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인테리어 풍경을 재현해줄 가구와 오브제들

영화 속 인테리어 풍경을 재현해줄 가구와 오브제들

영화 속 인테리어 풍경을 재현해줄 가구와 오브제들

때로는 말 없는 공간이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법. 장면 분위기와 인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 속 인테리어 풍경, 그리고 그 미장센을 재현해줄 가구와 오브제를 소개한다.

© CJ ENM

© CJ ENM

© CJ ENM

헤어질 결심
모든 장면이 잔잔한 수면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엔 밀도 높은 감정이 팽팽하게 가라앉아 있다. 박찬욱 감독이 디렉팅하고 류성희 미술감독이 연출한 <헤어질 결심>의 공간은 인물의 내면을 은밀히 반영하는 또 하나의 서사다. 서래의 집은 말보다 많은 것을 암시한다. 파도처럼 출렁이고 산맥처럼 흐르는 푸른 벽지는 영화의 두 주요 배경인 산과 바다를 은유한다. 바다와 산, 목소리와 침묵의 파동이 겹겹이 얽혀 잔잔한 수면 아래 숨겨진 인물의 심리 또한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가구와 소품은 서래의 전남편 기도수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어두운 원목 가구를 중심으로 배치된 소품들에는 그의 고집스러운 취향과 성격이 스며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감각적으로 비틀려 있는, 공간이 남긴 여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그 잔상을 따라 서래 집을 다시 상상하고 재구성해보았다.

1 데일 이탈리아, 시누오 입체적인 전면 디자인을 갖춰,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주는 사이드보드. 2 까사망스, 송켓 전통 직조 방식에 금속 포일을 더해 입체적인 질감과 금속광을 살렸다. 다브에서 판매. 3 베르나르도, 알베르틴 티컵 & 소서 18세기 스타일에서 영감받은, 가장자리가 물결치듯 부드럽게 굴곡진 형태의 티 세트. 4 마인더갭, 시 웨이브 유려한 곡선이 깊은 바다의 파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벽지. 다브에서 판매. 5 까시나, 레폴로 샬롯 페리앙이 1953년 도쿄에서 구상된 모듈형 가구로, 쿠션 탈부착이 가능해 테이블, 벤치, 소파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다. 6 매트라이트 밀라노, 푼고토 알라바스터와 새틴 브라스를 조합한 조형적 디자인의 램프. 7 콘스탄티니 디자인, 우첼로 고대 그리스 의자 클리스모스에서 영감받은 곡선형 다리가 특징인 테이블. 8 양태오×드 고네이, 꽃을 위한 계단 경복궁과 창덕궁의 화계에서 영감받은 궁궐도에 조선시대 건축 그림의 고고함을 담았다. 유앤어스에서 판매.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개츠비〉 속 공간은 1920년대, 이른바 ‘광란의 시대’를 구현한 무대이자 주인공 개츠비의 욕망과 결핍을 응축한 상징적 세계다. 개츠비의 집이 단순히 부의 과시를 넘어 사랑과 신분 상승을 위한 일종의 장치였다면, 그가 사랑했던(혹은 사랑한다고 믿었던) 데이지 뷰캐넌과 남편 톰의 저택은 고전적인 권위를 드리운 ‘올드 머니’의 공간이다. 영화 속 집은 화려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황금빛 샹들리에,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가구, 유려한 곡선과 광택을 머금은 장식품들은 상류 계층의 이상화된 생활양식을 구현한다. 또 동시에 그 이면에 감춰진 허영과 정서적 공허를 암시한다. 대담한 기하학 패턴과 반사되는 유리, 날카롭게 각진 조형 요소들은 시대의 욕망을 시각화하며, 그 중심에서 개츠비는 점점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삼켜진다. 지나치게 아름다워 오히려 이질적인 이 공간은 사치와 기교로 치장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1 일 파라루메 마리나, 2318 샹들리에 외부 16구, 내부 15구 조명의 입체적 구성으로 공간 전체에 화려함을 더하는 클래식 샹들리에. 2 C.G. 카펠레티, 2332 정제된 조각과 은은한 골드 마감의 암체어. 3 나니마르퀴나, 블러 러그 멀리서 보면 뿌연 표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리드미컬한 선과 패턴이 드러난다. 4 에뀌, 레장스 캔들 홀더 우아한 곡선과 자연 모티프를 담은 촛대로 섬세한 조각과 마감까지 수작업으로 완성된 클래식한 오브제. 5 피에르 프레이, 랄라 기하학적인 패턴과 따뜻한 컬러로 사막을 연상시키는 패브릭 천. 6 로베르토 지오바니니, 1247G 프랑스 루이 15세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고전미와 섬세한 장인정신을 겸비한 커피 테이블. 7 이 보르본 카포디몽테, 베르사유 센터피스 고블렛 다채로운 꽃 장식의 세라믹 볼이 어우러진 클래식 센터피스는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8 C.G. 카펠레티, 2315 비치 원목에 블랙 볼 위 금박 마감과 24K 도금 브론즈 장식, 정교한 패턴 패브릭으로 장식한 암체어. 9 세르지오 빌라, 오푸스 글라스 소파 곡선형 조각 프레임으로 아르데코적 화려함을 담아냈다.

