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먹은 아침

호치민에서 먹은 아침

호치민에서 먹은 아침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본 뒤 아침을 해먹었다. 그렇게 경험한 베트남의 맛은 또 달랐다.

열대 몬순 기후인 베트남은 식재료의 천국이다.

어쩌면 호치민은 휴가지로 적당한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낭도 나트랑도 아닌 호치민, 그 복잡한 도시. 하지만 룰렛 판을 돌리다 툭 하고 화살을 던지듯 여행지를 골랐고, 그것이 호치민에 맞아떨어졌더랬다. 우연이 만드는 재미는 언제나 기대 이상이었기에 두려움보단 설렘이 앞섰다. ‘동양의 파리’로 불리는 호치민은 프랑스 점령 당시 사이공으로 불리며 베트남의 수도 역할을 했고, 프랑스 건축양식을 답습한 건물이 도심 곳곳에 즐비하며…. 가이드북을 10페이지쯤 읽다가 책을 덮었다. 음, 이 정도면 충분해. 나머지는 직접 경험하면 될 일이었다. 비행기에 올라 기내 영화를 두 편쯤 보고 나니 공기의 온도와 습도가 달라져 있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에 위치한 메콩 델타는 베트남 최고의 곡창지대다. 이른 새벽이면 까이랑 수상시장이 들어서는데 과일과 채소, 곡물 등 다양한 것을 판다.

열대 몬순 기후인 베트남은 식재료의 천국이다.

현지인 셰프는 코코넛 주스를 보며 “16년은 너무 시고, 18년산이 제일 달콤하다. 30년 이상 된 것은 주로 요리에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도착과 동시에 호치민의 미식을 흩으며 쏘다녔다. 포 레 Pho Le나 포 호아 파스티유 Pho Hoa Pasteur, 포 24 Pho 24 등 다양한 면면의 쌀국수를 도장 깨기하듯 먹어치웠다. 프랑스인들이 멋스럽게 담배를 태우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토끼 고기에 와인도 마셨다. 앤티크 거리를 헤매다 발견한 취향의 카페에서 연유를 넣은 베트남 커피 ‘카페 쓰어다’를 홀짝였고, 도시가 지겨워진 어느 날엔 로컬 여행사의 프로그램을 신청해 일일 메콩 강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수상시장도 구경하고, 라이스 페이퍼와 전통주를 만드는 원주민들의 모습도 보았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했다. 쿠킹 클래스에 등록해 현지인 셰프에게 베트남 요리를 배우기도 했으며, 오토바이가 민족 대이동을 하는 도로 한 켠에 앉아 껌승이니 분팃느엉 같은 스트리트 푸드를 먹는 날도 있었다. 그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는 도시의 경관은 또 다르더라.

라이스 페이퍼를 만드는 메콩 델타 지역의 원주민. 곱게 빻은 쌀을 반죽한 뒤 팬에 붓고 구워 대나무 틀 위에서 말린다.

포 레의 쌀국수. 테이블에 놓인 라임과 고추, 향신채 등을 넣어 먹는다

쌀국수에 넣어 먹는 타이 바질과 민트.

하지만 정작 이번 여행의 버킷리스트는 따로 있었다. 너무 사소해서 좀 쑥스럽지만, 요리가 하고 싶었다. 갓 시장에 나온 신선한 베트남 식재료를 정성껏 다듬어 하나의 음식으로 완성하는 일. 그건 베트남의 미식을 맛보는 또 다른 방법일 것 같았다.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구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창을 내다보면 커다란 잎사귀에 드리워진 정원이, 또 다른 창으로 내려다보면 고즈넉한 신사가 있는 아름다운 집에 머물렀는데(곳곳에서 노리개 같은 아이 물건이 튀어나오는 걸 보니 신혼부부의 집이었던 것 같다), 그 한 켠에 언제든 마음껏 쓸 수 있는 주방이 있었다. 드디어 실행의 날이 왔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노인처럼 설잠에서 깬 새벽, 슬쩍 에코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전날 눈여겨봐둔 로컬 시장이 있었기에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새벽 6시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도 그곳은 시장다웠다. 노점에서는 멜라민 그릇에 밤새 푹 고은 고기 국물과 퍼, 향신채를 담아 나르는 손길이 바빴고, 출근 전의 베트남 사람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열심히 쌀국수를 먹었다. 반쎄오, 반꾸온, 분팃느엉처럼 익숙치 않은 베트남 음식도 거리에 즐비했다. 특히 색색의 식재료는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베트남은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한 열대 몬순 기후다. 채소와 과일이 풍부한 것은 물론이요, 1년에 3모작을 하기 때문에 쌀이 넘쳐난다.

