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nk for the Night

Drink for the Night

Drink for the Night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 술. 전통주부터 와인, 위스키 등에 달하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고민 중인 이들을 위해 전문가에게 물었다. 이 밤을 빛내줄 주인공은 무엇인가요?

크룩 그랑 뀌베 171eme 에디션

‘샴페인 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말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데 샴페인만큼 훌륭한 선택지가 없다. 그중에서도 ‘샴페인의 왕’으로 통하는 크룩 그랑 뀌베를 생산할 때는 다년간 재배된 10종 이상의 포도가 사용되어 ‘멀티 빈티지’라고 부른다. 게다가 한 병 만들 때마다 ‘라이브러리’라는 크룩 셀러에 보관 중인 수천 개의 리저브 와인이 최소 100종 이상씩 블렌딩되어 좀 더 뛰어난 복합미와 넓은 표현력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최근 릴리즈된 172 에디션이 아닌 지난해 출시된 171번째 에디션을 소개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충분한 재고, 그리고 다른 오래된 에디션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다. 무엇보다 데고르주망 Disgorgement 시기로부터 1년 이상이 지나 시음 적기에 들어서, 고급 샴페인 특유의 고소한 브리오슈 뉘앙스도 있다. 다채로운 풍미와 최고의 밸런스를 가진 만큼 올 연말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해줄 것이다.

– 배성민, ‘알라프리마’ 소믈리에

라프로익 10y CS

“구형이 신형보다 낫다.” 스카치 하면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말이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과거 1960~90년대 올드보틀을 찾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너무 비싸서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일관성 있게 품질이 고른 위스키를 만나면 더욱 반갑다. 라프로익 증류소의 10년 캐스크 스트렝스가 그렇다. 평소 ‘라프로익 10y CS’는 배치에 상관 없이 눈 감고 구매하는 편이다. 현재 총 17 배치까지 나왔지만, 어느 하나 못난이가 없다. 미국의 금주법 기간에 의약품으로 취급될 만큼 맛이 독특해서 소비자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요오드나 정로환 맛이 지배적이지만, 이 ‘병원 맛’을 벗겨내면 다채로운 열대과일들이 입안을 즐겁게 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될 것이다.  김지호, <위스키디아: 당신의 취향을 찾아주는 위스키 안내서> 저자

 장성만리

연말 모임 자리는 불특정하다. 술꾼들의 모임이 있고, 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의 모임이 있다. 음식 메뉴도 다양할 터. 이런 불특정함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술은 뭐가 있을지 고민해봤다. 장성의 해월도가에서 만들어지는 ‘장성만리’는 화사한 산미가 매력적인 연꽃으로 담은 술이라 술자리의 첫 술이나 중간 술 정도로 권할 때가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바디가 안정감을 만들어주고, 산미가 과하지 않아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마실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섬세한 발효의 미학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임병준, ‘바 참’ 대표

호도나스 2019

세바스티앙 히포 Sebastien Riffault는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와인 메이커다.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부분 루아르 상세르 하면 몇몇 생산자를 떠올리는데, 그중 꼭 언급되는 생산자이기도 하다. 호도나스 Raudonas처럼 생기 있고 활력 있으면서 밝은 느낌의 레드 와인은 손에 꼽히는 것 같다. 한입 머금고 있으면 방금 옆에서 짜준 듯한 크랜베리와 라즈베리의 감칠맛이 나고, 피니시는 아주 미세하게 쌉쌀한 맛이 있어 여운도 준다.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간단한 치즈 또는 향신료가 첨가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참고로, 고객 한 분이 이를 스토리에 올리자 생산자가 오피셜로 ‘최고로 잘 만든 빈티지’라는 DM을 보내기도 했다.

