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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서울 미래빌딩에서 열린 이나라 작가의 개인전 의 전시 전경.
의자와 벤치, 폴딩 스크린 등 가구와 조형 사이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였다.
구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가죽 스트랩.

건축과 도시학에서 출발해 조형과 가구, 설치로 확장해오셨습니다.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극적인 계기보다 조용하고 느린 연쇄작용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다양한 삶을 보았고, 자연스럽게 건축과 도시에 매료됐습니다. 도시에서 가장 편안한 곳은 갤러리였고, 건축가보다 예술가들에게 큰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건축의 전통적 언어에서 벗어난 표현 방식을 찾고 싶었고, 건축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드러운 재료와 디테일을 개인 작업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신다고요. 서울과 파리는 서로 다르지만 닮아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다이내믹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도시이자, 저에게는 ‘돌아오기 좋은 도시’입니다. 돌아올 때마다 새로운 틈을 발견하게 되고, 그 감각이 작업에 중요합니다. 서울은 아이디어를 민첩하게 현실로 옮길 수 있는 도시이고, 파리는 강한 창의적 에너지를 가진 도시입니다. 두 도시를 오가는 생활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영감과 에너지 사이에서 작업하게 합니다.

이번 개인전 <The Sun Room>은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전시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희소하거나 사라지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번 전시도 도시에서 점점 희귀해지는 자연에서 출발했습니다. 자연이 도시에 들어올 때 우리는 통제하려고 합니다. 온실이나 솔라리움, 정원이나 화단 모두 인공이 자연을 대하는 익숙한 방식이지요. 그럼에도 자연은 아스팔트의 틈이나 창틀 사이에서 조용하고 꿋꿋이 자라납니다. 그런 장면을 생각하며 ‘풀 Pul’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금속이라는 무기질의 재료와 가죽이라는 유기질의 재료가 서로 뒤엉켜 균형과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인공적인 재료나 형태가 생명력을 갖게 될 때 ‘자연스럽다’는 감정을 새롭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관람객들이 이 의자에 앉아보았으면 합니다. 예상 외로 꽤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나라 작가.

‘풀’ 시리즈에 사용된 금속과 가죽이라는 상반된 재료의 물성은 어떻게 작동하나요? 가구에서 금속은 구조, 가죽은 마감의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그 역할을 서로 나누고 교환했습니다. 곡선의 등받이는 탄성으로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가죽은 섬유질 구조처럼 이를 잡아줍니다. 금속은 무기질, 가죽은 유기질이지만 작품에서는 금속이 오히려 생명체처럼 행동합니다. 가죽과 금속 사이에서 생명과 비생명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과일 감(원형 금속 오브제)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작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도시와 자연에서 힌트를 얻은 만큼 한국의 계절을 담고 싶었습니다. 가을 감은 강렬한 색으로 나무에 매달리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자연의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작품의 알루미늄 감 오브제는 의자 위나 바닥에 놓이거나 가죽으로 매달려 있습니다. 자연과 그 변화를 상징하고, 조형적 의자에 친숙한 스케일을 더해줍니다. 앉을 때 팔걸이처럼 쥐는 느낌도 좋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오늘의 자연’은 무엇인가요?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 보입니다. ‘오늘’ 또한 매우 빠르게 변화합니다. 두 세계가 대립을 지나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작업을 통해 더 잘 대답하고 싶습니다.

파리에 위치한 주얼리 브랜드 부다후드 Budahood를 위해 진행한 가구와 아트 인스톨레이션 작업.
패션 브랜드 아모멘토와 협업해 선보인 파리 패션 위크 쇼.

프라다, 아모멘토 등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도 인상적입니다. 저에게 협업은 개인 작업만큼 중요합니다.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가속시키는 관계입니다. 브랜드의 세계관에 완전히 빙의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프라다 모드’에서는 김지운 감독과 협업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주제로 전시의 아트디렉션과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희미해져가는 도시의 기억을 평상과 모기장에 담아 재해석했습니다. 아모멘토와는 파리 패션 위크 쇼 디자인으로 협업했고, 고고학적 관점으로 아카이브 컬렉션을 새롭게 바라보는 공간과 조형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 이후 파리에서 이어갈 작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틀 뒤 파리로 돌아갑니다. 올해는 새로운 형식의 작업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풀’ 시리즈로 한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했고, 2월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상반기에는 파리에서 이번 시리즈를 이어가려 합니다. 다른 계절과 다른 도시에서 만드는 또 다른 형태가 될 것입니다. 패션 브랜드 협업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이후에도 조형과 공간, 가구 사이를 넘나드는 작업이 이어질까요? 동시에 여러 작업을 하는 편입니다. 공간 작업과 개인 작업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시너지를 냅니다. 이번 개인전을 준비할 때에도 동시에 커머셜한 공간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추리소설과 수학책을 나란히 놓고 넘나들며 읽는 느낌이랄까요.(웃음) 좋아하는 협업자나 브랜드, 주제라면 경계를 두지 않습니다. ‘풀’ 시리즈가 이야기하는 인공과 자연, 도시에 대한 질문은 저에게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 주제입니다. 앞으로의 작업은 ‘풀’에서 시작해 끝없는 연상작용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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