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택하는 대신,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살던 집을 구조적으로 다시 설계했다.
어나더그로우가 만든 이 공간에는 유연한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다이닝에서 바라본 거실. 소파는 리네 로제의 토고 소파. 디사모빌리에서 구입. 소파 테이블은 펜디 까사.

11자 형태로 단정하게 구성한 주방. 조리대 위 벽면에 상부장을 숨겨 더욱 깔끔해 보인다.

철거할 수 없는 기둥에 텍스처 있는 페인팅을 하고, 조명과 오브제를 설치했다. 조명은 가르니에 레 랭케르, 원형 테이블과 의자는 발렌틴 로엘만 디자인으로 디에디트에서 구입. 기둥 뒤 선반은 칼레모의 필라스터, 인엔에서 구입.
길게 뻗은 복도, 한가운데를 지키는 커다란 기둥, 사선으로 꺾이는 벽. 이 집은 처음부터 직선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었다. 일반적인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구조가 오히려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집. 이곳에서 싱글 라이프를 시작한 지 2년, 집주인은 이사를 택하는 대신 ‘지금의 나’에 맞게 집을 다시 꾸미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4년 전 이전 집을 시공했던 어나더그로우의 김희정 실장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김 실장은 공간이 가진 구조적인 개성을 살리면서도 그 안에 사는 이의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을 차분히 반영했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흐름을정돈하고, 필요 없는 것을 덜어냈다. 이미 살고 있는 집을 ‘리셋’하는 리노베이션은 과거와 현재의 취향을 조율하는 섬세한 과정이었다. 현관에서 시작되는 복도는 갤러리처럼 연출했다. 복도 끝 기둥에는 강렬한 레드 컬러의 벽 선반을 설치해 시선을 끌고, 그 앞에 조형적인 가구들을 배치해 공간의 리듬을 만들었다. 보통 마루는 현관을 기준으로 반듯하게 깔지만, 이 집은 복도와 거실이 사선으로 이어지기에 마루 방향은 거실 쪽으로 통일해 흐름을 부드럽게 잇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공간이 가진 물리적 조건에 반응한 유연한 대응이었다. 복도에서 간살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주방은 11자형 구조로 짜여 있다. 싱글 라이프에 맞게 커다란 아일랜드 대신 간결한 조리대와 수납장을 일렬로 정돈했다. 벽면에는 얕은 상부장을 매립형으로 마감해 깔끔하면서도 넉넉한 수납 공간을 확보한 것이 포인트다. 주방 앞 다이닝 공간에는 발렌틴 로엘만의 곡선미가 돋보이는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했다. 그 위로 제레미 맥스웰 윈트레버트의 펜던트 조명을 달아 조형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거실과 주방의 경계에서 자연스레 공간의 중심을 잡아준다. 거실은 서로 다른 무드의 가구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다. 리네 로제의 토고 소파와 펜디 까사의 테이블, 짙은 우드 톤의 실링팬은 소재와 색감의 온도를 달리하며 균형을 이룬다. 아파트 구조상 철거할 수 없는 큰 기둥은 특수 페인팅으로 마감해 시선의 흐름을 바꾸는 포인트가 되었다. 거실 옆방은 슬라이딩 도어를 철거하고 고양이 두 마리를 위한 서재 겸 플레이룸으로 새롭게 연출했다. 데스크 앞 벽면은 대형 금속판으로 시공해 자석으로 메모와 사진을 붙일 수 있다. 이 집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쾌한 장치다.

소파는 리네 로제, 테이블은 펜디 까사, 코너에 작품처럼 둔 스탠드 조명은 톰 딕슨의 미러볼.

붉은 책 선반은 칼레모의 필라스터. 기둥 뒤로 보이는 서재 수납가구는 무어만의 이갈. 모두 인엔에서 구입.

벽면은 전면 금속판으로 시공해 페이퍼와 사진을 편하게 자석으로 붙일 수 있다. 서재의 데스크는 텍타의 M45, 에이치픽스에서 구입.

침실로 들어가는 입구에 벽을 세우고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걸어 갤러리처럼 연출했다.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난 펜디 까사의 침대를 꼭 구입하고 싶었던 집주인. 밝은 핑크 컬러에 맞춰 침실과 게스트룸 분위기를 구성했다.

주방과 이어지는 무드의 무늬목으로 마감한 침실. 간살 도어 너머로 드레스룸이 이어진다. 침대는 펜디 까사.

드레스룸 중앙에는 아일랜드형 수납장을 두어 동선을 정리했다.

멀티 룸에는 리네 로제의 소파만 두어 넓고 쾌적하게 구성했다.

프렌치 스타일의 타일과 유리 블록, 강렬한 오렌지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준 욕실.
안방 문을 열면 줄리안 오피의 작품이 먼저 맞아준다. 왼쪽은 침실, 오른쪽은 드레스룸인데, 혼자 쓰기에 다소 큰 안방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 안정감 있으면서도 기능적으로 구별했다. 안쪽에는 슬라이딩 간살 도어로 연결해 시선을 막기보다는 흐르게 하고, 침대 앞 사선 벽면에는 접이식 도어로 옷장을 맞춤 제작해 구조의 단점을 수납의 효율로 바꿨다. 드레스룸의 아일랜드 서랍장은 충분한 수납을 제공하면서도 여유를 남긴다. 안방 욕실은 집주인이 원한 프렌치 스타일을 반영해 오렌지빛 레드 컬러와 모자이크 타일로 포인트를 주었고, 여러 샘플을 직접 고르며 완성도를 높였다. 호텔처럼 머무르고 싶은 욕실을 목표로 공간의 만족감을 극대화했다.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 역할이에요.” 김희정 실장의 말처럼, 이 집은 그저 예쁜 집이 아니라 집주인 삶의 흐름에 정확히 반응한 공간이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대신, 지금의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집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이번 리노베이션이 가진 가장 큰 의미다. 이 집은 그렇게, 익숙한 공간 안에 새로운 나를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