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말 없는 공간이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법. 장면 분위기와 인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 속 인테리어 풍경, 그리고 그 미장센을 재현해줄 가구와 오브제를 소개한다.

© CJ ENM

© CJ ENM

© CJ ENM
헤어질 결심
모든 장면이 잔잔한 수면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엔 밀도 높은 감정이 팽팽하게 가라앉아 있다. 박찬욱 감독이 디렉팅하고 류성희 미술감독이 연출한 <헤어질 결심>의 공간은 인물의 내면을 은밀히 반영하는 또 하나의 서사다. 서래의 집은 말보다 많은 것을 암시한다. 파도처럼 출렁이고 산맥처럼 흐르는 푸른 벽지는 영화의 두 주요 배경인 산과 바다를 은유한다. 바다와 산, 목소리와 침묵의 파동이 겹겹이 얽혀 잔잔한 수면 아래 숨겨진 인물의 심리 또한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가구와 소품은 서래의 전남편 기도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어두운 원목 가구를 중심으로 배치된 소품들에는 그의 고집스러운 취향과 성격이 스며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감각적으로 비틀려 있는, 공간이 남긴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그 잔상을 따라 서래 집을 다시 상상하고 재구성해보았다.
1 데일 이탈리아, 시누오 입체적인 전면 디자인을 갖춰,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주는 사이드보드. 2 까사망스, 송켓 전통 직조 방식에 금속 포일을 더해 입체적인 질감과 금속광을 살렸다. 다브에서 판매. 3 베르나르도, 알베르틴 티컵 & 소서 18세기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가장자리가 물결치듯 부드럽게 굴곡진 형태의 티 세트. 4 마인더갭, 시 웨이브 유려한 곡선이 깊은 바다의 파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벽지. 다브에서 판매. 5 까시나, 레폴로 샬롯 페리앙이 1953년 도쿄에서 구상된 모듈형 가구로, 쿠션 탈부착이 가능해 테이블, 벤치, 소파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6 매트라이트 밀라노, 푼고토 알라바스터와 새틴 브라스를 조합한 조형적 디자인의 램프. 7 콘스탄티니 디자인, 우첼로 고대 그리스 의자 클리스모스에서 영감받은 곡선형 다리가 특징인 테이블. 8 양태오×드 고네이, 꽃을 위한 계단 경복궁과 창덕궁의 화계에서 영감받은 궁궐도에 조선시대 건축 그림의 고고함을 담았다. 유앤어스에서 판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 속 공간은 1920년대, 이른바 ‘광란의 시대’를 구현한 무대이자 주인공 개츠비의 욕망과 결핍을 응축한 상징적 세계다. 개츠비의 집이 단순히 부의 과시를 넘어 사랑과 신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면, 그가 사랑했던(혹은 사랑한다고 믿었던) 데이지 뷰캐넌과 남편 톰의 저택은 고전적인 권위를 드리운 ‘올드 머니’의 공간이다. 영화 속 집은 화려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황금빛 샹들리에,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가구, 유려한 곡선과 광택을 머금은 장식품들은 상류 계층의 이상화된 생활양식을 구현한다. 또 동시에 그 이면에 감춰진 허영과 정서적 공허를 암시한다. 대담한 기하학 패턴과 반사되는 유리, 날카롭게 각진 조형 요소들은 시대의 욕망을 시각화하며, 그 중심에서 개츠비는 점점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삼켜진다. 지나치게 아름다워 오히려 이질적인 이 공간은 사치와 기교로 치장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1 일 파라루메 마리나, 2318 샹들리에 외부 16구, 내부 15구 조명의 입체적 구성으로 공간 전체에 화려함을 더하는 클래식 샹들리에. 2 C.G. 카펠레티, 2332 정제된 조각과 은은한 골드 마감의 암체어. 3 나니마르퀴나, 블러 러그 멀리서 보면 뿌연 표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리드미컬한 선과 패턴이 드러난다. 4 에뀌, 레장스 캔들 홀더 우아한 곡선과 자연 모티프를 담은 촛대로 섬세한 조각과 마감까지 수작업으로 완성된 클래식한 오브제. 5 피에르 프레이, 랄라 기하학적인 패턴과 따뜻한 컬러로 사막을 연상시키는 패브릭 천. 6 로베르토 지오바니니, 1247G 프랑스 루이 15세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고전미와 섬세한 장인정신을 겸비한 커피 테이블. 7 이 보르본 카포디몽테, 베르사유 센터피스 고블렛 다채로운 꽃 장식의 세라믹 볼이 어우러진 클래식 센터피스는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8 C.G. 카펠레티, 2315 비치 원목에 블랙 볼 위 금박 마감과 24K 도금 브론즈 장식, 정교한 패턴 패브릭으로 장식한 암체어. 9 세르지오 빌라, 오푸스 글라스 소파 곡선형 조각 프레임으로 아르데코적 화려함을 담아냈다.