쉘부르의 우산
〈쉘부르의 우산〉 속 주느비에브의 집은 영화의 서정성과 경쾌한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회화적인 색의 흐름과 감정의 흐름이 맞물리는 이 공간은 철저하게 계산한 세트와 인공적 미장센 위에 구축되었다. 파란 벽지와 화려한 꽃무늬 패턴은 17세 주느비에브의 순수함과 불안정한 내면을 병치하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하며, 전통적 구도의 테이블은 엄마 마담 에므리의 보수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이러한 대비는 인물 간 긴장을 암시하며, 주느비에브의 감정은 배경의 색조와 함께 점진적으로 고조된다. 영화 속 공간은 리얼리즘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감정의 실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자크 데미 감독은 현실을 노래처럼, 공간을 그림처럼 연출하며 비현실적인 무대 안에서 가장 선명한 감정에 도달한다.

1 디자이너스 길드, 마가레타 야생 풀과 양귀비가 정교하게 그려진 식물 일러스트 벽지는 부드러운 옴브레 배경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깊이감을 준다. 2 에뀌, 페레스 브래드 바스켓 가장자리에 섬세한 보더 장식을 덧대 이음새 없이 매끄럽고 견고한 마감을 줬다. 3 에뀌,
세콰이아 패이스트리 포크&나이프 1930년대에 탄생한 커틀러리로, 아르 데코 양식의 기하학적 구성과 대담한 라인이 어우러진 디자인을 갖췄다. 4 알렉산더 니쉬 스튜디오, 웨이비 미러 고급 오크에 불을 살짝 그슬려 자연스러운 결과 깊이를 살린 뒤, 하드 왁스 오일로 부드럽게 마감한 수제 거울. 5 am.o 아틀리에, 아파라도르 호텔 클래식한 감성과 대담한 현대적 라인이 조화를 이루는 콘솔은 고급스러운 임부야 원목을 수작업으로 제작했다. 6 아르테미데, 트루아 루아 벨벳 소재와 둥근 선의 조화로 고전미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귀여운 조명. 7 라리끄, 100포인츠 와인 디캔터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글라스 시리즈. 8 아르텍, 알토 테이블 80A 소형 주방부터 대형 다이닝 룸, 홈오피스, 코워킹 스페이스까지 다양한 공간에 어울리는 다용도 테이블. 9 피에르 프레이, 디트로이트 햇살 가득한 마이애미 해변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 팔레트의 와이드 스트라이프 패턴 벽지.

패터슨
일상 속에서 틈틈이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집은 낡고 소박하지만, 그 안엔 정돈된 질서와 자유가 공존한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마크 프리드버그는 이 공간을 ‘패터슨의 세계관이 구현된 물리적 장소’로 만들기 위해 뉴저지 패터슨의 현지에서 로케이션과 세트를 절묘하게 조율했다. 주방은 대화를 위한 무대이자, 반복되는 하루의 리듬이 축적되는 장소다. 원형 식탁과 패턴 커튼, 손때 묻은 러그는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살아 있는 현실 감각을 전달한다.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패터슨의 사유와 시가 머문다. 반면, 거실과 침실은 아내 로라의 감각으로 덧칠된 세계다. 흑백 도트, 애니멀 패턴, 체크무늬, 기하학적 요소들로 구성된 인테리어는 그의 꿈과 창조적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상반된 감각이 공존하는 두 공간은 불편한 시각적 충돌을 이룬다기보다 각자의 리듬으로 나란히 흐르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짐 자무쉬 감독은 이 제한된 공간을 통해 감정의 과잉 없이도 삶의 밀도를 전달했다.

