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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의 지원을 받아 제작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 · 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하는 ‘우수공예품 지정제도’에 선정된 올해의 작가 5인을 만났다. 전통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이들은 한국 공예의 깊이와 감각을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2025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박수이 작가의 ‘옻칠 바스켓_밭’. 협저탈태칠 기법으로 전통 기물의 미감은 유지하되 현대적 생활 오브제로 재탄생했다.
최근 이전한 방배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수이 작가.
다양한 질감과 색감을 입은 옻칠 식기들.

박수이 작가는 오랜 시간 옻이라는 재료와 함께 살아왔다. 20년 가까이 옻칠을 매만지며 그녀가 바라본 것은 단순한 재료의 표면이 아니라, 그 위에 쌓이는 시간의 결이었다. 칠을 입히고 말리는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 동안, 손끝에 남는 감각은 노동이 아니라 묵상에 가까웠다. “반복은 무감각이 아니라 돌봄의 형식이에요. 표면을 다듬는 동안 마음의 가장자리가 둥글어지고, 날카로운 입자들은 고운 장식으로 변하죠.” 2025년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옻칠 바스켓_밭>은 협저탈태칠 기법을 응용해 완성된 작품으로서, 전통 기물의 미감을 현대적인 생활 오브제로 재해석했다. 한 겹 한 겹 쌓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표면에는 황토분을 섞어 흙의 질감을 살렸고, 금속 선과 구슬로 손잡이를 마감해 단단함과 섬세함이 공존한다. “예전에는 장식적인 부분에 더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생활 속에서 쓰이는 기물로서 그 쓰임에 초점을 맞췄어요. 옻칠의 질감이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바랐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이번 작품은 화병이나 과일 바스켓, 와인 버킷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옻칠 공예의 실용성과 미감을 함께 담아냈다. 그녀의 작업 세계관 중심에는 늘 ‘밭’이 있다. 흙을 덮고 갈아내며 칠을 입히는 과정이 밭을 일구는 일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밭은 흙으로 덮여 있을 때가 있고, 새싹이 자라기도 하고, 잡초를 뽑아야 할 때도 있죠. 그런 변화가 제 작업과 닮았어요. 옻칠을 쌓아가며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을 느낍니다.”

작업에 사용되는 도구들.
화병을 담거나 와인 버킷으로 활용 가능하다.
결을 살리며 세심하게 옻칠을 입히는 과정.

올해 박수이 작가는 우수공예품 지정제도의 지원을 받아 개인전 <물질의 시 The Poetry of Material>을 열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시간을 눕히다 Time, Laid to Ground’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번 전시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2025년 11월과 12월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일지에서 1부 <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과 2부 <사물의 시 The Poetry of Things>를 선보였다. ‘땅이 품은 시간의 표면’, ‘땅의 기억이 형태로 피어나다’라는 주제로 이어진 두 전시는 옻칠의 물질성과 시간의 층위를 회화적으로 확장한 자리였다. 이어 2026년 1월 15일부터 23일까지 일본 교토 소우 Sou 갤러리에서 열리는 3부는 그 여정의 마지막 장으로, 한국 옻칠의 조형성과 깊이를 좀 더 널리 선보일 계획이다. “이번 지원이 없었다면 전시를 세 부분으로 확장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 작업이 전통적인 공예의 틀을 넘어 조형적이고 예술적인 지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실제로 서울 전시 이후 싱가포르 초청 전시로 이어지는 기회가 생겼고, 교토에서 여는 마지막 전시는 그녀의 작품을 국제 무대에 소개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 제도는 단순히 재정적인 지원을 넘어, 작가가 자신의 작업 세계를 발전시키는 데 실질적인 발판이 됩니다. 저 역시 이번 전시를 통해 공예의 확장 가능성을 체감했어요.” 수십 번의 칠과 기다림, 그 반복의 결이 쌓이며 자신만의 ‘밭’을 일구는 박수이 작가는 오늘도 자신의 속도로 공예의 깊이를 확장해간다.

에디터 | 원지은, 문혜준, 원하영
PHOTOGRAPHER |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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