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요리에 담아낸 한국의 계절. 요리사와 스태프, 생산자와 손님까지, 여러 사람의 리듬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선명해지는 샤콘느의 맛.


역삼동의 한적한 주택 골목에 자리한 ‘샤콘느’는 문을 연 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은 신진 레스토랑이지만, 오너셰프 심정택의 이름은 이미 국내외 미식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거론돼왔다. 심정택 셰프는 도쿄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칸테상스’를 비롯한 일본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10여 년간 경력을 쌓았고, ‘모수 홍콩’의 헤드셰프로 재직하던 시기에는 2023 태틀러 Tatler 다이닝 어워드에서 ‘올해의 라이징 스타’를 수상했다. 논현동 ‘알라 프리마’에서 일한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그의 커리어 대부분은 해외에서 축적된 것이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연다는 소식은 이미 심정택의 요리를 경험한 이들에게도, 아직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도 자연스러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핫토리영양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굵직한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으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이지만, 요리에 대한 심정택 셰프의 관심은 의외로 단순한 계기에서 출발했다. 도쿄에 체류하던 시절, 지인과 함께 방문한 서점에서 발견한 피에르 가니에르 서적 속 이미지가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처음엔 그림인 줄 알았어요. 이런 세계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 이미지에 매료된 거죠. 저도 이런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요리학교 등록까지 결정하게 되었어요.” 우연한 흥미로 요리를 시작한 그를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건 성취감이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소스를 만드는 간단한 업무를 하던 때에도 그는 좀 더 성장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힘든 순간을 버텨냈다.


레스토랑 이름 ‘샤콘느’는 요리사로서의 여정 속에서 기쁠 때나 힘들 때 곁에 두었던 이루마의 피아노 곡명이자,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춤곡 양식에서 가져왔다. “특정 음악 장르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멜로디가 좋으면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되고, 곡에 대해서 더 찾아보게 되잖아요. 그게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프렌치 요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도, 맛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경험. 심정택 셰프가 샤콘느에 담고자 한 것은 그런 친숙함이다. 동시에 이루마의 곡 ‘샤콘느’가 그의 여정에 위안이 되었듯, 이 공간 또한 누군가에게는 조용한 위로로, 또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기 바랐다.
이 레스토랑의 장르에 대한 해석은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크게 ‘코리안 프렌치’와 ‘재패니즈 프렌치’로 갈린다. 하지만 심정택 셰프는 이를 한 가지 언어로 규정하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보다 그가 전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식재료만으로도 충분히 완성도 높은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에 가지 않아도, 그리고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 안에서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재료의 상태와 계절의 흐름이다. 같은 식재료라도 시기와 컨디션에 따라 맛은 달라지고, 조리 방식 역시 매번 같을 수 없다는 것. 이 때문에 오마카세로 제공되는 샤콘느의 코스는 큰 틀을 유지한 채, 그날 수급되는 식재료에 따라 조리법이나 재료가 미세하게 조정된다. 이는 ‘적절한 시기’, ‘올바른 조리’, 그리고 ‘적절한 간’을 지키고자 하는 샤콘느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같은 산지에서 들여온 동일한 식재료라 하더라도 자연에서 얻은 것들은 그날의 상태와 크기, 질감이 제 각각이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수록 정답은 없다고 느껴2요. 정해진 방식을 고수해야 할 때도 있지만, 여러 방법을 고민하며 탐구하다 보면 더 나은 결과물이 탄생하기도 하거든요.” 정확한 레시피와 정량을 고집하기보다, 재료의 상태를 먼저 읽고 판단하는 방식은 그가 3년간 몸담은 칸테상스에서 고수하는 모토이기도 하다.


샤콘느의 테이블은 단 네 개, 운영시간은 저녁으로 한정된다. “그저 기본에 충실한 레스토랑이 되기 바랐어요. 레스토랑은 음식에 집중하고 식사를 즐기러 오는 곳인데, 테이블 간 간격이 너무 가까우면 손님들의 경험이 방해받을 수도 있잖아요.” 이런 과감한 결정 뒤엔 맛에 대한 자신감도 한몫했을 것 같다는 추측에는 겸손한 자세로 답한 그다. “요리만이 좋은 식사 경험을 결정하는 건 아니에요. 손님들이 만족하고 돌아가는 데에는 훌륭한 서비스의 몫도 크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요리가 좋아도 서비스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쉽고, 반대로 서비스만 좋아도 음식이 설득력을 잃으면 오래 기억에 남지 않죠.”
끝으로 ‘좋은 요리사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랜 고민 끝에 “자신의 일에 행복을 느끼는 요리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만큼,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직업인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며,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요리사가 좋은 요리사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그런 태도를 닮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샤콘느와 함께 새로운 시작점에 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믿고 따라주는 스태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커요. 좋은 업체를 소개해주고 조언을 건네는 선후배 셰프들, 식재료를 함께 고민해주는 생산자 분들 덕분에 배우는 것도 많고요. 아직 크게 홍보를 하고 있지 않은데도, 우리를 알고 찾아오시는 손님들 덕분에 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음악 용어로 정의하자면, 샤콘느는 춤곡이다.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은 리듬 위에서 호흡을 맞추는 춤. 레스토랑 샤콘느 역시 그렇다. 요리사와 홀 스태프, 식재료를 길러낸 사람들, 그리고 손님까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던 이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보폭을 맞출 때, 비로소 하나의 경험이 완성된다. 단출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리듬으로, 오래 여운을 남기는 멜로디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