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칵테일 플레이스 세 곳.





제로 웨이스트 칵테일 바, 제스트
2025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서 2위를 차지한 제스트 ZEST는 ‘지속 가능한 파인 드링킹’을 내세운 서울의 대표 칵테일 바로, 지금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마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를 지나자 대낮임에도 만석인 풍경이 그 명성을 톡톡히 증명했다. 메뉴판 첫머리에는 전시장 서문 같은 글이 적혀 있었는데, 바로 자투리 과일과 허브, 커피 찌꺼기까지 건조, 발효해 새로운 맛으로 되살린다는 ‘제로 웨이스트’ 철학이 담겨 있었다. 모든 칵테일이 일괄적으로 2만6000원으로 책정된 점도 마음에 들었다. 가격 고민 없이 오로지 칵테일 맛에만 집중해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고민 끝에 선택한 메뉴는 네 가지. 먼저, 남양주 허브로 담근 진과 직접 만든 토닉워터에 제철 과일을 곁들인 시그니처 메뉴 ‘Z&T’를 맛봤다. 이날은 참외가 더해져 산뜻함이 배가됐는데, 평소 심플한 진토닉은 선호하지 않지만 한 모금에 감탄할 만큼 균형감이 뛰어났다. 참고로 이곳에서 직접 만든 진은 500mL 병으로 판매도 한다. 두 번째는, 모험적인 메뉴인 ‘라스트 피스’를 선택했다. 플랜터레이 럼과 셰리에 파인애플 껍질 와인, 바게트 꼬다리, 태운 고르곤졸라가 들어간 독창적인 조합! 특히 미니 크루아상이 귀엽게 곁들여 나오는데, 이 또한 매력 포인트다. 한입 베어 물면 치즈 향이 알코올과 만나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그 다음 ‘화채’는 오가닉 진과 샤인머스켓 와인, 수박, 레몬그라스, 애플민트로 완성된 메뉴다. 동그란 수박 볼을 톡 하고 떨어뜨리면 거품이 올라오고, 시간이 지나 녹으면서 점점 달콤한 맛이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제주 감귤과 구좌읍 당근을 더한 ‘제주 가리발디’는 당근의 쌉싸래한 맛과 감귤의 은은한 단맛이 함께 어우러져 좋았지만, 다른 메뉴에 비해 다소 단조로운 주스 맛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지속 가능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맛과 재미로 풀어내며, 새로운 파인 드링킹 문화를 제시하는 바 제스트. 단연 아시아 베스트 바 2위를 거머쥘 만한다.
INSTAGRAM @zest.seoul



이상한 나라의 칵테일, 앨리스 청담
국내 대표 칵테일 바 앨리스 청담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김용주 바텐더가 문을 연 이곳은 오픈 이후로 꾸준히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스피크이지 바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올해는 13위로 선정되며, 지난해보다 무려 33계단 상승해 ‘하이스트 클라이머’ 상을 받는 등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압구정로데오 골목의 지하 꽃집 안쪽에 입구가 숨겨져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낮아진 조도 속 클래식하고 앤티크한 분위기가 반긴다. 루이스 캐럴의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장면처럼, 공간은 한순간 신비롭고 설레는 세계로 변한다. 작고 아기자기한 메뉴판을 펼치면, 트럼프 카드 모양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는 일러스트 덕분에 칵테일에 대한 지식 없어도 즐겁게 선택할 수 있다. 2부터 J, Q, K까지 숫자가 올라갈수록 도수가 높아지니 참고하자. 친절한 바텐더와 나누는 짧은 대화도 즐거운 경험이다. 취향과 원하는 향을 이야기하면 추천해준다. ‘화병의 물을 마시면 어떤 맛일까?’ 하는 상상에서 시작한 ‘페이스 투 베이스 Face to Vase’는 유칼립투스 향이 상쾌하게 입맛을 돋우고, 망고의 은은한 단맛이 밸런스를 맞춘다. ‘완더 플라워 Wander Flower’는 푸른 바다 같은 비주얼이 시선을 사로잡으며, 섬처럼 떠 있는 초콜릿 조각과 배 향의 청량함, 피트의 묵직함이 조화를 이룬다. 가장 독특한 경험은 ‘보르도 마티니 Bordeaux Martini’. 런던 드라이 진에 카베르네 소비뇽과 만치노 로소를 조합해서 레몬 머틀과 치즈 가니시를 올린 칵테일로, 클라우디파이 기법을 통해 음료를 일부러 구름처럼 탁하게 만들어 시각적 즐거움까지 더했다. 상상한 와인 향보다는 진의 풍미가 더 강하게 느껴져 아쉬웠지만, 취향에 맞춰 조정도 가능하다. 1인당 커버 차지(1만원)가 있지만, 상큼한 웰컴 드링크와 스낵 바구니가 함께 제공돼 만족도 높다. 숨겨진 입구, 창의적인 칵테일, 몰입감 있는 공간이 결합해서 마치 이상한 나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한 잔의 칵테일로 시작되는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꼭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INSTAGRAM @alice_cheongdam




책장 뒤 숨겨진 화려함, 르챔버
르챔버는 청담동에 위치한 ‘스피크이지 바’이다. 스피크이지 바는 1920~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 간판 없이 비밀리에 영업하던 바를 뜻한다. 콘셉트에 걸맞게 르챔버가 위치한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면 비밀스러운 책장이 등장하는데, 그중 상단에 위치한 책 모형을 한 권 누르면 문이 열리는 구조다. 문이 열리면 바깥과는 전혀 다른 화려하고 드넓은 바 전경이 펼쳐진다. 바텐더들의 환대를 받으며 착석하면 커버 차지(인당 1만원) 안내와 함께 메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첫 잔으로 주문한 ‘서커스 콤플렉스’와 ‘래핑 부다’는 메뉴판에 적힌 재료를 보고 맛을 추측해 요청했다. ‘서커스 콤플렉스’는 레몬그라스 피스코와 스파이시한 남미의 향신료 맛이 어울리는 시원한 맛으로, 목넘김이 가벼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래핑 부다’는 이름처럼 부처 모양의 술잔에 담겨 제공됐는데, 연태고량주와 파인애플의 조화로 익숙하면서도 이국적인 트로피컬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잔은 각각 선호하는 맛에 따라 바텐더의 추천을 받아 주문했다. 단맛보다는 드라이한 맛을 즐긴다고 하자, 바텐더는 ‘아마로 프레스코’를 추천해주었다. 호지차에 위스키 베이스, 허브로 만든 리큐르 두가지를 더해 만들었다고 한다. 향긋한 허브의 풍미와 호지차의 맛이 적절한 밸런스를 이뤄 입안을 맴돌았다. 동행인이 주문한 ‘비터스윗 키스’는 오이 베이스의 토닉으로 만든 칵테일로, 잔에 화이트 초콜릿을 리밍해 제공한다. 잔 입구에 리밍된 초콜릿이 단단하게 굳어져 적절하게 달콤함과 리프레싱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올해 아시아 50 베스트 바 50위로 선정된 르챔버는 그동안 꾸준히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온 덕인지 매장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평일 이른 저녁에 가서 웨이팅은 없었지만, 오후 10시 전후가 되자 만석이 됐다. 전화 예약도 가능하다 하니 참고할 것.
INSTAGRAM @le_cha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