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의 지원을 받아 제작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우수공예품 지정제도(K-ribbon Selection)에 선정된 올해의 작가 5인을 만났다.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그들의 작품은 한국 공예의 미래를 세계로 이끈다.

독특한 미학의 세라믹 작업을 선보이는 이상호 작가.
이상호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 하나에도 ‘오래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는 고대의 문양, 흙의 질감, 그리고 한국적 장식들이 단순한 물건을 넘어 작은 역사를 품고 있는 존재다. 그가 만들어내는 <코리아 판타지 Korea Fantasy>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의 전통적 상징과 현대적 감각을 오가는 독특한 미학을 담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조선시대의 미학에 주목하며, 흙을 매개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해왔다. 특히 <피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그의 작업은 비정형의 미를 그릇에 담아, 단순한 생활용품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 그가 2023년 한국 고대 문양에 눈을 돌리게 된 순간은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다. 공진원에서 진행하는 전통문화 전문인력양성 프로그램 ‘전통가온 리더과정’에 참여한 그는 경주의 유적을 탐방하고 박대성 화백의 전시를 감상하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조선시대 이전의 고대 유물에 새겨진 장식에는 단순한 문양을 넘어선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고기 문양 하나에도 다산의 상징이 깃들고, 소용돌이 문양에는 영원한 생명력과 풍요로움을 품고 있었다. “고대 미학의 장식은 염원을 담고 쌓아가는 것이더라고요. 과도한 겉치레에 불과한 장식이 아니라 의미와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장식을 선보이고자 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상호 작가는 고대 문양이 가진 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흙의 물성에 결합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새롭게 작업 중인 ‘코리아 판타지 월 오브제’ 시리즈.

다양한 스타일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작업실 전경.
이번에 선보인 새로운 시리즈 <모듈 상감 접시>는 2019년부터 2021년의 <피스 시리즈>에 이어 2024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되었다. 조선시대 이전의 고대 문양을 현대적 조형 감각과 결합해 재구성한 공예품으로, 해외의 다양한 반응을 경험하며 한층 새롭게 변주한 작업이다. 유럽, 중동, 동남아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그의 공예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는 더욱 유연한 디자인 접근과 조화로운 형태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접시를 모듈 형식으로 구성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조립하거나 변형할 수 있도록 제작했다. 형태는 서양적 모던 디자인에서 가져왔다면, 장식은 한국 고대의 전통 문양을 추상적으로 적용했다. 고대 도자기 장식에서 나타나는 소용돌이 문양은 영원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음식을 먹는 이에게 활력을 주는 장식적 의미로 담고 있다. 그릇 안에 풍요의 이미지를 상감으로 새기고, 그 기운이 음식을 먹는 이에게 전해지도록 의도했다. 추상적인 선은 음각 장식 후 화장토를 입히는 선 상감 기법을 통해 매 순간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마치 액션 페인팅처럼 인간의 손으로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선의 흐름을 보여주며 공예적 요소를 강조했다.

2024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모듈 상감 접시.

도예 작업 과정. 몰딩 과정 후 형태를 만들고, 음각 장식 후 화장토를 입혀 추상적 형태를 살린다.
이 시리즈는 특히 ‘흙’이라는 소재가 주는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흙도 한국에 없는 여러 흙을 새롭게 조합하여 기존에 없던 물성을 만들어냈다. 유약이 흙과 만나 가마 속에서 예상치 못한 형태로 흐르며 자연스러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그의 작품에 독특한 생명감을 더한다. 그는 “회화와는 다르게, 가마에서 재료가 흙 위에 쌓여 변하는 모습에는 시간이 쌓인 울림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흙의 물성을 살리면서도 고대의 장식적 요소를 접시에 새겨넣어 흙과 문양이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2025년 1월, 이상호 작가는 메종&오브제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 부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코리아 판타지 Korean Fantasy>를 테마로, 기존에 선정된 우수공예품과 함께 오브제 시리즈를 조화롭게 구성해 한국 공예 작가로서 동시대적 관점을 밀도 있게 표현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앞서 2022~23년 우수공예품 지정제도 홍보관으로 참여하며 해외 페어의 구조를 이해하고, 바이어 응대와 수출 경험을 통해 해외 시장의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작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우수공예품 지정제 지원 시스템 덕분에 부스비, 통역비, 물류비 등을 직접 챙기며 전시 준비의 전 과정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모든 준비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서 전시 흐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공예가 전 세계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립적인 공예 작가로서의 성장과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가지런히 모아둔 작업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