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건축사의 증언이자 서울의 얼굴이었던 힐튼서울에 건네는 뜨거운 작별인사, <힐튼서울 자서전>.

1983년 서울 남산 자락에 들어선 힐튼서울은 한국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도시의 얼굴이었다. 김종성 건축가의 설계로 세워졌던 이곳은 국제행사의 주요 무대이자 외국인 관광의 거점, 그리고 서구 식문화를 소개하는 중심지였다. 18m 높이의 아트리움과대리석 마감, 유려한 곡선의 외관은 오랜시간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요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22년 영업 종료 소식을 알린 지 약 3년 만인 지난 5월, 힐튼서울이 본격적인 철거에 진입했다. 힐튼서울과 인접한 이웃이던 피크닉은 전시 <힐튼서울 자서전>을 통해 이 건물의 자서전을 기록하는 화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건축의 탄생부터 해체, 그리고 그 이후까지 다각도로 조명한 본 전시는 사라지고 있는 건물에 대한 기록을 남기며 뜨거운 역사와 추억이 깃든 힐튼서울에 작별을 고한다.



전시는 힐튼서울이 가진 건축적인 의미를 조명하며 그 안에서 축적된 관계와 기억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한다. 철거 현장에서 회수된 자재, 최초 설계도면부터 관계자들 사이 오간 서신과 현장 증언, 사진 기록까지. 건물이 채 완공되기도 전인 수십 년 전부터 시작한 기록들은 개인의 기억 조각을 모아 하나의 집단 서사를 완성한다. 그 안엔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전문적 주체뿐 아니라, 호텔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온 직원과 단골 투숙객들의 목소리 또한 담겼다. 구조물로서 건축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과 기억을 내포한 장소로서건축을 조명해 하나의 유의미한 ‘자서전’을 완성한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이 다층적으로 얽힌 전시 구조는 하나의 장소가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전시를 위해 복원된 크리스마스 자선열차 또한 힐튼서울을 일상의 일부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애틋한 장면을 선사한다.

건축은 도시의 풍경을 완성하고, 도시는 건축의 얼굴로 기억된다. 언젠가 철거가 마무리된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지만, 그 터에 새겨진 기억과 역사는 여전히 서울의 문화와 정체성을 이루는 소중한 토대로 남을 것이다. <힐튼서울 자서전>은 한 도시와 시대의 상징이던 건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방식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사라지는 건축을 위한 마지막 피날레는 공동체의 일상과 도시의 기억을 오롯이 담아낸 애도인 동시에 그 잔여가 기억으로 전환되는 방식을, 더 나아가 오늘날더욱 빈번해질 건축물의 소멸을 바라본다.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피크닉에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