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어릴 적 여름이면 외할머니는 껍질이 지진 난 듯 쩍 하니 갈라지고, 그 사이를 포슬포슬 비집고 나오는 하지 감자를 삶아주었다.

 

우리맛 공간

 

과자만 달고 살던 삐뚤어진 꼬맹이였음에도, 그 짭조름한 맛과 식감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끝내줬다. 하얀 백설탕에 폭 찍어 한입에 넣고는 오물거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감자는 좀 질척거렸다. 아무리 속을 갈라보아도, 포슬포슬이란 단어보다는 끈적끈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이 맛은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었다. 포슬포슬한 감자가 없었던 건,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감자의 대부분이 ‘수미’ 품종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유야 뭐, 자본의 논리였다. 얼마 전 식품 기업 샘표에서 품종별 감자 테이스팅이 열었고, 그 자리에 셰프와 기자, 농업 전문가 등 40여 명이 참여했다. 테이블 위에는 남선, 새봉, 은선, 금선, 고운, 대서, 다미, 대서, 하령, 추백, 산들, 수미 등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11종의 감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양한 품종의 감자를 삶고, 튀기고, 부치고, 뇨키나 퓌레 등으로 만들어 다양하게 맛보았다. 개인적으로 퓌레는 고운이, 감자전은 추백이 좋았다. 볶을 때는 산들이 맛있었다. 삶은 감자는 당연히, 당연히 남선이었다. 거친 껍질에 분이 포슬포슬한 그 맛. 어릴 때 할머니가 삶아줬던 그리운 그 맛이었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났던 것 같기도 하다. “10년 전 일본에 살았을 때는 다양한 품종의 채소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거든요. 그게 참 부러웠는데, 우리나라는 시간이 지나도 비슷한 환경이더라고요.” 이타카의 김태윤 셰프가 조심스레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요리법에 따라 최상의 맛을 내는 감자가 이토록 다르지만, 우리에게는 품종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집에 돌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샘표에서 먹었던 남선을 재배하는 농장이 있는지 찾아보려 인터넷 창을 열었다. 결과는 전무했다. 추억의 맛은 또 그렇게 스치듯 사라져버렸다.

Inserted new record. Affected row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