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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술 시장은 거대한 흐름보다 저변의 문화력이 방향을 결정한 한 해였다.
팬데믹 이후 더욱 뚜렷해진 ‘낮은 곳에서 시작된 문화의 힘’이 고유 유산을
다시 끌어올리며, 세계 미술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다.

서봉총 금관.

2025년 미술 시장은 판데믹 직후의 활황기(2011~2022년)에 비하면 다소 조용하게 흘러갔다. 메이저 아트 페어와 경매 결과를 보면,고가에 거래된 작품중에는 현대미술보다는 고전 명작이 인기를 끌었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검증된 가치에 투자하겠다는 보수적 성향이 강해진 탓이다. 그러나 총매출은 줄어든 가운데서도 매매 횟수는 오히려 증가하여, 미술 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중저가 시장에 활기를 이끌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굿즈 매출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이제는 이 분야도 미술 시장에 집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난 6월 아트 바젤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아트 페어 특별판으로 나온 100개 한정판 ‘라부부’다. 약 36만원(245달러) 하는 인형이 23분 만에 품절되어, 그 다음 날 바로 재생산한 인형 가격이 약 250만원(1733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라부부는 홍콩 작가 카싱 룽 Kasing Lung(1972년)의 작품으로서 그는 본래 동화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출발했다. 2015년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몬스터 시리즈와 대표 캐릭터 라부부를 발표했고, 그 이후에는 피규어와 디자인 IP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회화 작품을 중심으로 갤러리 전시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케이팝 데몬 헌터스’ 효과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은 굿즈가 연일 매진되며 올해 약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관람객은 이미 지난 10월 500만 명을 돌파하여 지난해에 비해 약 70% 증가했고, 루브르, 바티칸,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이어 관람객 집계 세계 5위의 미술관으로 올라섰다. 리움 미술관에서는 ‘호작도’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주요 미술관 곳곳에서 많은 외국인 관람객이 눈에 띈다. 특히 경주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최근 개최된 APEC을 계기로 신라 금관에서부터 K-Po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널리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집트 키이로에 개관한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바닥을 다지며 위로 올라가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문화의 힘이다. 정치력, 군사력,경제력이 국제 질서를 좌우하고, 강력한 국가적 힘의 과실로 문화가 융성하는 것이라 여겨진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은 거꾸로다. 문화가 퍼져나가면서 한 국가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호감도를 높이면, 그 결실로 산업과 국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문화안에서도 상하류가 있어, 엘리트 문화보다 비주류로 취급받던 대중문화가 그 힘을 선도하고 있다. 라부부의 배경인 북유럽 신화도, 케데헌의 원천인 민화도, 한류 문화를 이끈 드라마와 K-Pop도 모두 낮은 곳에서 출발한 문화다.

1592년 호작도, 리움미술관 전시.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문화도시’를 꿈꾸며 이런 전략을 들이밀고 있다. 최근 카이로에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은 이집트 미술을 보려면 서구 강대국의 유명 박물관에 가야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을 되짚는 결과물이다. 자국의 문화를 자신들의 관점으로 소개하고 연구함으로써 문화적 정체성을 되새기고, 나아가 해외에 불법 반출된 유물을 반환받는 정당성도 강화된 셈이다. 아프리카에서는 그들의 춤을 민속을 넘어서 현대무용이자 문화로 확장시키는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은 세네갈 다카에 있는 ‘에꼴 드 사블르’로, 세네갈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제르맨 아코그니가 설립한 유서 깊은 기관이다. 몸과 퍼포먼스가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적 흐름에 맞게, 아코그니는 베니스 댄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어, 피나 바우시, 샤넬, 반클리프 아펠 등과 협업을 이끌며 춤을 통해 아프리카의 문화와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다. 문화를 통해 낯선 세계에 대한 경계심이 깨지고 호감이 생기면, 그들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는 곧 제품 구매 그리고 관광으로 이어질터, 고유 문화가 산업을 이끌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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