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에서 마주한 이건용 작가의 작품이 꽤나 오랫동안 내 휴대폰의 배경화면을 장식했다. 터프하고 굵직하게 표현한 터치와 깊게 레어어링된 색채감이 몇 번이고 다시 몸을 작품 앞으로 돌아가도록 이끌었던 당시의 인상을 조그만 화면에서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 만큼 갤러리 현대에서 진행된 작가의 개인전 <Bodyscape>는 내게 시간을 내서라도 방문해야 할 전시였다. 흔히 많은 이들은 이건용 작가를 두고 몸이 붓이 되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의 작업 방식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식이다. 대개 캔버스를 보고서 하나둘 빈 여백을 채워나가는 일반적인 방법을 그는 따르지 않는다. 대신 캔버스를 등에 지고서 혹은 캔버스 뒤에 서서 몸의 움직임에 따라 흘리듯 붓을 놀린다.그것이 내겐 단지 색을 입고 여백에 표현된 결과가 아닌 이를 쌓아 올리는 몸짓으로 회화라는 정의의 범주를 작가의 방식대로 새로이 전개해가는 것처럼 다가왔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전시장 한 켠에 이건용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부스를 마련해두었는데,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모두 하염없이 그의 몸짓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정의와 세계에 공명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회화의 가치는 단지 그 작품의 완성도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시간과 삶, 내면의 세계와 관객을 잇는 매개로써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