쉘부르의 우산
〈쉘부르의 우산〉 속 주느비에브의 집은 영화의 서정성과 경쾌한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회화적인 색의 흐름과 감정의 흐름이 맞물리는 이 공간은 철저하게 계산한 세트와 인공적 미장센 위에 구축되었다. 파란 벽지와 화려한 꽃무늬 패턴은 17세 주느비에브의 순수함과 불안정한 내면을 병치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며, 전통적 구도의 테이블은 엄마 마담 에므리의 보수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이러한 대비는 인물 간 긴장을 암시하며, 주느비에브의 감정은 배경의 색조와 함께 점진적으로 고조된다. 영화 속 공간은 리얼리즘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감정의 실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자크 데미 감독은 현실을 노래처럼, 공간을 그림처럼 연출하며 비현실적인 무대 안에서 가장 선명한 감정에 도달한다.
1 디자이너스 길드, 마가레타 야생 풀과 양귀비가 정교하게 그려진 식물 일러스트 벽지는 부드러운 옴브레 배경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깊이감을 준다. 2 에뀌, 페레스 브래드 바스켓 가장자리에 섬세한 보더 장식을 덧대 이음새 없이 매끄럽고 견고한 마감을 줬다. 3 에뀌,
세콰이아 패이스트리 포크&나이프 1930년대에 탄생한 커틀러리로, 아르 데코 양식의 기하학적 구성과 대담한 라인이 어우러진 디자인을 갖췄다. 4 알렉산더 니쉬 스튜디오, 웨이비 미러 고급 오크에 불을 살짝 그슬려 자연스러운 결과 깊이를 살린 뒤, 하드 왁스 오일로 부드럽게 마감한 수제 거울. 5 am.o 아틀리에, 아파라도르 호텔 클래식한 감성과 대담한 현대적 라인이 조화를 이루는 콘솔은 고급스러운 임부야 원목을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6 아르테미데, 트루아 루아 벨벳 소재와 둥근 선의 조화로 고전미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귀여운 조명. 7 라리끄, 100포인츠 와인 디캔터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글라스 시리즈. 8 아르텍, 알토 테이블 80A 소형 주방부터 대형 다이닝 룸, 홈오피스, 코워킹 스페이스까지 다양한 공간에 어울리는 다용도 테이블. 9 피에르 프레이, 디트로이트 햇살 가득한 마이애미 해변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 팔레트의 와이드 스트라이프 패턴 벽지.
패터슨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집은 낡고 소박하지만, 그 안엔 정돈된 질서와 자유가 공존한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크 프리드버그는 이 공간을 ‘패터슨의 세계관이 구현된 물리적 장소’로 만들기 위해 뉴저지 패터슨의 현지에서 로케이션과 세트를 절묘하게 조율했다. 주방은 대화를 위한 무대이자, 반복되는 하루의 리듬이 축적되는 장소다. 원형 식탁과 패턴 커튼, 손때 묻은 러그는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살아 있는 현실 감각을 전달한다.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패터슨의 사유와 시가 머문다. 반면, 거실과 침실은 아내 로라의 감각으로 덧칠된 세계다. 흑백 도트, 애니멀 패턴, 체크무늬, 기하학적 요소들로 구성된 인테리어는 그의 꿈과 창조적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상반된 감각이 공존하는 두 공간은 불편한 시각적 충돌을 이룬다기보다 각자의 리듬으로 나란히 흐르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제한된 공간을 통해 감정의 과잉 없이도 삶의 밀도를 전달했다.
