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파리 디자인 위크는 도시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캔버스로 변모시켰다.
지난 9월 4일부터 13일까지 가구의 혁신과 몰입형 전시, 미식과 나이트 라이프가
어우러지며 파리의 문화적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 재미있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기억의 색채, 오드 프랑주
파리의 중심이자 혁명의 상징적 장소인 바스티유 광장이 프랑스 조각가 오드 프랑주 Aude Franjou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바뀐 모습은 이번 디자인 위크의 가장 큰 주목거리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늘 그렇듯 식물성 섬유와 천연 마 소재를 손으로 감고 엮어내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선 긴장과 유기적 에너지를 담아내는 작품을 보여왔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갤러리나 뮤지엄이 아닌 도심의 역사적 광장에서 전개되어 작가의 작업 세계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 광장의 개방된 공간성과 맞물려 작품이 하나의 집합체이자 풍경으로 읽혔다. 수없이 교차하는 붉은색과 짙은 갈색이 어우러진 섬유 색채는 마치 피와 땅, 뿌리를 상징하는 것 같으며, 장식적 차원을 넘어 바스티유라는 장소가 지닌 저항과 자유, 기억과 역사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상기시켰다.
WEB maisonparisienne.fr


별과 빛의 풍경, 산드라 벤하무
프랑스 문학사의 상징적 장소인 보주 광장 6번지에 자리한 메종 드 빅토르 위고 Maison de Victor Hugo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 산드라 벤하무 Sandra Benhamou는 ‘별과 꽃 Les Étoiles et les Fleurs’이라는 제목으로 특별 전시를 선보였다. 정원 아래 마련된 천 구조물을 통해 프랑스 고급 텍스타일 브랜드 메타포르 Métaphores와 협업해 공간을 빛과 그림자의 무대처럼 연출했다. 공중에 부드럽게 드리운 직물은 마치 시구처럼 흘러내리며, 그 아래에는 그녀의 대표 가구들이 배치되었다. 벤하무는 위고의 문학 속 ‘별과 꽃’이라는 상징적 이미지를 모티프로 삼아 관람객이 머무르고, 앉고,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냈다. 가구들은 단순히 배치된 오브제가 아니라 텍스타일과 빛, 그림자와 함께 하나의 문학적 풍경을 완성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문학과 디자인이 교차하는 드문 기회였던 이번 전시는 위고가 남긴 세계관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시도로 디자인 애호가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WEB sandrabenhamou.com



샹젤리제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목적지, RH Paris
지난 9월, 샹젤리제 23번지에 모습을 드러낸 RH 파리는 미국의 가구 회사 RH(Restoration Hardware)에서 오픈한 예술과 디자인, 미식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이다. 고전과 현대가 교차하는 7층 규모의 내부는 중앙 아트리움의 떠 있는 계단, 그리고 화려한 금빛과 거울 장식, 유리 엘리베이터 등으로 파리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분위기를 전달한다. RH 제작 가구들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장, 고전 건축가들의 희귀한 저서가 진열된 도서관, 멋진 파리의 뷰를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는 루프톱 레스토랑과 세계 최고의 바텐더 콜린 필드 Colin Field의 시그니처 칵테일을 맛볼수 있는 바까지, 미국 최상류층이 추구하는 쇼핑, 예술, 미식의 경험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샹젤리제의 RH 파리를 방문해보자.
WEB rh.com/fr/fr/paris



상상의 조각, AMCA 오벌
프랑스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 AMCA 오벌 OVAL은 오벌 형태와 모듈형 오브제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공간 경험을 선보였다. 오브제가 조각적 토템으로 변신하며, 디자인과 기능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흐리는 것이 이들의 특징인데, 모로코에서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바이브레이션 Vibrations’ 러그는 편안한 휴식의 공간을 만들고, ‘오로라 Aurora’ 시스템은 재활용 알루미늄 모듈을 쌓아 접이식 스크린 또는 테이블 등으로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신작 <베가 Vega 81>은 가리비 껍데기를 활용해 3D 프린팅 기법으로 제작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서스펜디드 오브제와 연결 요소를 조합하며 오벌 형태를 빛나는 조각처럼 재해석한 조명은 1970년대 놀이터와1990년대 일본 팝적 상상력에서 영감을 받은 레트로 퓨처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개념적 디자인과 직관적 상상력이 뒤섞인 이 설치는, 방문객이 자유롭게 공간을 탐험하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상상하도록 초대한다.
WEB amcaoval.com



빛의 질서, 아드렛
젊고 실험적인 디자인에 AMCA 오벌이 있었다면, 고급스러운 소재와 장인정신에는 아드렛 Adret를 주목해보자. 2025년 탄생한 프랑스 가구 브랜드 아드렛은 햇살이 잘 드는 산비탈을 의미하는 이름처럼 공간 속에 자연스러운 질서와 온기를 불어넣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실내건축 디자이너 기욤 지베르 Guillaume Gibert와 바티스트 리치만 Baptiste Rischmann이 설립했다. 이들은 빛과 형태, 그리고 소재가 만들어내는 작은 풍경을 통해 가구 그 이상의 경험을 제안한다. 컬렉션의 중심에는 스위스 디자이너 에스더 헤스 Esther Hess의 1970년대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에스더 Esther’ 의자가 있다. 단일 곡선 구조의 이 의자는 단순히 기능을 넘어 예술적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핵심 아이템이다. 에스더와 함께 배치된 오토 Otto 소파와 메두사 Medusa 벽거울은 공간의 중심과 장식적 포인트를 담당하며, 컬렉션 전체에 통일감과 여유를 부여한다. 원목, 금속, 천연 섬유 등 최상의 자연 재료로 제작한 가구들은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촉각적 경험까지 훌륭하다.
WEB adreteditions.com


책과 예술이 만나는 새로운 서점, 페로탕 북 스토어
파리 마레 지구의 중심, 갤러리 페로탕이 자리한 튀렌느 거리에 새로운 서점, 페로탕 북스토어 파리 Perrotin Bookstore Paris가 문을 열었다. 갤러리와 맞닿아 있는 이 공간은 아트북 숍을 넘어, 동시대 예술과 대중을 잇는 교차점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페로탕 소속 아티스트들의 카탈로그를 비롯해 한정판 아트 프린트, 포스터, 특히 ‘페로탕 에디션 Perrotin Editions’이라는 이름으로 갤러리에서 직접 큐레이션한 제품들까지 폭넓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공간의 벽면은 갤러리 전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서적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컬렉터뿐 아니라 일반 관객도 부담 없이 입장해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WEB storeparis.perrotin.com



파리의 밤을 다시 쓰다, 팔라시오 파리
한때는 연극과 카바레 공연이 이어지던 극장이었고, 또 한때는 화려한 클럽으로 변신해 파리지앵의 사교와 예술적 에너지가 모이던 곳 ‘팔라시오 파리’가 리뉴얼을 마치고 지난 9월 5일 새롭게 문을 열었다. 디자인을 진행한 스튜디오 루이 모르간 Studio Louis Morgan은 팔라시오가 가진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연출을 더해 하나의 무대처럼 공간을 완성했다. 거대한 야자수, 금빛 장식, 극적인 조명은 방문객을 순간적으로 다른 시대로 이끌며 디너와 쇼, 클럽 모드가 교차하는 몰입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게 이미 팔라시오는 파리의 밤 문화를 상징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으며 다시금 ‘빛의 도시’의 심장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WEB palaciopar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