시장의 상인들은 대부분 전통 모자 농 Non을 쓴다.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농은 볕이 뜨거울 때는 양산, 비가 올 때는 우산의 역할을 한다.

전통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

아이러니하지만, 천 년이 넘는 중국과 프랑스로부터의 식민지배 때문에 미식의 수준도 높다. 그것은 시장에서 파는 재료의 다양성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육점에서는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획일화된 부위가 아닌 돼지의 뇌, 젖꼭지처럼 ‘정말 이것도 먹는 거야?’ 싶은 부위가 거침없이 진열되어 있고, 가게에서 파는 달걀도 그 종류와 크기가 훨씬 다양했다. 채소 가게에서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쿨란트로, 마디풀, 레몬그라스, 딜, 시소, 타이 바질 등의 다양한 허브와 채소류, 용과, 망고스틴, 두리안 등의 다양한 열대과일이 빛을 발했다. 아침에 갓 잡아온 듯 싱싱한 생선은 가판대에서 몸을 뒤틀다 바닥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다양한 식재료가 즐비한 로컬 시장.

베트남 사람들은 과일을 빻은 고추를 섞은 소금에 찍어 먹는다.

 

무엇을 만들지 딱히 정하지 않았기에(쿠킹 클래스에서 배운 것은 꽤 전문적이라 시도할 수 없었다) 즉흥적으로 쇼핑을 했다. 일단 맛의 기본이 되는 다진 마늘과 양파, 타이 고추, 셜롯을 집었다. 오크라뿐 아니라 이름 모를 버섯과 항상 냉동으로만 맛보던 줄기콩, 한국에서는 비싸서 마음 놓고 먹지 못했던 딜도 한 단 넣었다. 네모난 바구니에 채소를 담은 뒤 저울에 올리면 킬로그램당 돈을 내는 시스템인 듯 보였다. 에디터가 알아듣든 말든 계속 베트남어로 말을 걸던 아주머니는 이내 체념한 듯, 내야 할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1만8천동. 비닐봉지가 묵직할 정도로 장을 보았는데도 한화로 1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역시나 베트남어로 아침 인사를 하는 에어비앤비 관리인 아주머니를 지나쳐 주방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남의 공간이라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곳곳에 숨어 있는 팬과 도마, 칼을 찾아냈다. 흐르는 물에 꼼꼼히, 정성껏 채소를 씻었다. 나무 도마에 식재료를 썰 때 통통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팬에 식용유를 두른 뒤 매콤한 타이 고추와 마늘을 넣어 향을 냈다. 재빨리 양파와 오크라, 버섯을 순차적으로 넣어 볶았다. 지글지글 끓던 팬에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슬쩍 버섯을 집어 맛을 보았다. 재료가 워낙 좋다 보니 그 자체로도 맛있었지만, 왠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때, 선반에 가지런히 놓인 느억맘 소스가 들어왔다. 느억맘은 작은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베트남의 어장으로, 국물에 넣어 감칠맛을 내거나 소금 대신 쓰는 등 각종 요리에 마구 뿌려대는, 일종의 만능장 같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 살짝 수저에 따른 뒤 팬에 흩뿌렸다. 마지막으로 딜을 손으로 거칠게 찢어 넣은 뒤 재빨리 숨을 죽여 불을 껐다. 꽤 그럴싸한 냄새가 주방 곳곳에 퍼졌다.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 코코넛 주스를 투명한 잔에 따르고, 예쁜 접시를 골라 후식으로 먹을 망고스틴도 담았다.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새가 한숨을 쉬듯 울었고, 하늘의 구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보니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창밖에 펼쳐지는 호치민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현지에서 키운 다양한 식재료를 한입에 넣고 우물대니, 이것이 또 베트남의 다른 맛이구나 싶었다.

