식 유머가 담긴 조명입니다. 빛도 생기 있고 유쾌할 수 있다는 메시지죠. 각기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빛은 감정이고, 우리 얼굴처럼 다양한 표정을 지닌다는 것을요.
엔소처럼 동양 철학이 조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문화와 가깝다고 느낍니다. 빛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니까요. 각 국가가 빛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다릅니다. 한국의 빛은 섬세하고 시적이고, 인도의 빛은 성스럽고 강렬하고, 중국의 빛은 균형과 재생을 상징하죠. 저는 다양한 문화의 공기와 침묵을 흡수하고, 내 안에서 빛으로 변환되기를 기다립니다.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지금도 100% 수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작업은 유일하게 ‘영혼을 보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는 반복하되, 직감할 수는 없죠. 장인은 흔적과 숨결을 남깁니다. 오류의 여지도 함께요. 세상이 더 빨라질수록 저는 그 반대를 찾습니다. 손이 만든 시간이 바로 제게 진정한 럭셔리입니다.
앞으로 카텔라니 & 스미스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나요? 우리 미래는 혁명이 아니라 ‘이어지는 호흡’입니다. 다음 세대의 스미스는 실재든 상상이든 그들은 자유와 호기심, 창조에 대한 사랑을 이어갈 것입니다. 더 큰 회사를 원하지 않아요. 더 ‘살아 있는 회사’를 원합니다.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가 진심 어린 손길로 빛을 켤 수 있는 한, 카텔라니 & 스미스는 계속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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