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골드 주방, 핑크 천장, 그리고 무라노 샹들리에까지. 패션 디자이너이자 모노 창립자인 엘리 미즈라히와,
그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위크로니아가 함께 완성한 쿠튀르 하우스.

클래식한 오스만식 몰딩과대리석 벽난로 위에 유쾌한 색채와 조형을 더했다

집 안 곳곳에 극적인 연출을 입힌 위크로니아의 창립자이자 디자이너 줄리앙 세반.
파리 한복판, 고전주의 건축의 중심에 위치한 1860년대 오스만식 아파트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변모했다. 웅장한 몰딩과 대리석 벽난로, 전통적인 우드 플로어링인 파르케 바닥재는 그대로 남겨두되, 그 위를 덮은 것은 마리골드색 주방과 에메랄드 욕실, 핑크 벨벳 소파, 그리고 무라노 유리로 제작된 샹들리에다. 대담하고 강렬하며, 어느 방을 들어서든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는 이 아파트의 주인은 바로 모노 Mônot의 창립자 엘리 미즈라히 Eli Mizrahi다. 조각적인 이브닝 웨어로 하이리 비버, 지젤 번천, 케이트 모스 등의 스타일을 완성해온 그가 이번엔 자신의 미감을 집 안에 입혔다. 프로젝트를 맡은 파리 스튜디오 위크로니아 Uchronia는 ‘클래식한 오스만식 틀 안에서 각 방이 고유한 정체성을 갖도록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컬러의 전환과 조형의 대비로 시선을 유도하는 마리골드 색을 입은 주방.
300m² 규모의 아파트는 6개의 방과 3개의 욕실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조형적인 마리골드 주방이 가장 먼저 시선을 끌고, 이어지는 에메랄드 그린 욕실은 대담한 색 전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베르사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다이닝 룸에는 20인용 맞춤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실크 리본으로 장식된 창문은 무대 세트처럼 유쾌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강렬한 시각 언어를 불어넣는 동시에 항상 일정한 절제를 가지고 접근했어요. 예를 들어 서재에는 목재의 진정성을 살리고자 상태 그대로 남겨두었고, 이 중립적인 베이스는 따뜻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재료의 절제된 느낌과 오브제의 표현력이 만들어내는 대비가 공간에 영화적인 차원을 부여하는 거죠.” 위크로니아가 말했다. 실제로 서재는 원목 벽면과 핑크색 천장, 베르너 팬톤의 소파, 그리고 크리스티앙 펠리차리의 물결 형태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아늑한 감각을 자아낸다.

좌우 대칭 속에 균형을 잡은 앤티크 오브제와 벽난로가 만나 고전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차분한 우드에 핑크로 스타일링한 서재. 위크로니아식 색채 실험이 돋보인다.

거울과 몰딩, 네온과 금속, 실크 원단으로 클래식과 실험적인 요소가 교차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 디너 룸.

패션의 연장선에 놓인 드레스 룸. 굴곡진 패턴의 커튼과 벤치, 꽃 모티프 러그와 관능적인 마네킹이 시선을 끈다.

플라워 모티프 쿠션과 그래픽적인 자동차 회화가 그려진 자유로운 감각의 라운지.

무게감이 느껴지는 버건디 벽면과 유기적 형태의 세면대, 거울, 조명이 돋보이는 초현실적 분위기의 욕실.

표범 무늬 벨벳 소파와 보라색 사이드 테이블로 완성한 살롱 공간.
클라이언트 엘리 미즈라히 역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아이디어와 레퍼런스를 제시했고, 디자인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표현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의 세계관과 취향이 매우 비슷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수월했습니다.” 디자이너와 오너는 강한 미적 기준과 감각,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 그리고 우아하면서도 대담한 공간을 추구하는 동일한 열망을 공유했다. 거실은 소프트 블루부터 화이트까지 그러데이션 색감으로 꾸며졌고, 실크 브랜드 프렐 Prelle의 패브릭이 사용되었다. 각 오브제가 이 집의 정체성과 기능에 맞춰 어우러질 수 있도록 대부분의 가구와 장식 요소는 맞춤 제작했다. 밝은 오렌지 컬러의 옷장, 은박 처리된 사이드 테이블, 숨겨진 거울과 조명, 저녁 식사를 위한 커트러리까지, 이 집의 모든 요소는 오직 이 프로젝트만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또 일부 빈티지 피스는 신중히 선별되어 새로운 소재로 재작업되었다. “예를 들면 드레싱 룸에 놓인 마리 앙투아네트 벤치는 프렐과 협업해 만든 패브릭으로 리커버링 했습니다. 이런 동시대 창작물과 리워크된 앤티크 조각들의 믹스 & 매치는 공간에 특별한 영혼을 불어넣고, 각 오브제의 수공예성과 유일성을 강조해 줍니다.” 오스만식 몰딩과 벽난로는 정교하게 복원되었고, 바닥은 위크로니아가 설계한 맞춤 패턴으로 다시 깔았다.

깊은 그린 컬러와 짙은 대리석 세면대, 물결 무늬의 거울, 커다란 타피스트리가 돋보이는 욕실.
“스튜디오 이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 이야기’를 뜻하는 위크로니 Uchrony에서 비롯된 만큼 여기서 바로 그런 공간을 창조하고자 했습니다. 전통적인 시간 기준을 의도적으로 벗어난, 시대를 넘나드는 공간 말이에요.” 다양한 스타일, 소재, 역사적 레퍼런스를 자유롭게 오가며 19세기인지, 1970년대인지 혹은 저 멀리 미래의 집인지 그 경계를 흐리는 이 아파트는 오스만 건축의 뼈대 위에 패션 디자이너의 조형 언어로 스타일링한 살아 있는 무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