– 박정재, ‘파브 서울’ 대표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

모임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술도 훌륭하다. 한창 모임이 무르익고 가져온 술이 다 떨어질 때 즈음이면 ‘위스키 한 병 있으면 좋겠는데’ 싶은 순간이 온다. 대만 위스키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와 초콜릿 약간이면, 센스 있는 마무리를 선사할 수 있다. 단점이라 생각돼온 덥고 습한 대만 기후가 오히려 위스키 숙성에 매력 포인트가 되어, 진득하고 깊은 캐러멜 같은 말린 망고와 체리의 달콤함이 함께 느껴진다. 카발란 위스키는 일단 구매하자마자 오픈해서 한 잔 마시고, 다시 뚜껑을 닫아 보관해두었다가 갖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보틀을 바로 오픈할 때보다는 3개월, 6개월, 1년이 지날수록 더욱 조화롭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언제 구매해 오픈해 두었는지까지도 대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 이정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

뮈스카 밤뷸 2021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뮈스카 품종을 즐겨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에서 뮈스카는 꽤나 매력적이다. 프랑스 보르도와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경력을 쌓은 오스트리아의 여성 생산자 유디트 벡 Judith Beck의 와이너리는 독특하게도 노이지들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따뜻한 와인 생산지다. 부르고뉴와 비슷한 기후 조건을 보이는 곳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흰 꽃의 아로마 향으로 시작해, 머금고 있으면 레몬과 레몬제스트, 유자 맛을 느낄 수 있고, 다 마시고 나면 풀과 허브 향의 여운이 있다. 종종 품종에 선입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면 놀라시곤 한다. 개구진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은 미소를 띠게 하는 맛과 잔향이 매력적이다. – 박정재, ‘파브 서울’ 대표

루이 로드레 컬렉션 244

연말 모임 자리에 술을 갖고 나간다면, 기왕이면 기억에 남는 술이 좋을 터. 엄청 화려하고 값비싼 메인 와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타이밍’을 노려보는 것도 좋기에 시작이나 끝을 장식하는 술을 추천한다. 연말 모임의 시작에는 뭐니 뭐니 해도 샴페인이 빠질 수 없다. 어떤 샴페인이든 스타트를 끊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주종은 없다. 샴페인 중에서는 백화점 와인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샴페인의 왕, 크룩 그랑 뀌베를 가져간다면 주목받기에 좋다. 크룩은 와인을 진지하게 즐기는 애호가와 라벨 드링커를 둘 다 만족시키는 특별한 와인이니까. 샴페인은 뭐든 다 좋지만 크룩보다 좀 더 캐주얼한 옵션으로는 10만원 미만의 ‘루이 로드레 컬렉션 244’도 훌륭한 선택이다. 양식 요리는 물론이고 삼겹살까지 아우를 수 있는 청량한 버블감과 산미, 그리고 조화로운 향미가 ‘데일리 샴페인의 표준 교과서’ 같은 느낌이다.

– 이정윤, ‘다이닝미디어아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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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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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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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ste of Seoul

‘2024 서울미식 100선’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디저트 플레이스 세 곳을 찾았다.

전통과 현대의 교차점, 1994서울

유자약과 

양면과

개성경단

밤 타락죽

찻자리

차와 다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 전통 다과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은 드물다. 지난해 문을 연 1994서울은 그 공백을 메우며 서울미식 100선 디저트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절기에 맞춘 주제로 두 달마다 새롭게 구성되는 다과 차림은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전통 병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번 11월과 12월은 스무 번째 절기인 ‘소설(小雪)’을 주제로 한 겨울 다과 차림이 마련됐다. 메뉴는 차와 페어링된 두 코스와 마무리 수정과로 구성된다. 시작은 1994서울의 시그니처 티인 강귤차를 모티브로 해서 우리나라 전통 홍차인 하동 잭살차, 제주 귤피와 국산 생강을 블렌딩해 따스하고 깊은 풍미를 담았다. 이 한 잔의 차가 전통의 뿌리를 현대적으로 끌어내는 1994서울의 철학을 엿보게 했다. 첫 번째 코스는 밤 타락죽으로, 왕의 보양식으로 알려진 타락죽에 볶은 찹쌀가루의 고소함과 푹 찐 밤의 달콤함을 더했다. 타락죽 위에는 갈아낸 밤이 곱게 얹혀져, 첫 숟가락부터 겨울의 포근함을 맛볼 수 있었다. 이어진 두 가지 다과는 전통 병과의 매력을 다양한 식감으로 풀어냈다. 은행 잣편은 보슬보슬한 설기떡에 은행과 잣의 고소한 풍미가 어우러졌다. 반면, 양면과는 바삭한 튀김 과자로 잣과 생강의 맛을 한껏 살린 고소함이 돋보였다. 두 번째 코스에서는 목책철관음 비새차와 개성경단이 함께 등장했다. 찹쌀경단을 조청과 고운 팥가루인 경앗가루에 여러 번 묻혀 만든 떡인데, 모래처럼 알알이 살아 있는 독특한 식감을 선사한다. 참기름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감칠맛이 조화롭게 어울려 목넘김은 의외로 깔끔하다. 여기에 유자 약과가 곁들여졌는데, 바삭한 약과와 상큼한 유자의 조화가 절묘하며, 잣가루가 기름기를 덜어줘 한결 가볍게 즐길 수 있다. 마무리는 건시 수정과가 제공된다. 계피보다 생강 향이 중심이 되어 기존 수정과와 차별화된 깔끔한 맛과 은은한 곶감의 단맛을 선사한다. 1994서울의 다과 차림은 전통과 현대,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문다. 익숙한 전통 병과에서 신선한 해석을 발견하며, 다음 절기의 차림이 벌써 궁금해진다. ‘소설’ 다과 코스는 1인 6만8000원.