1 셉 베르붐, 조이아스 트리보 테이블 브라질 카르나우바 야자에서 영감을 받은 테이블 시리즈. 섬유의 색과 질감을 달리해 나무의 형태와 생태를 표현했다. 2 노르딕 노츠, 보호 스톡홀름의 석재 계단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적인 라인과 보헤미안 텍스처를 조합한 러그. 3 지오파가니, 수베니르 암체어 피에르 잔느레의 디자인을 오마주한 암체어. 엘름 우드를 천연 염색으로 마감해 질감과 결을 살렸다. 4 아르텍, 시에나 쿠션 커버 알바 알토가 1954년 디자인한 패턴을 적용한 커버로, 중세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기하학적 무늬를 갖췄다. 5 까사망스, 요하라 벨벳 질감과 은은한 패턴이 공간에 부드러운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플레인 벽지. 6 돌체앤가바나, 부카네베 소파 지브라 패턴의 강렬한 패브릭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유쾌한 디자인의 소파. 7 마리오니, 그레고리 커피 테이블 금속 베이스에 대리석 원형 상판을 조합한 테이블. 고급 소재와 장인의 마감이 어우러진 맞춤형 디자인이 특징. 8 구비, 그래비티 테이블 램프 무게감 있는 원기둥 베이스와 가벼운 셰이드가 조형적 균형을 이루는 램프. 절제된 우아함과 기능미가 어우러진다.

줄리 & 줄리아
프랑스의 전통적 감각과 미국식 실용주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줄리아 차일드의 주방은 그의 열정과 정체성을 담아낸 무대다. 노라 에프론 감독과 마크 리커 미술감독은 실존 인물인 줄리아 차일드의 실제 주방을 철저히 고증해, 기능성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가장 사적인 공간을 세심하게 재현했다. 손이 닿는 위치에 정갈하게 정렬된 조리 도구와 늘 열려 있는 아일랜드형 작업대는, 이곳이 완성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공간임을 시사한다. 이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줄리아의 심리적 풍경이기도 하다. 줄리아가 케이크를 만들고, 수프를 끓이며, 요리책 위에 메모하는 모든 순간은 주방이라는 공간을 감정과 열정으로 채운다. 이는 그 자체로 당시 여성들의 억눌린 정체성과 사회적 제약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자, 즐거운 해방의 몸짓으로 읽힌다. 정돈돼 있지만 결코 정지돼 있지 않은 이 공간은 일상이라는 이름의 서사를 가장 섬세하게 보여준다.

1 로얄 코펜하겐, 프린세스 오발 접시 가장자리를 핸드페인팅한 레이스 패턴과 클래식한 실루엣이 어우러진 로맨틱한 플레이트. 2 르크루제, 비쥬 스푼 스파튤라 내열성과 유연성을 갖춘 실리콘 소재로 반죽부터 볶음 요리까지 폭넓게 활용 가능하다. 3 LSA 바이 포커시스, 클라라 케이크 스탠드 입으로 불어 만든 유리 소재의 케이크 스탠드로, 넓은 돔과 두껍고 짧은 스템이 특징이다. 4 르크루제, 카술레 서빙 볼 르크루제 특유의 선명한 색감과 내열성, 내구성이 뛰어난 도자 재질이 특징인 볼. 5 샌드버그, 리칸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클로버를 반복적으로 수놓은 패턴의 유쾌한 벽지. 다브에서 판매. 6 불탑, 메이플 도마 단단하고 촘촘한 메이플 우드로 제작되어 부드럽고 위생적이며, 항균 작용을 돕는 타닌 성분이 자연스럽게 방출되는 고급 조리 도마. 7 자노타, 콰데르나 테이블 화이트 라미네이트 우드와 블랙 격자무늬가 특징으로, 반모더니즘 건축운동을 이끈 수퍼스튜디오의 철학이 담겼다. 8 알레시, 신투라 오리오네 프라이팬 기능성과 정밀함을 겸비해 창의적이고 진중한 홈 쿠킹에 이상적인 프라이팬.

