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과 양식이라는 두 장르를 부드럽게 엮어낸 식탁 위, 배요환 셰프와
아내 이효재 매니저가 함께 빚은 조화의 이야기.

2026 미쉐린 가이드 서울의 선공개 리스트에 ‘두리’의 이름이 오르던 날, 배요환 셰프의 일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예약에 맞춰 프렙을 하고 있었는데, 단골 손님들의 축하 문자와 갑자기 밀려드는 예약을 보고 소식을 알게 됐어요.” 지난해 10월 처음 문을 연 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룬, 얼떨떨한 동시에 기분 좋은 성취였다.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약 가능 좌석 수를 기존 12석의 절반인 6석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긍정적인 관심에 더 좋은 품질과 서비스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초반 17가지 요리로 선보이던 코스 또한 시즌에 맞춰 메뉴를 재구성하며 구성을 15가지로 소폭 축소했다. 여전히 많은 수량을 선보이는 만큼 수고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에게는 메뉴의 조화를 위해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코스가 한 편의 뮤지컬이나 책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모든 메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느낌을 추구해요. 모든 음식의 양과 맛의 밸런스를 조절해가며 계획적으로 짜둔 것이다 보니 한 가지라도 빠지면 책의 중간 페이지를 찢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1막부터 시작해 마지막 장까지, 챕터별로 나뉜 셈이죠.” 시즌마다 바뀌는 메뉴엔 기본적으로 한국의 제철 식재료가 사용된다. 한 메뉴에 사용된 재료를 다른 메뉴에 재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메뉴를 구성할 때 고려하는 원칙이다. “흐름상 각자의 역할이 있거든요.” 겉으로 보기엔 영락 없이 양식처럼 보이는 요리가 막상 입에 넣으면 한식 같은 맛을 내는 것도 두리 요리의 재미 중 하나. 이처럼 ‘뮤지컬 같은’ 요소는 공간의 단차에서도 드러난다. 바를 기준으로 셰프가 서는 내부 공간은 손님들이 착석하는 공간보다 높이가 낮다. 손님들과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일종의 무대적 장치인 것이다.



셰프가 되기까지 그의 이력 또한 흥미롭다. 대학 시절 호텔경영학을 전공하며 와인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지만, ‘정통적인’ 수련을 통해 요리를 배우거나 경력을 쌓은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CJ 푸드빌에 입사해 요식업에 발을 담갔고, 이후로는 국내외 기업에서 고객 경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를 했다. 하지만 여러 회사를 거칠수록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갈망은 점점 커져갔고, 이는 2022년 와인 클래스 및 소셜 다이닝을 진행하는 ‘두리 와인’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부업으로 시작한 두리 와인은 점차 규모를 확장해 지금의 두리로 이어졌고, 배요환 셰프는 본격적으로 한식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요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만큼 공부에 더욱 정진했습니다. 웬만한 서적은 모두 찾아봤어요. 한 가지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서 똑같은 생선을 6가지 조리법으로 시도해보기도 하고, 2년 반 동안은 주방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죠.” 이러한 집요함은 전통주와 와인을 오가는 페어링에도 적용된다. 메뉴마다 페어링 옵션을 두세 가지씩 지정하며 손님의 선호도에 따라 추천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갓과 블랙 올리브를 볶아 곁들인 민어 요리엔 지중해적인 요소를 맞추기 위해 그리스 와인을 페어링한다면, 청명주가 가지고 있는 과실의 달큰한 감칠맛은 육회와 만났을 때 소스처럼 어우러져요. 이런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죠.” 기업에서 CS 업무를 경험했기에 손님에 대한 섬세한 모니터링 또한 가능하다. “손님의 알러지, 그날 페어링한 음료나 선호한 음식, 굵직하게 나누던 대화 등을 매일 데이터로 정리해둬요. 손님들이 재방문하게 된다면 이런 기록을 토대로 서비스를 더욱 잘해드릴 수 있고, 그게 더 좋은 식사로 이어지게 되는 거죠.”




컨템퍼러리 한식을 선보이는 두리의 시그니처는 ‘오늘의 제로 웨이스트’다. 그날 사용된 모든 식재료의 남은 부분은 각각의 특성에 따라 말리고, 굽고, 끓여 육수를 내 선보이는 요리다. “파리올림픽 코리안하우스 개관식 만찬 행사, 프리즈 서울의 CJ 나잇 등에 초청되어 요리를 선보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버려지는 식재료가 많다는 사실을 체감했어요.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오늘의 제로 웨이스트’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 메뉴 중 유일하게 매일 다른 맛을 선보일 수 있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메뉴예요. 어느 날엔 삼계탕 같이 나가기도 하고, 어느 날엔 모렐버섯 속에 떡갈비를 채워 만둣국처럼 나가기도 해요.”


두리가 위치한 효창공원은 그의 고향인 동시에 아내 이효재 매니저, 반려견 ‘두리’와 함께 가정을 이룬 곳이다. 레스토랑 이름은 반려견의 이름인 동시에, 아내와 ‘둘이’서, 한식과 양식 ‘둘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지점을 선보이겠다는 마음을 담아 지었다. “사실 이곳은 미쉐린을 목표로 했다기 보다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의미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으로 연 곳이에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무겁고 엄숙하다고 생각해 부담을 느끼는 분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동시에, 한식에 양식의 요소를 더해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여드린 모습은 ‘아뮤즈 부쉬’ 단계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나올 코스를 더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막 첫 막을 올린 그의 여정은 두리가 앞으로 써 내려갈 긴 서사의 서두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