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숍 팀블룸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김수지 대표는 매 시즌 콘텐츠를 달리하면서도
그 바탕의 정신과 아이덴티티는 점점 더 단단히 다지며 팀블룸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팀블룸이 작고 개성 있는 숍들과 더불어 가로수길을 조용히 지키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곳은 ‘호기심의 방(Cabinet de Curiosités)’ 같은 곳이었다. 다른 숍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답고 독특한 물건들이 늘 시선을 사로잡았다. 팀블룸이 점점 번잡해지는 가로수길을 떠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후 서촌에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본래의 정체성에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서촌은 주변에 오래된 시장과 학교가 있어서 아이들도 다니고 어르신들도 만날 수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아주 풍성한 동네예요. 고요함과 동시에 북적북적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고요. 저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분들이 많고 손님들도 팀블룸을 더 아껴주시는 것 같아요. 이곳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김수지 대표는 20년 전 팀블룸을 시작할 때부터 화려하거나 빠르고,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과는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왔다. 단추 하나도 직접 공들여 독창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는 ‘크래프트 브랜드’들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단독으로 판매해왔다. “팀블룸을오픈한 후 미나 퍼호넨 Mina Perhonen의 미나가와 상이 와서 옷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으로 책갈피를 만들어주었어요. 제가 천장 형광등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니까 조명을 디자인해 노트에 쓱쓱 그려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만든 조명은 아직도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앙리 쿠일 Henry Cuir은 소개할 때 가죽 도구를 한쪽에 전시했는데, 앙리가 와서 직접 팔찌를 만들어주기도 했어요. 그때는 모두 시작 단계였고,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나간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미나 퍼호넨, 안티파스트 Antipast, 에바고스 Ebagos, 앙리 쿠일. 이 네 개의 크래프트 브랜드로 시작한 김수지 대표는 점점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분야를 확장해 지금은 수십 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엽서, 열쇠고리부터 코트와 가방까지 팀블룸에서 선보이는 모든 제품의 바탕에는 크래프트가 있다. ‘골무’를 뜻하는 팀블 Thimble과 ‘베틀’을 뜻하는 룸 Loom을 합성한 이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가로수길에 있을 때에는 1층 숍과 별도로 2층에 크래프트 노하우 Craft Know-how라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나무, 유리, 펠트, 도자 등 다양한 크래프트 전시를 기획해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크래프트 작가들과 협업해서 오리지널 작업을 만들어나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금형으로 독특한 장신구를 만드는 이예지 작가와 협업한 ‘인센스 홀더’, ‘소중한 보석함’ 시리즈와, 펠트로 조형작업을 하는 왕상건 작가와 협업한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얼굴 브로치 등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여러 곳에서 소개하는 유명 브랜드나 작가보다는 팀블룸만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 수 있는 파트너들과 일하고 있습니다.”




김수지 대표는 매 시즌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많은 브랜드에서 제품을 선택해 팀블룸만의 컬렉션을 구성한다. 어떤 시즌에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아틀리에 브랜드에 집중하기도 했고, 어떤 시즌에는 좋아하는 그림책들에서 색감을 얻어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했다. 최근 김수지 대표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것은 그림책(Picture Book)이다. “예전부터 그림책을 좋아했어요. 언어를 초월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잖아요. 바잉하러 출장 가면 옷만 보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는 책방에 가서 그림책을 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모은 2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오래 인연을 이어 온 제주의 어린이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했어요. 5년 전부터는 여러 작가의 그림책을 보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있어요. 언젠가 1인 출판사를 만들어서 제 취향과 생각을 담은 그림책을 내고, 좋아하는 그림책을 공유하며 영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팀블룸의 20주년 역시 ‘비주얼’로 기념하고 기록해서 기억하고 싶었다. 종종 방문하는 서울식물원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러스트레이터 이이오 작가에게 부탁한 그림으로 20주년 포스터와 반다나, 손수건을 제작했다. 팀블룸 매장을 사실 그대로 세밀하게 담은 그림에는 팀블룸 스태프와 손님들, 그리고 손님의 반려동물들이 따뜻하게 어우러져 있다. 팀블룸을 자주 방문하는 반려동물들만 모은 그림에서는 오랫동안 동물 단체에서 봉사해온 김수지 대표가 동물 친구들에게 전하는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미나 퍼호넨이나 안티파스트와 협업한 오리지널 제품을 꾸준히 선보여왔고, 20주년 특별 에디션도 준비했어요. 그런데 이번처럼 팀블룸이 기획해서 자체 제작한 제품은 처음이에요. 앞으로 조금씩 만들어보고 싶어요. 팀블룸의 유머러스한 생각을 담은 캐치프레이즈를 넣은 여고생부터 할머니까지 입어도 사랑스럽게 힙한 제품을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김수지 대표는 오픈 때부터 함께한 아이코닉한 브랜드들과 더불어 시즌마다 3개 정도의 브랜드를 꾸준히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아직은 부족해 보이더라도 아이디어가 특별한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발굴하는 일이 정말 신이 나요. 처음에 미나가와 상을 만났을 때처럼 앞으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겠죠.” 그 어느 분야보다 빠르고 치열한 업계에서 20년을 이어온 것은 대단한 일이다. ‘골무의 세심한 손길과 베틀의 정직한 짜임’처럼 김수지 대표가 처음부터 소중히 여긴 가치, 그리고 그동안 여러 경험과 시련을 겪으며 얻은 생각을 양분 삼아 서촌의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기를, 팀블룸의 오랜 팬으로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