CREDIT

에디터

TAGS
화원의 집

화원의 집

화원의 집

생활의 흔적을 감추는 시대, 라이프 더 화원의 김선경 대표는 오히려 삶을 드러낸다.
색과 무늬, 감각으로 채운 이곳은 형형색색의 리듬이 흐른다.

거실 한쪽을 존재감 있게 자리하고 있는 빈티지 장. 그 안에는 오랜 시간 그녀가 컬렉팅해온 빈티지 오브제들이 가득하다.

리사 코르티의 화려한 패턴이 돋보이는 거실. 벽에 걸린 사진 작품은 김선경 대표의 남편이자 포토그래퍼 최현준 작가의 작품.

마당을 지나 현관문 앞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색이 말을 건다. 밝은 초록 벽면이 비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드 소재 주방과 다채로운 색채가 뒤섞인 공간이 맞이한다. 익숙한 질서 대신, 우아하게 흩어진 감각이 돋보인다. 알록달록한 패브릭, 빛 바랜 앤티크, 선명한 벽지, 패치워크 전등갓이 한데 어우러져 혼란스럽지만 아름답기도 하다. 이곳은 패브릭 셀렉트 숍 ‘라이프 더 화원’의 쇼룸으로, 김선경 대표가 사는 방식이자 보여주는 방식, 그리고 제안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요즘은 다 숨기잖아요. 키친도 벽장처럼 닫아두고, 생활이 드러나는 걸 피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너무 불편해요. 냄비도 나오고, 싱크대도 보이고, 조리대도 노출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짓고 고치는 데 있어 그녀는 수월한 선택보다 불편함을 택한다. 기성 제품의 편리를 거부하고, 무늬와 색이 주는 에너지를 좇으며, 식탁 위에는 유리 대신 패브릭을 올린다.

김선경 대표가 애정하는 독일 비즈 작가 잉게 케른의 주얼리. 액세서리를 넘어 조형적인 형태와 색감이 예사롭지 않다.

케냐에서 온 패브릭을 전등 갓으로 활용한 조명, 대나무를 엮어 만든 침대는 랄프 로렌 빈티지.

다양한 빈티지 사진 작품을 진열해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리사 코르티의 다이닝 테이블 보와 케냐에서 산 패브릭으로 만든 전등 갓, 빈티지 가구가 돋보이는 다이닝

30여 년간 패션 VMD와 광고, 홍보 대행사 대표로 일했던 그녀는 “직원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며 코로나19 시기에 예천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이곳 광주에 자리한 라이프 더 화원을 피워냈다. “여기는 이제 한 3개월 정도 되었네요. 저는 컬러를 너무 좋아해요. 특히 리사 코르티의 패브릭을 처음 봤을 때는 미친 거죠. 그 강렬함이 한국의 색동저고리 같기도 하고, 우리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주던 사탕색 이불 같기도 했어요.” 취향의 방향이 명확해지자 브랜드가 따라왔다. 이탈리아 패브릭 브랜드 리사 코르티, 영국의 아베니다 홈, 핸드프린팅 스튜디오 멜리사 화이트, 아프리카에서 온 패브릭까지. 선택의 기준은 오직 감각과 공감이었다.

공간 곳곳 저마다의 이야기를 건네는 오브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통통 튀는 컬러만큼이나 활력 넘치는 라이프 더 화원의 김선경 대표.

색감과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리사 코르티의 패브릭과 어우러지는 앤트로폴로지 그릇.