INSTAGRAM @1994seoul.yeonnam EDITOR 원하영

한남동의 프라이빗 디저트, JL 디저트바

트러플 몽블랑

피스타치오 타르트

JL

서울의 미식 지도를 갱신하는 ‘Taste of Seoul 100’에 선정된 JL 디저트바는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공간에서 파인다이닝 스타일의 디저트를 선보이는 곳이다. 디저트는 단순한 후식 그 이상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복합적인 맛과 텍스처를 기대하며 방문했다. 파티시에 저스틴 리가 운영하는 이곳의 가을 시그니처 메뉴는 제철 재료를 활용한 트러플 몽블랑과 이스파한 소르베를 곁들인 피스타치오 타르트다. 처음 한입 베어 문 몽블랑은 부드럽고 달지 않은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밤 퓨레의 크리미함과 바삭한 머랭의 텍스처가 조화를 이루는 듯했지만, 끝맛이 다소 답답하게 남아 아쉬움을 줬다. 피스타치오 타르트는 로즈 맛의 이스파한 소르베가 보기 좋게 올려져 있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독창성은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JL은 셰프의 얼굴을 형상화한 독특한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다. 딸기, 재스민, 바닐라가 어우러진 디저트로 시원함이 느껴지는 첫 맛에 이어 따뜻한 케이크를 먹는 듯한 텍스처로 이어져 독특했다. 전반적으로 모든 메뉴가 ‘파인다이닝 디저트’라는 컨셉트에 부응할 만한 강렬함은 부족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플레이트에 정성스럽게 담긴 디저트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메뉴에 대한 설명조차 없었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리뷰 몇 가지 살펴보니 이는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지적되어온 부분으로서, 고급스러움과 차별화된 공간을 지향한다면 응당 다듬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조용히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연말연시라면,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하다.

INSTAGRAM @jldessertbar EDITOR 원지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 재인

검은 해치

해치 칵테일

배 샤를로뜨와 블랙베리 칵테일

번화한 한남동 뒤쪽 골목에 위치한 재인은 개조된 주택 2층에 위치한 디저트 가게다. 간판이 작고 외관이 한적해 여유롭게 들어섰다가는 극악한 웨이팅 시간에 놀랄 수 있다. 이곳 손님들은 방문할 때부터 대기를 각오하고 오기 때문인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은 후에는 시끄럽게 줄을 형성하는 대신 근처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걸 택하는 듯하다. 보통의 디저트 가게라면 언제 올지 모르는 내 차례를 기다리는 대신 포장이라는 옵션을 택하겠지만, 카페 대신 칵테일바가 마련된 이곳의 특수성은 기꺼이 1시간이란 기다림을 감수하게 해줬다. 특이한 점은 대기 등록할 때 디저트값을 미리 결제한다는 것. 보통은 자리에 착석한 후 천천히 메뉴를 결정하는 편인지라 살짝 당황하는 순간이 있었다. 마침 방문한 기간에는 지난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서울미식 주간을 기념해 특별메뉴 ‘해치’가 준비돼 있었다. ‘서울 해치’와 ‘검은 해치’가 있는데, 그중 된장 캐러멜이 들어갔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검은 해치’를 주문했다. 들깨 크림과 된장 캐러멜의 조합은 입안에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풍미를 남겼다. 계속 먹으면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크림 맛을 된장 캐러멜의 짭조름한 맛과 함께 캐러멜라이징된 사과가 완벽하게 잡아내 조화를 이룬다. 함께 주문한 에그노그 칵테일 ‘해치’는 ‘서울 해치’의 현미, 깨, 곶감, 생강을 이용해 만든 따뜻한 음료로, 크리스마스 시즌 음료로 내놔도 인기가 좋을 것 같다. 이후 주문한 ‘배 샤를로뜨’는 재인의 메인 메뉴 중 하나인데, 첫입에 느껴지는 배의 싱싱하고 아삭한 식감 이후엔 바닐라 크림의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에 퍼진다. 리치하다기보다는 깔끔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마지막으로 평소 단 음식을 즐기지 않아 오랜만에 ‘열일’하는 혀를 달랠 겸 마신 블랙베리 칵테일 한 모금은 상큼하게 입안을 적시며 호사를 누리던 입의 밸런스를 맞춰줬다. 참고로 꼭 바를 이용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이곳에서 포장한 디저트를 근처 제휴 커피숍에서도 즐길 수 있다. 방문 예약만 가능하고, 디저트 메뉴는 선결제, 음료는 후결제.

