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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경험은 언제나 사방에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전시의 오프닝과 클로징, 혹은 패션 브랜드 론칭 같은 공식적인 자리는 물론, 결혼과 장례, 생일과 제사 같은 인륜지대사의 순간에도 늘 중심에 있다. 식경험은 모임의 성격을 완성하고 훗날 그 자리를 특별히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눈으로 보고, 입 안에 넣고, 온몸으로 퍼지는 감각으로 공간의 분위기까지 디자인하는 케이터링 작업자들을 소개한다.

푸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윤재원의 오비브(@eauvivefoodstudio)

패션 브랜드 유제를 위한 케이터링.
아직 공개되지 않은 미술관의 작품들이 천과 로프로 덮여 있는 콘셉트를 생각했고, 형태가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은 채 존재하는 오브제의 이미지를 음식으로 옮겼다. 구조 안에 작은 긴장감을 주기 위해 서로 다른 질감의 빵을 균형 있게 쌓고 그 위에 레몬을 아슬아슬하게 올렸다.

‘오비브 eauvive’ 는 어떤 뜻을 담았나? 프랑스어로 생동감 있게 흐르는 물, 즉 생명력을 뜻한다.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생명의 본질이 물이라면, 시인은 물을 닮아 언제나 본질에 닿고자 하더라. 그래서 생명력을 사유하는 시인의 마음으로 작업하자는 의미다. 

사람들에게 오비브의 일을 어떻게 소개하나? 오비브의 작업은 음식을 매개로 장면을 설계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나 자신은 편의상 푸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부른다. 단순히 먹기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흐름 안에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배치하는 데에 가장 집중한다. 케이터링부터 맞춤형 케이크까지, 하나의 장면 속에서 음식이 지녀야 할 맥락을 설계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패션 브랜드 유제 YUJE를 위한 케이터링의 이미지가 무척 인상적이다. 오비브의 초창기 작업 중 하나로 음식을 하나의 오브제로 다루는 방식을 명확히 정립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을 기점으로 오비브가 사용하는 색감과 톤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게 정리됐다. 오비브만의 표현의 방식이 한 단계 확장된 프로젝트라 여전히 아낀다.

이화여자대학교 창립 기념 전시

이화여대 창립 기념 전시에서는 기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전시의 고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고유한 그림자가 장면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길 원했다. 동양화의 물을 머금은 질감에서 출발해, 번짐과 여백의 감각을 테이블 위로 가져와야 했다. 그 결과 기물을 배제하고 종이를 플레이트처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테이블이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는 듯한 레이아웃을 구성했다. 크기와 밀도, 맛의 대비, 공간과 테이블의 관계, 색의 균형까지 여러 요소가 하나의 흐름을 이뤘고 그 점에서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작업할 때 아이데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나? 아이디어는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라기보다, 여러 생각과 이미지가 조금씩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에 가깝다. 평소에 책을 읽다가 마음에 남는 문장이나 단어들을 밑줄 치거나 따로 모아두는 편인데, 그런 문장들이 어느 순간 작업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어떤 문장은 바로 이미지로 이어지고, 어떤 것은 오랫동안 머물다가 나중에야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 그 문장에서 떠오른 분위기나 감각을 간단히 메모하거나 스케치로 남겨두고, 그 감각이 작업의 형태나 색, 구성으로 이어지도록 천천히 발전시킨다. 그래도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오히려 작업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일상에 더 충실하려고 한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나 TV 속 누군가의 대사, 길을 걷다 마주치는 풍경 같은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 예상치 못한 힌트를 주기도 한다.

갤러리와 브랜드 행사, 결혼식 등 매번 테마가 다를 텐데, 어려움은 없나? 프로젝트마다 주제와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주어진 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공통된 과제가 있다. 뻔한 키워드를 따르기보다는 이벤트의 성격과 맥락을 식경험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 집중해왔다. 브랜드를 표현할 때에는 형태를 과하게 드러내기보다 절제된 방식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미묘한 차이를 맛으로 풀어낸다. 사실 이 모든 과제는 밤을 새고 고민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해결된다. 이후 쓰러지듯 자고 일어나 보면 세상이 정말 아름답다.

평소 눈여겨보는 푸드 디자인 관련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계정이 있다면? 패션과 음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런 면에서 브랜드 자끄뮈스 @jacquemus 계정을 즐겨본다.

앞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음식을 매개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작업이라면 모두! 케이터링 역시 그중 하나의 방식일 뿐이고,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영역도 많다. 음식이나 테이블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동하는 작업이라면 그 어떤 거싱든 관심이 있다. 단순히 먹기 위해 제공되는 음식이 아니라 분위기나 서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을 때 기회가 된다면 영화 속 상징적인 장면처럼, 음식과 테이블이 장면의 중심이 되는 연출 작업도 해보고 싶다. 이러한 맥락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와의 협업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는 오비브의 프로젝트는? 현재 패션 브랜드, 갤러리, 웨딩 및 프라이빗 이벤트를 중심으로 케이터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올해, 삶에 대한 사유를 담은 케이크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오비브가 지향하는 바를 더 잘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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