베트남은 커피가 유명하다. 사진은 동코이 거리에 위치한 사이공 커피 로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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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문은정

포토그래퍼

문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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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First Coffee] 주얼리와 커피의 만남

[But, First Coffee] 주얼리와 커피의 만남

아담하면서도 하얀 건물의 커다란 아치형 유리 문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곳은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을 전공한 조세라 대표의 주얼리 브랜드 ‘쇼 SCHO’ 의 쇼룸겸 카페다. 쇼는 한국보다 파리에서 먼저 인지도를 가진 탄탄한 브랜드로 SNS를 통해 한국에서도 찾는 이들이 많아 한남동 조용한 공간에 쇼룸을 마련했다고 한다. 주얼리를 보러 오는 손님들이 커피 한 잔 마시며 자유롭게 둘러보고 편하게 쉬었다 갔으면 하는 마음에 숍 공간 뒤 ‘THE ROOM’ 이라는 카페도 오픈했다. 그녀의 브랜드 쇼 SCHO의 쇼룸이라는 의미로 카페의 이름은 ‘더 룸’으로 지었다. 그녀의 감각은 주얼리뿐 아니라 카페 공간에도 가득 묻어 난다. 건물의 벽돌과 흙, 식물 등을 활용하여 내추럴하게 장식한 공간은 창문도 크게 내고 온실 테라스도 만들었다. 프라이빗한 방 두 곳에는 직접 제작한 테이블과 디자인 가구들이 놓여있다. 한남동의 핑크 컬러 카페로 유명한 원인어밀리언의 컵 디자인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전반적인 디자인 작업을 맡은 경험도 있다고. 커피 맛 또한 신경을 많이 썼다. 프릳츠 커피의 원두를 사용해 고소하면서도 묵직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베베라떼로  카페에 오는 여성 손님들을 위해 러블리하면서도 프렌치스럽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커피와 우유가 들어가 순하지만 커피 맛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라떼다. 애완동물 출입도 가능하니 반려견과 동네 산책 후 들려도 좋겠다.

add 서울시 용산구 한남대로 42가길 4

tel  070-8866-7189

open 낮 12시 ~오후 9시

instagram @theroom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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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권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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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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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요리를 아시나요

토사 요리를 아시나요

신사동에 토사 요리 전문점 로만테이가 문을 열었다.

 

토사 요리란 조선시대, 일본 토사 지역(고치현)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도토리묵이나 곤약, 두부, 짚불 요리 등을 알려주었고 그것이 자체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대표적인 토사 요리로는 와라야키를 들 수 있는데, 기장에서 꼼장어를 굽듯 태평양에서 건져올린 가다랑어를 짚불에 굽는 것을 말한다. 로만테이의 홍석진 대표와 천관웅 셰프는 일본에서 토사 요리를 다시 가져와 그들만의 스타일로 풀어놓았다. “선조들이 우리의 식문화를 어쩔 수 없이 고치현에 전했다면, 로만테이에서는 두 문화가 함께 맺은 열매인 고치현의 식문화를 능동적인 자세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대표 메뉴는 역시나 꼼장어구이다. 유기농 짚불에 꼼장어를 초벌한 뒤 숯불에서 간장 소스를 발라가며 굽는다. 슴슴한 일식답지 않게 맛에 리듬감이 있어 술안주로 더할 나위 없다. 압력솥에 야들하게 쪄낸 스지에 소스를 발라 숯불에 굽는 한우꼬리 스지짚불구이나 금태구이를 중화풍 마라 소스에 적용하는 식의 창의적인 메뉴는 셰프의 탄탄한 내공을 기본으로 해 더욱 빛을 발한다.

add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5길 29 2층 tel 070-7722-7308
instagram @roman_tei open 오후 6시~밤 12시(일요일 휴무)

 

상큼한 채소를 곁들인 꼼장어 구이.

불에 구운 뒤 중화풍의 마라 소스를 더한 마라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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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문은정

포토그래퍼

박상국 · 이향아 · 차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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