INSTAGRAM @pattiserie.jaein EDITOR 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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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Young Ch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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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계를 이끌어갈 차세대 젊은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2024-25 아시아 파이널, 그 색다른 개성과 풍미가 가득한 홍콩 현장을 소개한다.

아디 퍼거슨이 선보인 요리 ‘군도의 축제’.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버려진 밀랍에서 영감을 얻어 지속 가능한 요리를 개발한 시모네 스카로파로의 ‘밀랍 속에 감춰진 것’.

앳된 얼굴의 젊은 셰프들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손놀림을 가다듬고 있다. 식재료를 손질하고 채소와 고기를 다지는 소리, 냄비에서 뽀얀 김이 오르고 소스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현장을 메웠다. 셰프들이 정성스럽게 요리하는 손길과 함께 솥밥에서 올라오는 김이 조화를 이뤄 현장은 더욱 활기를 더했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의 요리경연대회 현장은 그야말로 긴장감 넘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만의 요리 철학과 창의력을 담아내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조리에 몰두했고, 이들과 짝을 이룬 멘토 10명은 곁에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변에는 심사위원과 관람객이 숨을 죽인 채 열띤 경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스윈 수브라마니안의 ‘껍질을 깬 껍데기’. 게의 모든 부위를 고기처럼 활용해, 전통 방식에서 벗어난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였다. 

아시아 지역 결선의 우승자, 아디 퍼거슨과 그의 멘토 매튜 커클리 Matthew Kirkley.

지난 10월 28일 홍콩 국제요리교육원(ICI)에서 열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요리경연대회 2024-25 아시아 지역 결선에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셰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는 세계 각국의 재능 아디 퍼거슨이 선보인 요리 ‘군도의 축제’.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있고 열정이 넘치는 차세대 셰프들에게 멘토링과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해, 글로벌 미식계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커뮤니티다. 요리경연대회는 그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올해로 6회째를 맞으며 지금까지 1400여 명의 젊은 셰프가 참가했다. 또한 610명 이상의 멘토와 심사위원이 이들의 여정에 함께했다. 2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대회에는 3000여 명의 셰프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50개국에서 선발된 셰프 165명이 각 지역 결선에 진출했다. 아시아 지역 결선에서는 셰프 10명이 최종 무대에 올랐으며,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김재호 셰프(안다즈 서울 강남)도 포함됐다.

셰프들은 3시간 동안 각자 준비한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요리 10인분을 완성한 뒤, 심사위원 앞에서 요리에 대한 설명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심사 과정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솥밥을 직접 퍼서 서빙하거나, 육수를 정성스레 순차적으로 부어 맛있게 먹는 순서를 안내하는 등 요리의 의도를 세심하게 설명했다. 우승자는 홍콩 레스토랑 벨론 Belon의 아디 퍼거슨 Ardy Ferguson이 선정되었다. 그는 2025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릴 세계 결선에서 14개 지역 대표들과 실력을 겨루게 된다.

