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핀 율의 ‘펠리컨 체어’ Pelikan Chair는
한 세기를 앞서갔던 그의 디자인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유기적인 형태를 기본으로 편안함과 더불어 느껴지는 절제미,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친근하고 귀여운 인상을 주는 나지막한 의자. 1939년에 디자인된 핀 율의 ‘펠리컨 체어 Pelikan Chair’를 처음 본 사람들이 대부분 떠올리는 생각일 것이다. 이름에서 보여주듯 펠리컨 특유의 늘어진 부리와 날개를 연상케 하는 이 의자는 현재에도 널리 사랑받고 있으며 그의 가장 대표적인 디자인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다. 디자인 당시 핀 율은 당대 최고의 캐비닛 메이커인 닐스 보더 Niels Vodder와 함께 펠리컨을 제작해 1940년에 완성했다. 당시 캐비닛 메이커 조합 전시에 출품을 목적으로 단 몇 개의 의자만을 제작한 펠리컨 체어. 하지만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각광받던 대량생산 체제 아래서 그의 디자인은 획기적이긴 했지만 시대의 요구엔 적합하진 못한 가구였다. 그런 이유로 이후 60여 년 동안 프로토 타입과 핀 율의 드로잉으로만 존재한 가구이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엄격한 기하학의 원칙에 입각해 가구를 만드는 보수적인 디자인이 주류로 자리 잡고 있던 상황에서 자유예술과 진보적인 조각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펠리컨 체어의 자유분방하고 유기적인 형태는 심지어 혹독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당시 발행되던 <아키텍텐 Arkitekten> 지의 리뷰에는 그의 작품을 두고 “핀 율이 캐비닛 메이커인 닐스 보더에게 의뢰한 의자들은 그 형태가 매우 희한하다. 대부분의 그의 의자들은 마치 지친 해마와 같은 모습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난날의 평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반세기 이상의 세월을 조용히 인내한 펠리컨 체어는 핀 율의 두 번째 와이프였던 한네 빌헬름 한센(Hanne Wihelm Hansen)과 덴마크 가구 업체이니 ‘원 컬렉션 One Collection)의 노력으로 2001년 독일 쾰른 가구 전시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동시에 20세기 중반에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디자인은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 디자이너의 역량을 재평가해 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윤곽선만이 제시된 드로잉과 극소수의 제품만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펠리컨 체어의 복원은 결코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다. 원 컬렉션은 이 작품의 복원을 위해 스스로를 핀 율의 입장에 놓고 수많은 고민과 시도를 거쳤다. 그 결과 부분적인 몰드로 성형한 몸체와 이와 어울리는 완벽한 재질의 덮개를 장인의 손으로 꿰매고 마무리해 현재의 펠리컨 체어를 완성시켰다.
핀 율에게 있어서 가구는 회화나 조각과 함께 공간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작은 건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한층 완성도가 있어 보이는 것이 그의 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독특한 형태를 가졌지만 결코 과하지 않은 곡선은 작은방이나 거실 혹은 공공장소와 같은 넓은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Finn Juhl (1912-1989)
핀 율은 1912년 1월 30일 코펜하겐 외곽의 프레데릭스버그에서 태어났다. 덴마크의 대표적인 가구 디자이너로 알려진 핀 율은 사실 건축가로서 훈련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독학으로 가구 공부를 시작해 당시 덴마크 전통 가구 장인들의 명성을 뛰어넘었다. 때문에 그가 일생을 통해 남긴 모든 작업은 가구뿐 아니라 건축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작업을 많이 남겼다. 1950년에 디자인한 유엔 신탁 통치 이사회 회의실과 ‘오더룹 Ordrup’에 위치한 그의 자택은 디자이너로서의 그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