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불 미술가 이수경은 파리와 브뤼셀,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다. 그녀의 사적인 공간인 아파트와 작업실에서 파리지엔 미술가의 라이프스타일과 작품 세계를 살펴보자.

침실과 연결되는 거실 풍경. 이번에는 블루와 그린 컬러의 컬렉션 작품들을 걸었으며, 그녀의 집에 자신의 작품은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파리 20구의 작은 숲 맞은편에 이수경 작가의 아파트가 있다. 이 동네는 파리에서는 보기 드물게 푸른 숲이 있고, 갤러리가 많은 마레 지구까지 걸어갈 수 있을 만큼 위치가 좋아서 매력적이다. 이수경 작가는 이 거리를 오가다 풍광에 반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렸다. 올해만 여덟 번의 전시를 선보였을 만큼 프랑스에서 가장 바쁜 작가이기도 하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갤러리 오니리스 Galerie Oniris, 벨기에의 마르크 민자 갤러리 Marc Minjaw Gallery, 한국의 아트사이드를 비롯해 3개국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의 <문패 Munpei>, 아트사이드의 <침묵의 진동(Vibration of Silence)> 전시가 막을 내렸다.

왼쪽의 벽난로는 프로시안 스타일이며 여전히 작동 가능하다. 식탁 위에는 일란의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다.
이수경 작가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파리, 브뤼셀, 서울의 세 곳에 작업실을 운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그녀의 유럽 작업실이 최소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 작업실은 바뇰레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이전에 염색 공장이었다고 한다. 벨기에 브뤼셀 화실은 200년 전 수의학 학교로 지어졌는데, 에펠 타워를 만든 에펠의 기술로 만든 만큼 지금은 벨기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다. 이처럼 그녀는 전시가 있을 때마다 3개국의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하며, 또 다른 대륙으로 떠나는 모험도 즐긴다.

200여 년 전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진 아파트 외관. 길 건너에 작은 숲이 있어 전망도 아름답다.
이 작가의 파리 집 역시 오스만 양식의 200년 된 아파트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에 만들어진 계단과 나무 바닥, 창문과 벽난로 등의 디테일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창밖으로 파리지앵들이 산책하는 오솔길이 보이며, 육중한 대문에서부터 200년 전부터 내려온 낭만이 전해지고 있다.
“작업실을 오가며 이 아름다운 거리를 유심히 보았는데, 아파트를 발견하게 되어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이 집에는 내가 수집한 미술과 공예 작품, 디자인 가구가 가득한데, 내 작품은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특별합니다. 내 작품은 작업실에 가서 보면 되기 때문에 굳이 집에 걸지 않았어요.”

거실에 걸린 사디 소아미 Saadi Souami 작가의 작품 앞에 앉은 이수경 작가의 모습.
약간의 리노베이션을 했지만 과거의 유산은 전혀 훼손하지 않았다. 특히 가끔씩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은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지금은 이렇게 질 좋은 나무를 구하기 어려워서 그 가치가 더욱 높다고 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창밖 풍경이 아름다운 시원한 거실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다이닝룸, 오른쪽에는 리빙룸이 있다. 파리지엔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그녀의 집에서 유러피언 감성과 동양의 정서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