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라믹

행복한 세라믹

행복한 세라믹

보는 사람과 사용자 모두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세라믹 브랜드 보사.

↑ 아라비아 궁전 지붕 같은 반려견의 집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오브제, 트럼프 카드의 무늬를 띤 테이블 등 개성 넘치는 디자인의 세라믹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브랜드 보사 Bosa. 보사는 설립자인 이탈로 보사가 1976년 자신의 세라믹 제품을 소개하면서 시작한 브랜드로 본사는 이탈리아 북쪽 지역인 바사노와 아솔로 사이에 위치한 보르소 델 그라파라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으로 세라믹 제품을 만들어왔고 다양한 컬러 팔레트를 사용해 색깔을 입혔다. 금이나 플래티넘, 구리와 같은 귀금속을 사용해 장식성을 더한 것도 보사 세라믹의 특징이다.

1 보사의 대표 작품인 ‘호프버드’. 2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는 조명 ‘클라운’. 3 에스닉한 매력이 느껴지는 ‘시스터즈’ 꽃병.

일반적으로 세라믹은 그릇이나 장식물에 사용하는 소재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보사의 제품을 보면 세라믹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보사의 세라믹 제품 제작 과정은 섬세하게 나눠져 있다. 우선 모든 제품은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을 통해 하나씩 만들어지고 소석고 소재의 몰드에서 빼낸 뒤에는 손으로 정성껏 표면을 마감한다. 그 후 여러 차례 가마에서 구워 원하는 상태가 되면 금이나 금속 등으로 장식한 후 다시 굽고, 이후 유약과 광택제를 입혀서 마무리하게 된다. 보사의 견고함은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에 있지만 색깔에서도 독보적이다. 세라믹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디자인과 섬세한 색깔을 만나볼 수 있는데 유약을 섞고 바르는 모든 과정이 보사 공방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색깔에 있어서 보사만의 노하우를 간직하고 있다. 온도와 크기, 표면 등 작은 차이에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보사만의 색깔이며 이러한 디테일이 보사를 세계 최고의 세라믹 제품 브랜드로 우뚝 서게 했다.

1 악기를 형상화한 펜던트 조명 ‘트렘펫’. 2 귀여운 부엉이 모양의 캐니스터 ‘아울즈’.

보사가 다양한 디자이너와 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디자이너 마르코 자누소 주니어와의 협업과 세계적인 가구 회사인 팔롬바 세라피니와의 합병이었다. 보사의 전성기도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졌고 밝고 경쾌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보사의 러브콜을 디자이너들은 달갑게 받아들였다. 그중에는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마놀로 보씨, 샘 바론, 하이메 아욘, 루카 니케토 등 익숙한 이름들도 눈에 띈다. 또 B&B이탈리아, 바카라, 미노티, 페라리 등 세계 유수의 업체들과 주문 제작 계약을 맺어 작품성과 상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특히 유쾌한 디자인을 즐기는 하이메 아욘과 장인 정신과 컬러풀한 색깔을 추구하는 보사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 2009년 트라팔가 광장에서 전시된 대규모 체스판.

4k 금을 입힌 오브제 ‘호프버드 Hopebird’, 평온한 느낌을 주는 일체형 시계 ‘판타스미코 Fantasmiko’, 펠리칸에서 영감을 얻은 술병 ‘펠리카니 Pellicani’ 등 보사를 대표하는 제품들이 그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는 2009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당시 트라팔가 광장에 대규모 체스판과 말 모양의 체스를 만들었는데 이때 협업한 브랜드도 보사다. 유리와 금속이 어우러진 마떼오 조르제노니의 조명 ‘트럼펫 Trumpet’, 공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페파 리버터의 ‘시스터 Sister’ 화병 시리즈 등 보사는 세라믹 소재로 만든 가구와 테이블웨어, 조명도 선보이고 있다.

1 주름진 갓을 표현한 조명 ‘실크’. 2 비정형성의 매력이 느껴지는 샘 바론의 꽃병 ‘이솔리’.

보사는 현재 전 세계에 50개가 넘는 국가에서 만나볼 수 있는데 숍 외에도 세계 곳곳의 뮤지엄과 브랜드 팝업 스토어, 10꼬르소꼬모의 서점 등에 보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 설립자인 이탈로 보사는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 세라믹 장인으로서의 넉넉한 도량을 보여줬다. 보사만의 DNA는 기술적인 노하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반증한 셈이다.