올해 아시아 지역 결선 심사위원으로는 아시아 미식계를 대표하는 저명한 셰프들이 참여해 경연 수준을 높였다. 2024년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5위에 오른 홍콩 윙의 비키 쳉 Vicky Cheng을 비롯해, 일본 교토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무니 알리안 두카세 총괄셰프인 알레산드로 구아르디아니 Alessandro Guardiani, 홍콩 네이버후드의 데이비드 라이 David Lai 등 다양한 배경의 셰프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따뜻한 눈빛으로 젊은 셰프들의 요리를 세심히 평가하고, 그들이 만든 요리의 의도와 이야기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긴장감 넘치는 대회였지만, 심사위원과 멘토들이 참가자들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이 대회가 미식계의 미래를 위한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INTERVIEW 

홍콩 윙 레스토랑 비키 쳉 셰프

셰프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과 음식 먹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맛도 중요한 요소지만, 요리의 완성도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쌓이는 부분이다. 셰프는 창의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훌륭한 요리를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또한, 팀워크가 중요하다. 셰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셰프로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갖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내가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나를 찾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요리 인생은 마라톤처럼 긴 시간 동안 배워가며, 준비가 되었을 때야 비로소 자신만의 요리 스타일을 정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겸손을 잃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것이다.

후배 셰프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시간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레스토랑에서 식사는 보통 두 시간 반 정도로 추천하지만, 종종 네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고객들은 그 긴 시간을 기다리기 원하지 않는다. 요리 경쟁에서도 시간 관리가 중요하다. 셰프들은 접시 10개를 완성하면서 온도도 유지해야 하므로, 너무 빨리 요리하기보다는 일정한 속도와 계획하에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심사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다. 그 외에도, 음식을 제때 접시에 올리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셰프가 승자가 될 것이다.음식의 글로벌화와 로컬라이징에서의 타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타협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타협을 누가 하고, 어디서 발생하는지이다. 현지 식재료와 식습관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요리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제공하는 것과 같아서, 손님의 문화나 취향을 존중하되 요리의 본질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TV 프로그램과 미디어에서 스타 셰프들이 등장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셰프가 되기에는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다. TV와 미디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셰프가 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셰프가 되려면 시간과 노력, 인내가 필요하고 많은 배움의 과정이 있다. 셰프가 되는 길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 글로벌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하나? 아시아 요리가 다음 웨이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요리가 오랫동안 선두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분명히 한국,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요리가 전반적으로 주목받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흥미로운 맛이 많기 때문이다. 수년간 이어져온 발효 과정과 매운맛 등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적절하게 세계에 소개되기를 기대한다.

전통과 혁신이 만난 요리의 향연

윌리엄 이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노점음식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어린 시절의 맛, 다 파이 땅’ 요리를 선보였다.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아카데미 아시아 지역 결선은 정말 흥미진진한 요리의 향연이었다. 각 셰프가 선보인 요리는 그들만의 창의성과 유산을 담아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아시아 대표로 선정된 지역 우승자는 인도네시아계 캐나다인 셰프인 아디 퍼거슨. 그는 ‘군도의 축제’를 주제로, 인도네시아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선보였다. 자바의 대표적인 쌀 요리 나시 뚬뼁 Nasi Tumpeng과 홍콩식 오리구이를 응용해 수마트라의 전통 사테 파당 Sate Padang을 만들어내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독창적인 접근을 보여주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디렉터인 로베르토 카로니가 이번 대회의 소감을 말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이 아디 퍼거슨의 음식을 시식하고 있다.

이번 대회 수상자들. (왼쪽부터) 윌리엄 이, 아스완 수브라마니안, 아디 퍼거슨, 시모네 스카르파.

