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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기초 위 서양식 조리법을 더한, 김건 셰프의 손끝에서 완성된 고료리 켄만의 요리.

비장탄 숯불로 구운 갈치에 다시마와 가츠오부시를 끓여낸 다시, 자라를 우려낸 슷폰지루를 올렸다.

고료리 켄 매장 전경

김건 셰프를 만난 것은 2월의 첫날, <흑백요리사 2>가 종영한 지 약 3주 만이었다. 시즌1 때만 해도 제작진의 섭외 요청을 거절했던 그가 이번 시즌 출연을 결정한 데엔 요식업에 대한 애정 덕이 컸다. “시즌1 방송 이후 외식업계에 많은 활기가 돈 만큼, 저도 이번에는 동참해서 좋은 에너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본방송에서 아쉽게 편집된 그의 일대일 대전 요리는 ‘고등어 마늘 볶음밥’. 단양 마늘을 활용한 볶음밥을 아란치니처럼 튀겨내고, 그 위에 생고등어와 생마늘을 올린 뒤 마늘 피시 소스와 참외를 곁들였다. 해당 요리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의 음식은 일본식 식재료에 서양식 조리법을 접목한 방식에서 출발한다. “일식 요리사가 만드는 서양 요리. 손님들이 고료리 켄은 어떤 식당이냐고 질문하면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고료리 켄에서는 간장이나 미소에 서양식 소스를 곁들이고, 된장과 비슷한 감칠맛과 염도를 지닌 치즈에 미소를 곁들이기도 한다. 정통 일본 요리와는 거리가 있는 버터와 크림을 베이스로 한 소스를 활용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흑수저 셰프들처럼 백수저들에게도 닉네임이 주어졌다면, 이 부분을 키워드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김건 셰프.

2009년 연남동에 문을 연 이자카야 이노시시를 시작으로 현재 고료리 켄, 이치에, 회현식당의 세 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건 셰프는 우리나라에 정돈된 일식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고료리 켄은 2021년 미쉐린 1스타를 획득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을 만큼, 김건 셰프는 국내에서 일식 요리로 손꼽히는 셰프다. 하지만 요리 관련 지식과 기법은 모두 그가 독학으로 체득한 것이다. 요리학교에 등록하고,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수련하는 대신 그는 경험을 ‘사는’ 쪽을 택했다. 일본 현지의 수많은 식당을 방문하며, 손님으로서 좋은 식재료와 서비스를 직접 보고 체험했다. “시골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만들어주는 손맛 가득한 음식이 있잖아요. 전통이 깃들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고 세련된 맛을 많이 경험했어요. 좋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겠지만, 왠지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들었거든요. 요리를 넘어, 문화를 흡수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 덕분에 사람들은 왜 이렇게 먹고, 왜 이것을 요리하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고료리 켄은 뚜렷한 계절의 맛을 표현하기 위해 육류를 배제하고 오직 생선과 해산물, 채소를 활용해 맛을 낸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생선의 특수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 있다. ‘시라코’, 즉 정소 주머니는 고료리 켄에서 자주 맛볼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복어가 제철인 겨울엔 복어의 시라코를 활용한 메뉴가 한창이다. “생선 내장만이 가진 풍부한 맛이 있어요. 실제로 일본에서 즐겨 먹는 식재료이기도 하고요. 물론 한국 손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식재료일 수 있지만, 요리를 통해 시도해보고 맛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도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덴푸라식으로 튀겨 바삭하게 즐길 수 있는 제주 옥돔. 생선 기름에 구운 연근과 잎새버섯, 진하게 우린 표고버섯 소스를 곁들였다.

김건 셰프에게 일식이란 ‘덜어냄의 미학’으로 완성되는 요리다. “일본 요리에서는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덜어내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려면 좋은 재료를 선별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되고, 그 재료가 가진 맛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섬세한 기법을 지켜야 하죠.” 실제로 그는 국내 파인다이닝 업계에 좋은 식재료가 수급될 수 있도록 유통 구조 를 넓히는 데 기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이자카야을 오픈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식재료를 구하는 거였어요. 당시만 해도 회에 올리는 생선이 광어, 도미, 연어, 참치밖에 없었거든요. 다른 생선을 구하러 산지 어촌계를 다 다녔죠.” 매일 퇴근하면 차를 끌고 강원도부터 통영, 삼천포, 여수, 목포 등을 돌아다니며 어부들을 직접 설득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다른 서양 레스토랑들도 그가 구축한 유통망을 통해 질 좋은 생선을 수급받는다. 어촌 입장에서는 더 많은 물량을 납품할 수 있고,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좀 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셈이다. 현재 고료리 켄은 매일 오전 산지를 통해 직접 공수한 신선한 식재료를 당일 소진한다는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다.

낮은 조도 덕에 식사에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는 매장 내부.

호지차 판나코타, 구운 밤 크림, 꿀에 절인 딸기에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곁들인 디저트.

간장과 술을 발라가며 구운 뒤 하루 동안 올리브 오일에 절인 굴이 샴페인 젤리와 함께 제공된다.

고료리 켄은 작은 요리, 즉 ‘소요리’를 의미하는 일식 장르 ‘고료리’에 셰프 이름의 일본어 발음 ‘켄’을 더해 만든 이름이다. 2017년 처음 문을 연 이후 2년간은 클래식한 일본 요리를 선보였고, 이후 압구정으로 자리를 옮기며 지금의 콘셉트를 유지한 지 어느덧 6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미쉐린 가이드, 라 리스트 등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도 받고,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뤘지만, 이런 평가를 떠나 조만간 또 새로운 도전을 할 계획이에요.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죠.” 지금까지의 발전과 성장을 토대로 초창기 시절 선보인 요리를 다시금 재현하고 싶다는 것. “간결하고 심플하지만, 그 안에 내공이 담겨 있는 맛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쉐린 스타를 거머쥐고 여러 업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의 최종 목적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물었다. “만약 언젠가 대한민국 외식업의 역사를 다룬 책이 나온다면, 제 이야기가 한두 페이지 정도 실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요리를 잘하는 셰프로 기억되기보다는, 한국에 이자카야 문화를 소개하고 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로 남는 것. 그 정도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이 몸담은 장르를 사랑하는 셰프. 그렇게 그는 안정 대신 도전, 확장 대신 본질을 택하며 고료리 켄의 새로운 챕터를 준비 중이다.

정갈하게 정돈된 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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