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과 ‘협업’을 주제로 런던 곳곳을 하나의 살아 있는
디자인 네트워크로 엮은 제23회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조형적 실험보다 감성적 공감이, 독창성보다 연대의 가치가 두드러진 하이라이트 장면을 모았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London Design Festival(이하 LDF)은 매년 9월, 런던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무대로 전환시킨다. 브루탈리즘 건축과 빅토리아풍 거리를 배경으로, 신진 디자이너부터 글로벌 브랜드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런던의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지난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열린 2025 LDF는 ‘연결’과 ‘협업’을 주제로 디자이너와 지역, 그리고 일상의 경계를 실처럼 엮어냈다. 올해는 사우스뱅크, 쇼디치, 브롬튼, 킹스크로스 등 10개 디스트릭트가 참여했고, 디자인 페어 ‘머티리얼 매터스’와 ‘디자인 런던 쇼디치’가 열리며 디자인의 현재를 보여줬다. 특히 브롬튼 디자인 디스트릭트가 제안한 ‘A Softer World’를 비롯해, 전반적인 키워드는 부드러움, 감성, 그리고 지속 가능성이다. 리 브룸의 ‘Beacon’은 도시 곳곳을 밝히는 조형적 등대로서, 관계와 연대의 상징을 시각화했고, 폴 콕세지의 ‘What Nelson Sees’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게 하는 설치로 큰 화제를 모았다. 다수의 프로그램들 역시 일상 속 경험과 맞닿아 있었다. 디자인이 웰빙과 기억, 인간적 연결성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탐구하는 동시에 지속 가능성, 순환 경제, 소재 혁신 등 오늘날의 긴급한 과제들을 다루었다. 실험적인 바이오디자인과 AI 기반 창의성부터 전통 공예 기술, 커뮤니티 주도까지. 페스티벌은 전통의 보존과 미래를 향한 대담한 비전을 동시에 기념한다. 시각적 자극보다 관계와 지속 가능한 재료의 실험이 돋보였던 올해, 런던은 한층 더 따뜻하고 유연한 디자인의 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Brompton Design District
올해 주목한 공예의 가치
올해 브롬튼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18년간 디스트릭트를 이끌어온 제인 위더스의 뒤를 이어, 뉴욕 기반 큐레이터 알렉스 티에기 -워커가 새 디렉터로 합류한 것. 그가 제시한 주제는 ‘A Softer World’ 다. 강렬한 조형이나 기술적 완벽함보다 손끝의 감각, 감정의 결을 통해 디자인을 다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V&A 의 정원과 갤러리에는 사회와 환경, 기억의 문제를 다룬 설치 작품들이 펼쳐졌다. 특히 자수를 통해 정체성과 귀속감을 탐구한 작가 자카이 시리부트의 ‘There’s No Place’, 광물 폐기물로 만든 도자 설치 ‘The Ripple Effect’ 가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오래된 주택과 상점, 개인 거실이 전시장으로 변한 거리에서는 ‘부드러움 ’ 의 언어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엠마 루이즈 페인의 는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어서 아홉 명의 디자이너 오브제를 놓아 ‘살아 있는 디자인 ’ 을 보여줬고, 샬롯 테일러의 는 30 여 명의 여성 디자이너와 함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사이의 긴장을 탐색했다. 2025 년 브롬튼은 공예의 힘, 손으로 만든 것의 온기를 이야기한다. 부드러움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새로운 강인함임을 조용히 증명하며 런던 디자인의 결을 바꿔놓았다.




Shoreditch Design Triangle
새로운 디자인 페어의 등장
쇼디치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새로운 디자인 페어, 디자인 런던 쇼디치가 개최됐다. 세 가지 핵심 구역(Design at Work, Design Culture, House of ICON)으로 구성되어, 쇼디치 특유의 에너지와 실험정신을 담아냈다. 특히 2LG Studio의 ‘The Green Carnation’은 포용적 살롱 공간으로 퀴어 디자이너를 조명했고, 벤 쿨렌 윌리엄스의 ‘Self Portrait’는 AI와 예술의 융합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설치였다. 또한 RCA MA 디자인 졸업 전시에서는 미래 지향적 디자인 제품들이, 몰스킨 워크숍과 로이스 오하라 바 설치는 관람객 참여와 감각적 경험을 끌어올리며, 단순히 보는 전시를 넘어 체험과 상호작용의 장을 만들었다. 활기찬 거리와 옛 산업 건물을 배경으로 디자인, 문화, 상업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이번 페어는, 쇼디치가 새로운 디자인 중심지로서 가능성이 충분함을 강하게 각인시켰다.

Covent Garden
소재의 미래
이번 페스티벌의 또 다른 페어, 머티리얼 매터스에서는 소재와 제작 기술의 실험이 눈길을 끌었다. 코벤트 가든의 역사적 건물 ‘스페이스 하우스’를 배경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전통적인 공예와 최신 기술이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이 됐다. 금속, 유리, 점토, 섬유 등 전통적인 소재뿐 아니라 재활용 플라스틱, 바이오 기반 복합 소재까지 활용하며, 소재가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고 환경과 연결되는지 보여주었다. 일부 설치 작품은 관람객이 설치 작품을 직접 만지고 체험하며 소재가 가진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페어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었다.


Bankside Design District
런던의 미식 지도
뱅크사이드는 템즈강을 따라 이어지는 런던의 대표 크리에이티브 지역이다. 테이트 모던과 셰익스피어 글로브, 버로우 마켓 등 활기 넘치는 랜드마크 사이에 다채로운 전시와 워크숍들이 펼쳐졌다. 옥소 타워 워프에서는 모자, 세라믹, 가죽 공예 등 25곳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문을 열어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원 바이트 디자인 스튜디오의 전시는 관람객이 도시에 대한 기억을 ‘맛’으로 선택하고 ‘꽃’ 형태로 시각화하며 도시 맛 지도를 함께 만들어갔다. 강변을 따라 뱅크사이드 전역의 푸드 & 드링크 트레일까지 더해져, 걷고 맛보고 즐기는 체험형 페스티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King’s Cross
빛과 소리의 힘
킹스 크로스의 콜 드롭스 야드는 2025 LDF 기간에 톰 딕슨과 슬로 리빙 Slowe Living의 감각적 실험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톰 딕슨은 AW 25 컬렉션을 통해 금속, 유리, 목재와 빛의 조합을 탐구하는 몰입형 설치를 선보였다. 재료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직접경험하며, 새로운 조명 시리즈가 만드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한편, 슬로 리빙× KEF가 선보인 ‘The Listening Room’에서는 가구, 음악, 사운드 설치가 어우러진 감각적 체험이 펼쳐졌다. USM과 협업한 가구 컬렉션, 희귀 디자인 서적, 라이브 음악과 DJ 공연 등 눈과 귀, 공간을 동시에 느끼며 몰입할 수 있었다.


Dalston to Stokey Design District
패션과 창의적 실험의 조화
달스턴에서 스토키 뉴잉턴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젊은 디자이너와 실험적 제작이 만나는 창의적 통로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디스트릭트에서는 유리 불기, 실크스크린, 텍스타일, 도자기 등 다양한 제작 예술을 조명했다. 특히 천연 섬유를 활용한 직조 설치, 재활용 금속과 유리를 결합한 오브제 등 지속 가능한 소재와 새로운 제작 기술을 탐구하는 작품들이 돋보였다. 이 지역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 노우 & 러브는 아티스트 루카 보사니 Luca Bosani의 아이코닉 슈 조각 ‘UPOs’ 등 독창적 작품을 선보였다. 패션과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시각적 언어가 돋보인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