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라는 이름의 이동 플랫폼으로 층의 개념을 해체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장 누벨의 대담함과
실험정신 위에서 파리의 시간을 겹쳐낸 까르띠에의 예술적 지향점.


건축은 때로 육안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웅장함 이면의 구조적 섬세함이나, 단단한 설계 위 세워진 유려한 예술 작품 같은 반전적인 요소를 마주할 때면 그 위 차분하게 쌓아올린 건축가의 사유를 조심스레 따라가게 되곤 한다. 지난 10월 개관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오랜만에 그런 유의 감각을 환기시키는 공간이다. 과거의 유산을 간직한채 이어 써 내려간 이야기, 비움을 통해 비로소 완성한 존재감. 건물을 마주한 순간 이곳을 설계한 장 누벨의 상상력과 대담함, 실험정신은 물론 까르띠에가 지향해온 예술적 지향점에 자연스레 감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종의 대표 알랭 도미니크 페랭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후원을 위해 재단을 설립했고, 이후 동시대 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해왔다. 장 누벨이 이곳에 대한 새로운전시 공간 구상을 의뢰 받은 것은 2013년이다. 그때부터 그의 원칙은 확고했다. 본질적인 하중 구조물을 제외하고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걷어내고, 시선은 막힘 없이 공간을 가로질러 관통할 것. 그렇게 한때 루브르 백화점이 자리했던 건물은 오스만 양식의 틀을 유지한 채, 내부 구조를 과감히 비워내며 고전성과 동시대성을 한 프레임 안에 병치시켰다. 변화는 제거에서부터 시작됐다. 내부를 지탱하던 대부분의 벽과 층 대신 ‘기계(Machine)’라는 이름의 다섯 개 대형 철제 플랫폼이 수직이동 가능한 구조로 삽입되었다. 각각 250t에 달하는 플랫폼은 최대 높이 11m까지 자유롭게 위치 조정이 가능해 바닥과 천장의 역할을 유동적으로 전환한다. 전시는 작가와 큐레이터의 의도에 맞춰 자유롭게 플랫폼을 구성할 수 있으며, 덕분에 그 플랫폼의 조합과 위치에 따라 매번 새롭게 구성된다. 고정된 층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극단적인 시도일 수밖에 없었지만, “본 건물의 목표는 다른 곳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고, 전시 방식 자체를 재창조하는 데 있다”는 장 누벨의 철학은 복잡한 설계마저 가능하게 만들었다. 유압, 케이블, 도르래 등 다양한 기술이 결합되어 완성된 시스템은 결국 공간 자체를 움직이는 하나의 무대로 기능하게 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관이 도시와 예술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는 거대한 실험 장치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플랫폼 주변 공간은 좀 더 고전적인 방식으로 마감돼 ‘기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기존 파사드는 철거되고 프레임이 드러나지 않는 대형 유리 패널이 삽입됐으며, 기둥은 165년 전 건축 당시 사용된 생막시맹 Saint-Maximin 석재로 복원되었다. 높이 7m에 이르는 창은 상층과 하층, 거리와 하늘까지 시선을 열어주고, 길이 150m의 유리 캐노피는 인근 아케이드를 연결하며 도시의 흐름을 실내로 끌어들인다. 19세기 파사드로 둘러싸인 가장 오래된 안뜰 옆에는 가장 큰 플랫폼이 자리하며, 역사적 매스와 첨단 구조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공간은 지하 1층에서 지면층, 1층까지 모두 3개 층에 걸쳐 구성되었는데, 총 면적 8500㎡ 중 6500㎡가 전시 용도로 활용된다.



포르마판타즈마 스튜디오가 연출한 개관전 〈상설 전시 Exposition Générale〉는 ‘종합 박물관’의 개념을 재해석하며, 지난 40년간 재단이 축적한 약 600점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선보인다. 클라우디아 안두자르, 제임스 터렐, 올가 데 아마랄 등 작가 1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전시는 건축, 생태, 재료, 미래적 상상력의 네 가지 주제 중심으로 구성된다. 전시 제목은 19세기 루브르 백화점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를 참조하며, 포르마판타즈마는 이 유산을 오늘날 맥락으로 전환해 박물관의 사회적, 실험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팔레 루아얄 지구의 특별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웃이다. 어쩌면 이는 팔레 루아얄 광장을 둘러싼 전략적, 행정적, 문화적, 정치적 거점 사이에서 도시 구성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도 있다.” 장 누벨은 서로 다른 시대가 켜켜이 쌓여 있는 파리라는 도시 속에서 비움과 여백, 그리고 변주를 통해 건축과 미술 공간이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파리 심장부에 자리 잡은 이 현장은 “모든 것은 감각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예술과 도시, 관람자와 창작자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