광주 쇼룸은 마당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1층에는 실제 생활 공간처럼 꾸민 거실과 주방, 다이닝 공간이 자리한다. 리사 코르티의 테이블보와 식기, 아프리카산 패브릭, 독일의 비즈 주얼리 작가 잉게 케른의 액세서리를 비롯해 다양한 침구와 쿠션이 생활 장면 속에 스며든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길목에는 포토그래퍼인 남편 최현준 작가의 작품과 그녀가 수집한 빈티지 사진이 걸려 있고, 2층에는 리사 코르티의 침구로 스타일링한 침실과 그녀가 실제 머무는 방이 나란히 이어진다. 욕실과 벽면에는 현재 독점 수입 중인 멜리사 화이트의 벽지가 공간의 톤을 이끈다. “벽지는 방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요. 그 안에 컬러가 있으면 일상도 다르게 느껴져요. 저는 우리 고객들에게 꼭 집 안에 색을 놓아보라고 말씀드려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지거든요.” 이곳은 결국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라기보다, 색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시선이 구현된 작은 세계 같았다. 그렇게 놓인 물건 하나하나가 삶의 기호이자 제안인 것이다. “저는 그냥 제안할 뿐이에요. 이 패브릭을 커튼으로 쓰든 매트로 쓰든, 완성은 쓰는 사람의 몫이죠.”

영국 핸드페인팅 작가 멜리사 화이트의 섬세한 벽지와 빈티지 침대가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실제 손님이 방문했을 때 공간별 연출 팁을 전수해줄 수 있도록 마련한 생활감이 묻어난 공간.

라이프 더 화원 광주 쇼룸의 마당에 연출한 아웃도어 다이닝 공간. 화려한 패턴의 패브릭과 여름 햇살이 만나 싱그럽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TAGS
경쾌한 여름과 셸터 아일랜드 그리스 하우스

경쾌한 여름과 셸터 아일랜드 그리스 하우스

경쾌한 여름과 셸터 아일랜드 그리스 하우스

대칭적인 구조와 절제된 미감, 그 위에 얹은 경쾌한 스트라이프와 여유로운 여름의 무드.
고전적인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으로 리노베이션한 셰인먼 가족의 집.

넓은 화이트 패널과 대칭적인 구조로 지은, 클래식한 미감의 집.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의 건축 외관은 처음 집을 지은 1990년대 말 모습을 거의 유지했다.

화이트와 블루, 빈티지 가구와 예술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거실. 소파는 제이슨 밀러 디자인으로 더 퓨처 퍼펙트 제품. 커피 테이블은 맞춤 제작한 것.

정원에 나란히 선 딸 알렉시아 셰인먼과 아버지 앤드류 셰인먼.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집을 다시 설계하는 일은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니다. 기억을 되짚고, 잊고 있던 감정과 마주하며, 무엇을 남기고 덜어낼지 결정해야 하는 섬세한 과정이다. 셸터 아일랜드에 있는 이 집은 셰인먼 가족에게 그런 시간의 결정체다. 이 섬과의 인연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펨브룩 & 아이브스 Pembrooke & Ives를 설립하기 전, 앤드류 셰인먼은 그의 아내와 처음 이 섬을 찾았다. 숨겨진 보석처럼 여겨진 이곳에서 두 사람은 주말을 보내며 자연을 만끽했고, 결혼식도 이곳에서 치렀다. 그러고 나서 1999년에 숲길 끝 조용한 대지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당시에는 평범한 목조 랜치하우스가 있었지만, 셰인먼은 수영장을 먼저 조성한 뒤 고전적인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18세기 말~19세기 초 유행한 고대 그리스 건축을 모티프로 한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주택을 새로 지었다. 건축 경험이 없는 지역의 배 제작자에게 시공을 맡기고, 설계는 부부가 직접 도맡았다. 그러다 몇 년 전, 다락방의 파이프가 터져 집 전체가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3년에 걸친 리노베이션으로 이어졌고, 작업은 복구를 넘어 이 집을 처음 지었을 때의 아쉬움을 되짚고 완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딸 알렉시아 셰인먼과 함께한 프로젝트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펨브룩 & 아이브스의 최고 전략 및 브랜드 책임자로서, 현재 아테네에 거주 중인 알렉시아는 부녀가 함께한 이번 작업이 자연스럽고 특별한 협업이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의 집을 디자인하는 일이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보다 더 어렵다고 느꼈어요. 결정할 것이 너무 많거든요!”

