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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품을 현실 속 조각으로 구현해내는 오묘초 작가. 그의 작업은 미래를 향한 상상이 아니라, 미래에서 현재를 되돌아보는 시선에 가깝다.

오묘초 작가의 작업실.

“SF는 미래를 발굴하는 고고학이다.” 문학평론가 프레데릭 제임슨의 이 말은 오묘초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한다. 그녀는 자신의 조각이 언젠가 미래에서 발견되기를 상상한다. “제 작업에 쓰이는 유리와 스테인리스도 결국은 광물이잖아요. 미래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 이것을 발굴했을 때, 과거인 현재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한번 남겨보고 싶었어요. ‘미래 유물’인 셈이죠.” 오묘초 작가는 생물학에 대한 관심과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 이후의 세계와 인간 존재를 거시적 관점에서 탐구해왔다. 흘러내리는 듯한 주물 조각과 그 사이 매달린 투명한 유리 조각은 그에게 상상 속 또 다른 생명체다. 이러한 세계관은 2024년 아트 바젤 스테이트먼트 섹터를 통해 국제 무대에 각인시켰다. 발루아즈 예술상 노미네이트라는 영예와 함께, 작업이 언어를 초월해 전달되는 경험을 했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서로 다른 언어권의 뷰어들이 비슷한 해석을 전해줬어요. 공통적으로 통하는 감각이 있다는 게 신기했죠. 작업을 계속해도되겠다는 확신을 얻은 시간이었어요.” 당시 선보인 연작 ‘누디 핼루시네이션 Nudi Hallucination’은 작가의 사이언스픽션적 상상력이 본격적으로 조형화된 결과물이다.

식물 형태에서 영감을 얻는 오묘초 작가의 책상에는 다양한 식물 표본과 책들이 펼쳐져 있다.

2021년 수림문화재단의 예술가 & 과학자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고혜영 뇌과학자와의 교류에서 출발했다. 뇌세포 연구에 활용되는 바다달팽이라는 존재, 수만 년간 환경 변화를 견뎌온 생명체에 대한 궁금증은 상상을 확장시켰다. 극단적 기후 이후 인류는 어디에서 살아가게 될까. 달이나 화성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바다도시는 그가 구축한 서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고, 이 세계는 소설로 쓰인 뒤 다시 물리적 조각으로 출력되었다. 글과 조각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글을 읽지 않아도 조각은 읽힐 수 있고, 조각을 본다고 해서 글을 이해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결국은 ‘나’라는 사람에게서 나온 하나의 큰 작업이 되지 않을까요.” 영상, 조형, VR 등으로 매체를 확장해온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소설 또한 시각예술의 한 형태로 인식한다. “텍스트를 읽는 순간 각자 저마다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다차원적으로 세계를 그리잖아요. 그래서 소설도 시각미술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해요.”

‘Nu Vein’(2025).
파운드리 서울과 함께 NADA 마이애미 2025에 선보인 ‘Nudi Haloid’와 ‘Nu Vein’. 벽에 걸린 평면 작업은 도현희 작가.

런던 유학 이후 을지로에서 작업을 이어오던 오 작가는 여름에 고양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사 직후 다녀온 밀라노의 아트 레지던스, 폰데리아 아티스티카 바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 주조장 중 하나다. 한 달 반 동안 ‘아티장’이라 불리는 테크니션 장인과 함께한 작업은 그의 태도를 바꾸게 했다. “아티장이 가만히 있는 저에게 흙 덩어리를 쥐여주면서 놀지 말고 뭐라도 만들라고 하더라고요. 계획도 없이 손에 흙을 쥐고 있으니 처음엔 당황했지만, 잘해야겠다는 부담 없이 즉흥적으로 만드는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이 있었어요.” 레지던스의 목표인 ‘작업의 태초적 즐거움’을 되찾는 경험이었다. 이후 작가는 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10분씩 즉흥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옥상정원에 설치한 첫 야외 작업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도시 속 낯선 존재처럼 놓인 조각은 환경과 함께 호흡하며 ‘또 다른 생명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리와 알루미늄이 과연 바깥에서 버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견디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이더라고요. 제 조각은 꿋꿋하게 남아 있었어요.” 이 경험은 인간이야말로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그의 작업이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래의 가능성을 한번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끝이 곧 지구의 끝이라는 생각은 인간 중심적이에요. 인간 이후에도 세계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종의 시작일 수 있죠.”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끝을 상상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시작을 사유하는 태도. 그는 자신의 작업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에디터 | 원하영
포토그래퍼 | 모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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