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격식과 편안함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면서도, 맛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과감한 요리사. 오리지널 넘버스 이찬양 셰프의 세계.

실험적인 비주얼의 카바텔리 파스타, 정식 메뉴는 아니지만 ‘삐딱한 천재’ 콘셉트를 원하는 손님에게 가끔 선보인다.

2026년의 시작은 이찬양 셰프에게 분기점 같은 시기였다. 지난해 말 공개 된 <흑백요리사 2>에 ‘삐딱한 천재’라는 닉네임으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고, 동시에 그가 이끄는 레스토랑 ‘오리지널 넘버스’는 ‘미쉐린 가이 드 서울 2026’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대중 입장에서 볼 땐 뉴페이스의 등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테이블포포’와 수셰프로 근무한 ‘스와니예’ 등을 거치며 10년 넘게 미식 신에서 경험을 축적해온 셰프다. 이제서야 더 많은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졌을 뿐, 그가 쌓아온 시간 자체는 결코 짧지 않았다.

오리지널 넘버스 전경과 이찬양 셰프.

물론 방송이 부각한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일부다. <흑백요리사 2> 에서 심사위원마저 당황하게 했던 ‘의령 메추리’ 요리 역시 그가 오래전부 터 품어온 ‘맛 vs 식욕 감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방송 전에도 이 콘셉트로 팝업을 열어볼까 했는데, 이준 셰프님이 ‘너 그거 하면 요리 인생 끝난다’며 말리셔서 결국 무산됐어요.” ‘맛 vs 식욕 감퇴’에 대한 발상은 프 랑스 전통요리인 오르톨랑에서 비롯됐다. 잔혹한 조리 방식 때문에 신이 보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에서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먹는 것으로 유명한 요리지만, 미식가들이 여전히 찾는 이유는 결국 ‘맛’ 때문이다. 이찬양 셰 프는 여기서 질문을 던졌다. ‘식욕을 억제하는 요소가 있더라도 충분히 맛 만 있다면, 결국 그 음식을 찾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아이디 어는 그의 휴대전화 사진첩과 메모장에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이 일 상생활 중에 접한 장면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 들> 속 담배를 파이에 비벼 끄는 장면에서 착안한 요리나, 방문한 레스토 랑의 플레이팅에서 착안해 안키모를 배설물 같은 형태로 풀어보겠다는 발 상도 있다. 이러한 발상은 시각적 실험에서만 그치지 않고 색, 냄새, 질감처럼 식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감각을 건드려, 거부감과 호기심이 교차 하는 지점을 모색한다.

오리지널 넘버스 전경.
애벌레처럼 보이는 카바텔리 면과 초석잠의 특징을 활용해 플레이팅한 파스타에는 셰프의 ‘삐딱한’ 창의력이 녹아 있다.
유자 퓌레에 다시마 젤과 파우더를 더한 아뮤즈 부쉬.

결국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엔 호기심이 있다. “저 스스로를 생각할 때, 삐딱하기보다는 궁금증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오래 망설이기보다 일단 부닥쳐보는 편이고,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셰프로서의 커리어 역시 그런 성향에 서 출발했다. 학창 시절 친구에게서 우연히 들은 요리학원 이야기는 프랑 스 르 코르동 블루 유학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지금까지 요리사의 길을 걸 어오게 된 것이다. “솔직히 흥미만으로 계속했다면 거짓말이겠죠. 요리사 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거든요. 근무시간도 길고, 처음에는 보수도 낮고 몸 도 많이 지쳐요. 영리하게 생각하면 그만둘 이유가 더 많은 직업일 수 있어 요. 그런데 저는 단순하게 ‘이 길이다’라고 생각했고, 그 선택 자체를 크게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단정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레스토랑 내부.

오리지널 넘버스는 이찬양 셰프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다이닝의 방향 을 좀 더 현실적으로 풀어낸 장소에 가깝다. 2024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목표는 분명했다. 너무 ‘파인’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캐주얼하지도 않 은, 그 사이 어딘가의 공간을 만드는 것. “일반적인 다이닝은 가격대가 높 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친구들도 제가 일하던 레스토랑에 와서 식사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이곳은 그런 장벽을 느껴온 분들도 편하 게 방문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가격대 역시 그 점을 고 려해 설정했고, 손님에게 메뉴를 설명할 때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는지 까지 함께 전해요.” 아이러니하게도 <흑백요리사 2> 이후 오리지널 넘버스는 오히려 처음 그가 의도했던 방향에 더욱 가까워졌다. 이전에는 이미 미식 경험이 풍부한 손님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다이닝 문화가 낯설 던 사람들 역시 호기심을 안고 이곳을 찾는다. 물론 ‘삐딱한 천재’가 만든 ‘식욕 감퇴’ 비주얼의 요리를 기대하고 온 이들에겐 이벤트성으로 그에 걸 맞은 요리를 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오리지널 넘버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하 는 방향은 결국 한 끼 식사가 충분히 즐거운 경험으로 남는 일이다. 이찬양 셰프가 생각하는 좋은 레스토랑 역시 비슷한 기준 위에 있다. “좋은 레스 토랑은 가성비 있다고 느껴지는 곳이라 생각해요. 우리가 1만원짜리 국밥 집에 가면 많은 걸 바라지 않잖아요. 맛만 좋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400만 원짜리 파인다이닝에 간다면 맛 이상의 경험을 기대하게 되겠죠. 결국 지 불한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느껴지면 그게 좋은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해요. 오리지널 넘버스 또한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 되는 걸 목표로 하고요.”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잇는 룸 공간.

디저트 꼬냑 아이스크림.
홀에서 엿볼 수 있는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그가 요리사로 보낸 시간이 어느덧 10년을 넘어섰지만, 이찬양 셰프 에게 지금은 여전히 시작에 더 가까운 순간이다. 여러 분기점을 지나며 요 리사로서 이루고 싶은 성취 또한 조금씩 또렷해지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가 저와는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요리사라면 누구나 목표로 삼 는 것이지만, 당연히 남 일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이번에 미쉐린 가 이드에 등재되고 나니 이제야 한 걸음 뗐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는 헤 드셰프로서 처음 마주한 성취이기도 하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미쉐린 스 타 레스토랑에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스스로를 ‘고급 요리를 하는 사람’이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헤드셰프로서 제 요리를 하기 시작 하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누군가 만들어놓은 요리를 구현하는 것과, 처음부터 요리를 구상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니까요. 예전에 손종원 셰프님이 하신 말이 있잖아요. ‘내가 일했던 곳이 나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 다’라고. 참 멋있는 말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이찬양 셰프가 자신의 이름으 로 구축한 요리 세계는 이제 막 첫 장을 넘겼을 뿐이다.

디저트 꼬냑 아이스크림.

Updated viewCount. Affected rows: 1 Updated viewCount. Affected row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