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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조차 남아 있지 않던 종로구의 오래된 빌라 최상층. 라운드 천장과 나무의 결, 창밖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인 작은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창 너머로 동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긴 창가 바 테이블.
위치 : 서울시 종로구거주 인원 : 1인
면적 : 44.46㎡(13평)주거 형태 : 빌라
구조 : 방 2, 욕실 1시공 업체 : 건축사사무소 만화기획

화이트와 우드 톤으로 정리한 다이닝 공간. 무지에서 구입한 선반을 공간에 딱 맞게 설계했다.

꽤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왔어요. 이 동네와 집,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요. 종로구의 오래된 빌라 단지 안에 있는 1989년식 빌라이고, 1년 전쯤 직접 매입해 리모델링한 뒤 혼자 살고 있어요. 작은 집이지만 저에게는 처음으로 제대로 마련한 집이라 의미가 커요. 지금은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비인가 국제학교 코너스톤서울아카데미에서 기획과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 학생들의 사진과 영상 기록을 남기는 일도 함께 해요. 철학과 미디어, 음악 수업도 하고 있고, 목회자의 정체성도 계속 갖고 있어서 여러 역할을 오가며 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제게 집은 바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돌아와 숨을 고르고 다시 정리하는 장소예요.

이 동네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요? 마흔쯤에는 작은 집이라도 꼭 마련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오랫동안 월세와 전세를 오가며 살다 보니, 언젠가는 내 공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 집은 오래 비어 있던 집이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가격이 비교적 낮고 무엇보다 창밖 풍경이 좋았어요. 그걸 보는 순간 이 집은 고쳐서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저는 원래 서대문, 홍제, 홍은동 쪽에서 오래 살아서 이런 분위기의 동네가 익숙해요. 서울인데도 서울 같지 않은 느낌이 있고, 조금만 나가면 서촌이나 광화문 쪽으로 이어져 생활권도 잘 맞았어요.

특별히 공수한 타일이 포인트가 되는 아담한 주방.
하거나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갖는 박화목 씨.

리모델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우연히 만화기획을 알게 됐어요. 소장님들의 집인 뻐꾸기빌라도 15평 빌라를 실험적으로 풀어낸 작업처럼 느껴져 인상 깊었고, 평소 좋아하던 홍은동의 카페 에브리 코너 바이트 역시 만화기획 작업이라는 걸 알고 더 확신이 생겼죠. 저는 교토를 좋아하는데, 나무가 주는 분위기나 실내로 풍경을 들이는 방식, 오래된 것을 잘 다듬어 쓰는 감각 같은 취향을 이 팀이 잘 이해해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천장과 풍경인 것 같아요. 원래는 천장이 훨씬 낮았어요. 그런데 철거해보니 박공지붕 구조가 살아 있었고, 만화기획에서 그걸 최대한 살려 라운드 형태로 풀어줬어요. 작은 집이다 보니 위로 열리는 감각이 중요했거든요. 천장을 높이고 곡선을 주면서 훨씬 부드럽고 넓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 집에서 살면서 차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계절이 다 보이거든요.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봄에 바뀌는 색도 다 느껴지고요. 특히 설경이 압권이에요.

곡선을 살린 바 테이블.

창가 벤치는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저 자리는 처음부터 중요했어요. 이 빌라의 모든 집이 비슷한 창 구조를 갖고있는데, 그 부분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먼저 벤치 같은 자리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고, 만화기획에서 원목을 두고 바 테이블처럼 쓸 수 있게 정리해주었어요. 지금은 커피를 마시거나 간단히 식사할 때 가장 자주 쓰는 자리예요.

주방은 생각보다 꽤 적극적으로 짜여 있더라고요.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가요? 좋아해요. 그래서 작은 집이지만 주방은 최대한 크게 빼고 싶었어요. 물론 절대적으로 큰 주방은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 넉넉하게 쓰고 싶었거든요. 주방 가구는 전부 제작이에요. 교토에서 본 직사각형 타일의 느낌을 내고 싶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공사 중에 소장님들이 그런 느낌의 타일을 찾아주었어요. 제가 원하는 디테일을 거의 다 들어주었습니다.

집 안 분위기를 결정하는 가구나 소품은요? 처음에는 무지 모델룸 같은 집을 상상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무지 가구가 많아요. 재미있는 건 만화기획에서 그 가구들 규격까지 고려해서 벽체와 선반을 짜준 거예요. 당시 예산이 넉넉지 않아서 가구를 한번에 다 사지 못하고 조금씩 들였는데, 나중에 채워넣으면서 잘 맞춰졌다는 걸 느꼈어요.

작은 방에서 바라본 주방.
탄자니아에서 공수해온 아프리카 스타일의 유리병 뚜껑.
만화기획 소장님들이 선물로 준 잉고마우러 조명.

특별히 애정하는 부분이 있나요? 오래된 빌라의 원형을 살린 한지 문을 특히 좋아요. 원래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집의 오래된 분위기를 보여주는 요소라 꼭 살리고 싶었어요. 복원한 뒤에는 이 집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디테일 중 하나가 됐죠. 재미있는 물건으로는 빈티지 조명이 있어요. 우연히 당근마켓에서 발견한 아르테미데 조명인데, 한국에 잘 없는 모델이에요. 대사관 철거 과정에서 나온 걸 구한 건데, 그런 물건 하나가 집 전체 인상을 바꾸기도 하더라고요.

혼자 사는 작은 집으로서 더 분명해진 기준이 있었나요? 많이 두지 않는 것, 그리고 보기 좋은 것만 남기는 것. 음악 장비나 촬영 장비처럼 기능적인 것들은 지하 창고로 보내고, 이 위 공간은 최대한 단정하게 유지하고 싶었어요. 작은 집일수록 무엇을 둘지보다 무엇을 두지 않을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는 정말 매일 돌아오고 싶은 집이에요. 풍경도 좋고, 나무가 주는 촉감도 좋고, 작은 집인데도 여기서만 가능한 경험이 있다고 느껴요. 처음으로 제대로 마련한 집이기도 하고, 제 생활 방식과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해요. 작은 집이지만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감각은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이 집이 알려준 것 같아요.

욕실이 작아 밖으로 뺀 세면대.
창호 프레임이 포인트가 되는 침실.
목재 천장과 한지 창이 어우러진 작은 방.
창가 옆에 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여유로운 장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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