1 셉 베르붐, 조이아스 트리보 테이블 브라질 카르나우바 야자에서 영감을 받은 테이블 시리즈. 섬유의 색과 질감을 달리해 나무의 형태와 생태를 표현했다. 2 노르딕 노츠, 보호 스톡홀름의 석재 계단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적인 라인과 보헤미안 텍스처를 조합한 러그. 3 지오파가니, 수베니르 암체어 피에르 잔느레의 디자인을 오마주한 암체어. 엘름 우드를 천연 염색으로 마감해 질감과 결을 살렸다. 4 아르텍, 시에나 쿠션 커버 알바 알토가 1954년 디자인한 패턴을 적용한 커버로, 중세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기하학적 무늬를 갖췄다. 5 까사망스, 요하라 벨벳 질감과 은은한 패턴이 공간에 부드러운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플레인 벽지. 6 돌체앤가바나, 부카네베 소파 지브라 패턴의 강렬한 패브릭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유쾌한 디자인의 소파. 7 마리오니, 그레고리 커피 테이블 금속 베이스에 대리석 원형 상판을 조합한 테이블. 고급 소재와 장인의 마감이 어우러진 맞춤형 디자인이 특징. 8 구비, 그래비티 테이블 램프 무게감 있는 원기둥 베이스와 가벼운 셰이드가 조형적 균형을 이루는 램프. 절제된 우아함과 기능미가 어우러진다.
줄리 & 줄리아
프랑스의 전통적 감각과 미국식 실용주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줄리아 차일드의 주방은 그의 열정과 정체성을 담아낸 무대다. 노라 에프론 감독과 마크 리커 미술감독은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의 실제 주방을 철저히 고증해, 기능성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세심하게 재현했다. 손이 닿는 위치에 정갈하게 정렬된 조리 도구와 늘 열려 있는 아일랜드형 작업대는, 이곳이 완성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공간임을 시사한다. 이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줄리아의 심리적 풍경이기도 하다. 줄리아가 케이크를 만들고, 수프를 끓이며, 요리책 위에 메모하는 모든 순간은 주방이라는 공간을 감정과 열정으로 채운다. 이는 그 자체로 당시 여성들의 억눌린 정체성과 사회적 제약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자, 즐거운 해방의 몸짓으로 읽힌다. 정돈돼 있지만 결코 정지돼 있지 않은 이 공간은 일상이라는 이름의 서사를 가장 섬세하게 보여준다.
1 로얄 코펜하겐, 프린세스 오발 접시 가장자리를 핸드페인팅한 레이스 패턴과 클래식한 실루엣이 어우러진 로맨틱한 플레이트. 2 르크루제, 비쥬 스푼 스파튤라 내열성과 유연성을 갖춘 실리콘 소재로 반죽부터 볶음 요리까지 폭넓게 활용 가능하다. 3 LSA 바이 포커시스, 클라라 케이크 스탠드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 소재의 케이크 스탠드로, 넓은 돔과 두껍고 짧은 스템이 특징이다. 4 르크루제, 카술레 서빙 볼 르크루제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내열성, 내구성이 뛰어난 도자 재질이 특징인 볼. 5 샌드버그, 리칸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반복적으로 수놓은 패턴의 유쾌한 벽지. 다브에서 판매. 6 불탑, 메이플 도마 단단하고 촘촘한 메이플 우드로 제작되어 부드럽고 위생적이며, 항균 작용을 돕는 타닌 성분이 자연스럽게 방출되는 고급 조리 도마. 7 자노타, 콰데르나 테이블 화이트 라미네이트 우드와 블랙 격자무늬가 특징으로, 반모더니즘 건축운동을 이끈 수퍼스튜디오의 철학이 담겼다. 8 알레시, 신투라 오리오네 프라이팬 기능성과 정밀함을 겸비해 창의적이고 진중한 홈 쿠킹에 이상적인 프라이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