에디터 신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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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박물관

뿌리 깊은 박물관

뿌리 깊은 박물관

스위스 조경사 엔조 에나는 미술 작품을 수집하듯 나무를 수집한다. 취리히 부근의 호숫가에서 나무에 대한 그의 열정과 심미안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펼쳐졌다.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연출로 곳곳에서 조용한 탄성이 들렸다. 그리고 이내 명상에 잠겼다.

↑ 깊은 자줏빛으로 가득한 133년 수령의 일본 단풍나무가 돌 조형물에 연기처럼 푹 퍼져 있다. 앞쪽의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 풍경이 아른하다.

엔조 에나 Enzo Ena는 세계 각지로부터 작품을 수집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었다. 취리히 남쪽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라퍼스윌-요나 Rapperswil-Jona에 위치한 이 박물관의 다른 점은 고가구 판매장에서나 볼 법한 오래된 오브제들 대신 100년 이상의 나무를 조각 작품 삼아 전시하고 있는 것.

↑ 수평으로 가지가 뻗은 117년 수령의 소나무는 그림 속에서 빠져나온 듯 우아함과 운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곳은 이웃하고 있는 시토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빌려준 7헥타르가 넘는 사유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엔조 에나의 수집품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슷한 나무 두 그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처럼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지요. 저는 이 나무들과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엔조 에나는 설명한다. 분재 문화에 영감을 받아 꾸민 이 박물관은 정원사인 그가 20년에 걸쳐 터득한 까다로운 테크닉을 그대로 적용했다.

↑ 중국산 체리나무는 눈송이처럼 가볍고 아름다운 분홍색 꽃잎을 떨구고 바닥을 뒤덮는다.

그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발견한 훌륭한 나무들을 고요한 정원에 옮겨 심었다. 일본 단풍나무, 페르시아 페로티나무, 프랑스 동북부 도시 술렁쥬의 목련, 느릅나무는 정원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여기에 구조물을 더해 한 폭의 유화 그림을 보는 듯한 원근법을 연출했다. 고대에 파손된 듯한 돌로 만든 ‘야외 방’은 나무의 옹이,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모양, 색깔이 돋보이도록 한 것.

↑ 호수 가장자리에는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서 있다. 그 뒤에는 수령이 100년이나 되는 등나무들을 울타리처럼 배치했다.

돌벽 주위를 에워싸듯이 나무를 심어 평온함이 느껴지는 분위기의 풍경을 만들었다. 나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엔조 에나는 하늘을 천장 삼은 열린 공간에 그동안 꿈꿔왔던 숲을 이루었다. 이토록 멋있는 나무 박물관이 완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예술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에디터 다니엘 로젠스트로쉬 Daniel Rozensztroch│ 이자벨 라인징거 Isabelle Reisinger│사진 제롬 갈란드 Jérȏme Galland | 나무 박물관 Le Musée De L’arbre, Buechstrasse 12. Rapperswil-Jona, Suisse. www.en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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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이름의 포용

건축이라는 이름의 포용

건축이라는 이름의 포용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건축물이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뮤지엄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는 곳. 부드러운 곡선 건물의 넉넉함이 느껴지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다.

↑ 위에서 내려다보면 말밥굽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보면 두꺼운 책을 세로로 펼쳐서 세워놓은 듯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옛날 중국 황제가 유명한 화가에게 자신이 아끼는 고양이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했다. 7년이 지나도록 그림이 완성되지 않자 황제는 화가를 불러들여 크게 화를 냈고 화가는 황제 앞에서 바로 고양이를 그려냈다. 그림이 마음에 든 황제가 그림값을 묻자 화가는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 단숨에 그린 그림에 높은 값을 부른 이유를 묻는 황제에게 화가가 대답했다. “폐하, 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고양이를 그려왔습니다.”

1 촬영날에는 민병헌 작가의 흑백사진전이 전시 중이었다. 빛에 따라서 흑백사진의 농도가 달리 보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2 건물 전체의 곡선이 내부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시실에서 둥글게 각진 변을 많이 볼 수 있다.

건축가에게 자신의 작품은 화가의 고양이 같은 의미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나서야 꼭 맞는 옷을 입은 건축물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짓기로 결심한 출판사 열린책들의 홍지웅 대표가 파주에 1405평 면적의 부지를 구입하고 염두에 둔 건축가는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였다. 미메시스란 이름은 열린책들 안에서 디자인, 건축, 사진, 미술 등의 예술 서적을 소개하는 브랜드인 ‘미메시스’에서 따왔다. 그리고 2005년 말, 알바루 시자와 설계를 계약한지 8개월 만에 첫 스케치를 받았고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나서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 완공됐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끈 알바루 시자의 또 다른 고양이인 셈이었다.

