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위치한 북유럽문화원이 서울 남산에 문을 열었다. 규모는 작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마음을 열고 휴식을 취하는 덴마크의 문화인 휘게 Hygge를 체험할 수 있는 아틀리에 같은 곳이다.
↑ 경사진 벽 때문에 다락방처럼 아늑한 방에는 스벤스크 텐의 벽지를 발라 포근한 느낌을 강조했다.
한 나라의 진정한 문화 수준과 특색을 알려면 그 나라의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유서 깊은 문화재, 멋진 마천루를 자랑하는 도시일지라도 문화의 평균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집일 테니 말이다. 남산 자락에 문을 연 북유럽문화원은 이렇듯 멀리 있는 북유럽의 실제 가정집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준다. 편안한 분위기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세 명의 안주인은 김진희, 김희진 이사와 <오픈 샌드위치>의 저자이기도 한 이정민 이사. 작년에 양평 북유럽문화원을 오픈한 이들은 덴마크 대사관 상무팀에서 근무했던 시절부터 유난히 죽이 잘 맞는 동료였다. 선후배 관계였지만 서로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일을 그만두고 한 발자국씩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남들이 생각하면 ‘너무 이상주의적인 얘기 아니야?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어딨어?’라고 할 법한 이야기를 우리는 정말 멋진 아이디어라고 받아주곤 했어요. 북유럽문화원은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북유럽 열풍 때문에 만든 건 아니에요.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부터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널리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 차근차근 준비했는데 운이 좋게도 때가 잘 맞았던 거죠.”
↑ 남산 북유럽문화원에서는 덴마크 왕실 지정 티인 A.C 퍼치스의 차도 맛볼 수 있다.
양평 북유럽문화원이 함께 위치한 로스팅 카페 테라로사와 가구점 빈트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면 남산 북유럽문화원은 공간만으로 방문객을 유혹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양평점에 비하면 작은 공간이고 찾아오기도 까다로운 위치예요. 원래 이곳은 예술가 부부가 살던 오래된 집이었어요. 벽의 수평과 수직, 천장의 경사각 등 반듯한 것이 없어서 공사를 하면서 애를 먹었죠. 하지만 오래된 집의 구조가 공간을 이색적으로 만들더군요.”
↑ 덴마크 빈티지 가구와 헤이, 난나 디트젤의 가구가 어우러진 1층 라운지. 병정 오브제와 소품 등은 동료나 지인들이 선물한 것이다.
문화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다. 문화원은 포괄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문화를 즐기고 더 나아가 문화 전반에 관한 교육도 이뤄지는 곳을 의미한다. 다소 딱딱한 이름 때문에 방문 전 미리 예약을 하거나 와서도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북유럽문화원은 누구든 편하게 들러서 차도 마시고 북유럽 가구도 체험하고 책도 읽을 수 있는 작은 쉼터 같은 곳이다. 난나 디트젤이나 헤이의 가구,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의 조명 등 최근 주목받는 젊은 작가와 북유럽 브랜드의 제품을 덴마크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매치해 분위기 또한 무겁지 않다. “거창하게 갤러리처럼 뭔가를 전시하거나 박물관처럼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를 구비하진 않았어요. 말 그대로 문화를 즐기는 곳이기 때문에 ‘북유럽 사람들은 이런 가구와 조명을 쓰는구나. 이런 그림을 집에 거는구나’ 하면서 집과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쉬어 가길 바라요.” 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닌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 단위인 가족과 집으로부터 비롯됨을 새삼 느낀다. “저희는 북유럽문화원이 방문객과 작가와 브랜드의 허브가 되길 바랍니다. 양평 북유럽문화원에서 전시를 했던 분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아마추어 작가였죠. 그 전시 이후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가 있음을 느꼈죠.”
↑ 북유럽 관련 서적이나 일러스트, 그림 등을 감상할 수 있는 2층.
남산 북유럽문화원은 지상 3층 규모다. 1층은 라운지 겸 카페, 2층은 가구와 책이 놓인 공간, 널찍한 테이블이 놓인 3층은 사무실 겸 작은 회의실로 사용할 예정이다. 북유럽 가정집의 거실같이 편안한 카페에서는 덴마크 왕실에 납품하는 차 브랜드인 A.C 퍼치스 A.C Perch’s의 다양한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에필로그처럼 공간의 성격을 미리 느낄 수 있다. 2층은 앞으로 책을 위주로 한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 루이지애나 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회 포스터 작품.
↑ 오래된 집을 개조해 벽의 경사각이나 면이 비정형적이다.
북유럽이란 말을 ‘Book You Love’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고 한 지인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잡지를 비롯한 북유럽 관련 서적과 토베 얀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등 북유럽 작가의 일러스트와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고 현재는 문화원 전체에 걸쳐서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스웨덴의 현대미술관 포스터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2층 코너에 위치한 경사진 벽이 독특한 작은 방은 이국적인 느낌의 스벤스크트 텐 Svenskt Tenn의 벽지를 시공했는데 동화 속 일러스트나 미드센트리 시대의 빈티지한 무늬로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이너 조제프 프랭 크 Joseph Frank가 디자인 한 벽지다. 이 공간 역시 누구든 편하게 소파에 앉아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앞으로 북유럽 관련 제품을 위탁 판매하거나 북유럽 브랜드와 함께 이벤트나 클래스 등을 열어서 북유럽의 다양한 문화를 꾸준히 알릴 생각이에요. 북유럽에는 포크하이스쿨이라는 평생교육원, 대안학교 개념의 교육기관이 있어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죠. 북유럽문화원은 우리가 꿈꾸고 있는 포크하이스쿨의 첫 단추예요. 이 단추를 잘 끼워서 사람과 인간관계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스쿨을 만들고 싶습니다.”
↑ 2층에는 빈티지 가구와 현대적인 북유럽 제품도 둘러볼 수 있다.
↑ 소규모 워크숍이나 회의실로 활용할 수 널찍한 3층 공간.
김진희, 이정민, 김희진 이사는 이곳에 부제를 붙인다면 ‘격려센터’라고 전했다. 운영자는 물론 방문객과 작가와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이 이 공간에서 잠시나마 격려를 얻고 북유럽의 휴식 문화인 ‘휘게’를 느끼길 바라서다. 가끔 세상에 지치고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혹은 뜻이 잘 맞는 친구와 누군가의 집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남산 북유럽문화원의 문을 열 것 같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영원한 삐삐 같은 세 명의 안주인은 기꺼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 건물의 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원래 모습 그대로 두었다.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