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집이 나타났다. 고급스러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로 꾸민 32평 아파트는 클래식과 빈티지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하는 보기 드문 사례다.
우드 블라인드에 커튼을 겹쳐 빛과 그림자가 넘실거리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인더스트리얼 분위기가 나는 책상은 까사미아, 의자는 이케아 제품. 플로어 조명은 아리아 가구에서 구입했다.
인테리어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이라면 이 집이 얼마나 비범한지 벌써 눈치 챘을 것이다. 흔히 보던 북유럽 인테리어는 절대 아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클래식이나 러프한 느낌의 인더스트리얼 또는 빈티지, 로맨틱한 프로방스도 아니니 말이다. 미국의 한적한 주택에서나 볼 법한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로 꾸민 이 집의 주인은 화학 강사로 일하는 최현식 씨다. 결혼을 앞두고 미리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압구정에 있는 32평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홀로 오피스텔에 살 때와는 달리 집을 멋지게 꾸며보겠다며 블로그나 인테리어 앱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자연히 인테리어에 관심이 향했다. “이 집은 예전에 공사를 했던 터라 몰딩이나 거추장스러운 전등이 없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어요. 가구들만 잘 세팅하면 되기 때문에 그 정도면 직접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죠. 무엇보다 집집마다 비슷해 보이는 게 싫어서 누구나 하는 북유럽 스타일은 피하려고 했어요.” 흰색 벽지를 새로 도장하고 거실에 우드 블라인드를 달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바쁜 직장 생활에 시간이 자꾸 지체되고 지지부진해지자 집을 꾸미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다 데코지 Deco-G 임영훈 실장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과 빈티지가 적절히 섞인 이색적인 분위기를 내는 데 남다른 재주를 지닌 그의 작업이 마음에 들어서 바로 연락을 했다. “특별히 요구한 건 없어요. 지어진 지 오래된 아파트라 실평수가 넓지 않고 방이 두 개뿐이어서 거실을 서재처럼 꾸며달라고 한 거 정도였죠. 정해진 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실장님의 감각대로 뻔하지 않게 해주기를 바랐으니까요.” 그때까지도 최현식 씨는 자신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1 부엌 앞쪽에 있는 다이닝 공간. 바닥을 반사시키며 공간에 재미를 주는 거울 장식의 콘솔은 아리아 가구에서 구입했고 플로어 조명은 이케아 제품이다. 2 인테리어의 변화가 주는 기쁨을 알게 된 집주인 최현식 씨. 3 작은 방 하나는 드레스룸으로 꾸몄다. 콘솔에 원형 거울을 매치해서 화장대를 대신했고 맞은편에는 행어를 놓아 옷과 액세서리를 수납했다. 4 을지로에서 구입한 신주 소재의 샹들리에와 목가적인 분위기의 식탁 의자가 잘 어울리는 거실. 이케아에서 구입한 넓직한 러그가 편안한 느낌을 더해준다.
1,2 전 집주인이 예전에 공사를 해서 천장과 벽이 깔끔하게 마감되어 있었기에 스타일링만으로 거실을 연출했다.
아메리칸 빈티지 인테리어는 임영훈 실장의 특기다. 거실과 안방 위주로 스타일링을 진행했는데 가장 메인인 거실은 블루 톤으로 중심을 잡았다. “낡은 것과 새것을 조합하는 게 제일 매력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단정하고 매끈한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워싱이 들어간 제품이 편안해 보이고 사용하기에도 부담이 없으니까요.” 임영훈 실장이 설명했다. 크고 푹신한 패브릭 소파는 미국 매그너슨 Magnussen 제품으로 국내 수입 업체인 미라지가구에서 구입한 것. 차분한 푸른색 소파의 색감과 어울리는 사진을 사이즈에 맞게 출력해서 벽에 걸었더니 훨씬 공간에 힘이 생겼다. 거실은 길쭉한 구조라 다이닝 공간까지 겸할 수 있었는데, 초록색 블랭킷을 포인트로 사용해 블루에서 그린 톤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연출했다. 또 식물을 사랑하는 임영훈 실장답게 곳곳에 화분을 배치해 싱그러움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방은 집주인이 미리 구입한 원목 침대에 맞춰서 시크한 분위기로 꾸몄다. “저는 작업할 때 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것을 중심으로 나머지를 맞추는 편이에요. 만일 어떤 소파가 이 집에 꼭 있어야 한다면 그에 맞게 나머지 흐름을 따라가죠. 안방은 이 침대를 주제로 공간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침대가 돋보일 수 있도록 검정과 금색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냈어요.” 임영훈 실장은 침대 옆에 검은색 수납장을 두고 금빛 소품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드레스와 턱시도를 벽에 걸어놓고 찍은 해외 사진작가의 작품을 두었는데, 웨딩 사진 대신 은유적인 이미지로 신혼의 분위기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센스가 돋보였다.
1 창문 쪽에서 바라본 거실의 모습. 공간이 길쭉해서 서재와 다이닝 공간까지 겸하도록 꾸밀 수 있었다. 2 침대 옆에 놓은 검은색 서랍장 위로는 H&M홈과 자라홈에서 구입한 금색 소품을 매치해 고급스러운 느낌을 더했다. 3,4 집주인이 미리 구입한 침대에 맞춰서 단정하고 세련된 공간으로 연출한 침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에 가장 애착이 간다는 최현식 씨는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집을 갖게 되면서 멋진 인테리어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우드 블라인드 앞에 베이지색 커튼을 달아 풍성한 느낌을 더한 거실에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일렁였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를 보며 그가 말했다. “실장님이 처음에 저 샹들리에를 갖고 왔을 때는 약간 당황했어요. 천장이 높고 큰 평수의 집에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직접 매장을 둘러보면서 골랐다면 아마 선택하지 않았을 물건이죠. 그런데 이렇게 달아놓고 보니 멋지더라고요.” 아메리칸 빈티지 스타일에 눈을 뜬 최현식 씨는 훗날 또 취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현재 자신이 가장 만족하는 스타일을 찾게 되어 기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