산펠레그리노는 결선 우승자와 함께 특별상을 3개 시상하며 각 셰프들의 요리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가치를 폭넓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식계 소식지 <파인 다이닝 러버스 Fine Dining Lovers> 독자 투표로 선정되는 ‘파인 다이닝 러버스 상’은 자신만의 시그니처 요리에 대한 철학과 신념을 가장 잘 표현한 셰프에게 수여한다. 이 상은 몰디브 포시즌스 리조트의 아스윈 쿠마 카라나트 수브라마니안 셰프에게 돌아갔다. 그는 케랄라 전통의 게 요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게의 모든 부위를 창의적으로 활용한 요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속 가능한 요리를 추구하는 셰프에게 수여되는 ‘산펠레그리노 사회적 책임상’은 방콕의 시모네 스카르파로 셰프가 받았다. 그의 요리, ‘밀랍 속에 감춰진 것’은 코사무이의 버려진 밀랍에서 영감을 얻어, 낭비를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요리를 선보였다. 생선 필레를 밀랍으로 조리하고, 뼈를 분쇄하여 소스에 활용하는 등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한 환경을 고려한 접근으로 큰 찬사를 받았다. ‘아쿠아파나 문화의 화합 상’은 전 세계 50개국을 대표하는 멘토들에 의해 선정되는 상으로, 지역 요리 유산을 현대적인 비전으로 재해석한 셰프에게 수여한다. 이 상은 싱가포르의 윌리엄 이 셰프가 차지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말레이시아 음식 거리인 다 파이 당에서 다양한 노점음식을 즐기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요리법에 개인적인 현대적 비전을 더해 과거와 미래를 잇는 요리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지역 결선에 오른 김재호 셰프는 아쉽게도 수상은 못 했지만,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회 최초로 이북 요리를 소개하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아낸 ‘할머니의 꿩고기’를 선보였다. 김 셰프는 할머니의 이름 ‘전춘희’를 쓴 트레이와 함께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엽서 형태로 만들어 요리에 담은 의미를 더했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 일본, 발리 등 아시아 각국에서 온 셰프들이 그들의 고유한 역사와 개성을 담아낸 요리로 각광을 받았다. 이 셰프들은 단순히 음식의 맛을 넘어,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와 창의적인 접근이 돋보였다. 미식계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키우는 순간이었다.

꿩 백숙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김재호의 ‘할머니의 꿩고기’.

발리의 전통과 재료에 주목한 바리안도 와유의 ‘현지의 맛을 따르거나 떠나거나’.

스테판 드 그라프는 네덜란드에서 자란 경험과 발리 요리를 조합해 독특한 풍미의 ‘전통의 맛과 현대의 향신료가 만나는 곳’을 선보였다.

아이 이치노세의 ‘음식의 미래를 향한 희망’. 프랑스와 일본의 전통 요리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시도를 보여줬다.

INTERVIEW 

안다즈 서울 강남 미트앤코 스테이크하우스 김재호 셰프

대회는 어떻게 참가하게 되었나? 레스토랑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대회를 알게 되었다. 총주방장님이 2015년 이 대회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대부분의 요리대회는 소고기나 해산물 같은 특정 재료로 주제가 제한되어 있는데,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대회는 ‘시그니처 메인 디시’가 주제로, 개인적인 요리 철학과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어 새롭고 흥미로웠다.

대회에 선보인 요리를 소개해달라. 꿩은 다릿살에 잔가시가 많고 비린내가 나서 익숙지 않은 재료지만, 잘 다루면 아주 매력적인 맛을 낸다. 백숙과 만두, 무침으로 꿩을 다양하게 표현해보고자 했다. 꿩 백숙은 가슴살에 대추, 인삼, 쌀을 넣어 백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꿩 만두는 도토리 만두피를 활용해 북한 전통 음식을 보여주려 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꿩의 뼈로 육수를 만들고, 남은 살은 무침을 만들고, 오이와 사과, 오미자 드레싱을 곁들였다.

한국에서도 흔하지 않은 재료인 꿩을 선택한 이유는? 대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는 걸 깨달았다. 할머니는 이북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오셨다.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해주신 북한 음식을 많이 기억한다. 특히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꿩 요리를 좋아했기에, 이번에는 그 요리를 내 스타일로 재해석해보고자 했다. 플레이팅도 인상적이었다. 플레이팅에 많은 신경을 썼다. 한지는 인사동에서 직접 구매했고, 아버지에게 할머니 이름인 ‘전춘희’를 붓글씨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또한 할머니와의 추억을 담기 위해,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음식과 함께 배치했다. 플레이트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사용했고, 커트러리도 내가 직접 준비했다. 이 음식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템 하나하나에 3대의 아이덴티티를 담아 할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반영한 상을 완성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대회 전날 받은 재료들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약간 당황했다. 특히 밀가루 품질이 떨어져 도토리가루를 첨가해 만두피 점성을 조절했다. 또 한국에서는 이미 손질된 꿩고기를 받지만, 이곳에서는 날개와 머리, 발이 달려 있는 상태로 받았다. 꿩고기를 손질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현장에서 잘 대응하려 노력했다.대회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요리이지만, 북한 음식을 아시아 예선전에 와서 소개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제공: 산펠레그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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