브릭 타일과 녹색 대리석, 템버보드 원목으로 맞춤 제작한 주방 아일랜드와 캐비닛.

유쾌한 색감의 커피 테이블은 션 거슬리 Sean Gerstley.

다이닝 테이블 위에 오리 오브제를 두어 유머를 더했다. 의자는 허먼 밀러, 천장의 ‘인비저블 샹들리에 Invisible Chandelier’는 캐스터.

이번 리노베이션은 그동안 쌓은 경험과 변화된 미감을 반영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완성된 주택은 약 330㎡ 규모로 침실 다섯 개와 욕실 다섯 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심 복도를 따라 방들이 대칭적으로 배치된 구조는 고전적인 그리스 리바이벌 건축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각각의 방은 철도처럼 길게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큰 공간처럼 느껴지고, 거실과 다이닝 룸, 패밀리 룸은 오픈 플랜으로 설계되어 슬라이딩 포켓 도어로 필요시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리노베이션의 핵심은 구조와 마감재의 개선이었다. 기존 대칭성과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기능성과 분위기를 조율하는 데 집중했다. 알렉시아는 기존 욕실을 공유하던 침실 구조를 독립형 욕실로 바꾸고, 홈 오피스와 운동 공간을 새롭게 더했다. 문 높이를 높여 더 많은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집의 방향 역시 정원 뒤로 흐르는 하천을 향하게 조정해 탁 트인 조망을 완성했다. 소재 외에 디테일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앤드류는 와이드 플랭크 원목 바닥재, 하이글로시 페인트 마감, 주방과 욕실에 들어간 고급 석재 등 집의 질감을 업그레이드했다. 이러한 재료의 선택은 공간의 깊이와 대비를 살리고, 전체적인 품격을 높여준다. 조경 역시 새롭게 단장되어, 집과 자연이 더욱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했 다. 가족이 가장 애정을 쏟은 공간은 주방과 거실이다. 주방은 클래식한 미감을 유지하되, 개방형 선반과 같은 실용적인 요소를 더해 현대적인 감각을 살렸다. 거실은 구조 자체를 유지하면서도 가구와 오브제를 좀 더 과감하고 다채롭게 구성했다. 고전적인 외관과 대비되는 조각적인 현대 가구는 시각적 긴장감을 더하고, 수집한 예술품과 함께 공간의 내러티브를 완성한다. 계단 난간과 커피 테이블 같은 일부 요소는 지역 장인에게 의뢰해 특별 제작해 조형적이고 예술적인 디테일을 더했다.

아트숍 같은 서재. 블루 그러데이션이 돋보이는 유리 테이블은 데이비드 길 갤러리 제품. 다리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이 집을 위해 특별 제작한 침대와 알루미늄 테이블. 테이블 위 나무 흉상은 빈티지 제품. 벽에 걸린 예술 작품은 데릭 애덤스

데이비드 보위의 사진을 크게 걸어둔 욕실.

가족의 사진이 벽면 가득 걸려 있는 복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알렉시아는 “집의 전체적인 구조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을 때”라는 의외의 답을 전했다. “단순히 새로운 공간을 짓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역사가 깃든 공간을 보존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이 들었거든요. 그 후로 이어진 모든 결정들이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십 년간 가족과 함께한 이 집은 단순한 여름 별장이 아니라 사계절 내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늘 그래왔듯이, 의미 있는 대화와 식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따뜻하고 여유롭고 자연과 맞닿아 있는 집, 그것이 우리가 이 집을 지으며 바라던 모든 것입니다.”

이번 리노베이션에서 구조 변경을 통해 새롭게 만든 오피스 공간. 빈티지 게임 테이블을 책상으로 배치했다. 의자는 스텔라 웍스. 선반은 비초에.

그린 컬러의 게스트 침실. 광택이 있는 래커 칠 마감으로 자연의 빛을 더욱 극대화한다.

새하얀 카라라 대리석과 브릭 타일이 우아하게 어우러진 게스트 욕실.

이 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수영장. 물 위에서 정원과 하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블레인 데이비스 Blaine Davis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