1 2층에서 3층에 다다랐을 때의 모습으로 3층 전시실이 중심 전시 공간이다. 2,3 오르고 내리는 계단의 구조와 난간에서도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2009년 파주 출판단지에 문을 연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지어질 당시 일부 공간을 열린책들의 사무실로 사용했다. 작년에 완공된 바로 옆 사무동으로 열린책들이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미메시스 관련 부서만 뮤지엄에 남았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출판단지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알바루 시자의 특징인 유기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지만 자하 하디드의 그것과는 다른 시적인 느낌이 있다. 거대하고 육중한 콘크리트가 기분 좋게 물결치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위에서 보면 말발굽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보면 두꺼운 책을 펼쳐서 세워놓은 모습이다. 원래는 흰색 콘크리트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비용 면에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됐다고. 독특한 외관도 멋지지만 내부는 더욱 흥미롭다. 소장고로 활용하고 있는 지하 1층과 카페와 책 코너가 있는 1층, 2층, 전시실, 가장 중심이 되는 3층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카페를 지나 책 코너에 전시된 미메시스와 열린책들의 책을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시실로 들어설 수 있다. 외관의 곡선은 내부에서도 그대로 느껴져 부드러운 동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특히 알바루 시자는 냉난방 시설이 보이지 않도록 이중벽을 만들어 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뮤지엄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펼쳐진 흰 벽 외에 다른 장치는 찾아볼 수 없다.

1,2 건물에서 가장 움푹 파인 곳에 서서 올려다본 모습과 내부.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부드러운 곡선으로 딱딱한 느낌이 없다. 날씨를 알 수 없도록 벽을 전부 막은 다른 뮤지엄이나 갤러리와 달리 빛과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부의 조명은 자연의 법칙을 따랐다. 스폿 조명으로 작품에 빛을 밝힐 수는 있지만 되도록 자연광을 통해서 작품을 감상할 것을 건축가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권한다. 흐린 날의 흰 벽은 회색빛을 띠어 더욱 차분하게 느껴지고, 맑은 날엔 물기를 머금은 흙처럼 반질거리는 흰 벽을 배경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촬영날에는 민병헌 작가의 흑백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햇빛이 만든 음영 덕분에 인공 조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도 짙은 오라를 풍겼다. 이것이 미메시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뮤지엄을 찾은 날의 날씨와 햇빛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여 같은 전시를 본 이들도 저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다. 특히 2층에서 계단을 올라가 3층 메인 전시실에 다다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높은 천고와 어떤 작품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폭이 넓은 전시실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울리는 신발 굽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깬다. 전시실이 넓기 때문에 관람객은 작품 앞으로 바짝 다가가 천천히 걸으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때론 뒤로 물러서서 천장의 일부와 벽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조명 삼아 뮤지엄의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벽과 천장 사이로 잘게 부서진 햇빛이 한낮에도 간접조명을 켠 듯 내부를 몽환적이고 화사하게 밝혀준다.

↑ 그로테스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박찬용 작가의 조각 작품.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개관 당시에는 주로 표지전, 원화전 등 책과 관련한 전시를 진행했지만 최근에는 조각전, 그림전, 사진전 등 전시의 폭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를 찾는 이들이 점점 늘면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도 점차 활기를 더해간다. 사용자를 고려한 설계를 최우선으로 하는 알바루 시자의 바람처럼 다른 나라에서 건축가의 자취를 찾아온 건축학도, 아이 손을 잡고 전시를 관람하러 온 가족,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노부부까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포용한다.

↑ 홍지웅 대표가 디자인해서 제작한 커다란 나무 바스켓. 굴곡진 건물의 느낌을 내부 구조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시인이 종이에 시를 쓰듯 건축가는 물리적으로 대지 위에 시를 쓴다. 퇴고의 과정이 어려운 만큼 건축가는 수없이 스케치와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완벽에 가까운 설계를 향해 나아간다. 완공 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방문한 알바루 시자는 자신의 작품 중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에겐 언제든 그가 그린 고양이를 쓰다듬고 그가 쓴 시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 일만 남았다.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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