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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루카 니케토가 베니스의 15세기 건물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다. 집, 쇼룸, 살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곳에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지난 26년의 커리어가 함께 겹쳐진다.

호두나무 패널로 마감한 복도 안쪽에 위치한 거실. 루카 니케토가 데 라 에스파다를 위해 디자인한 셀라 라운지 체어를 두었다. 오른쪽 브론즈 조각은 니콜라스 셔리.
거실 안쪽 벽장에는 니케토가 여행 중에 모은 아이템이나 디자인한 작업들을 모아두었다.

디자이너 루카 니케토가 베니스의 15세기 건물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다. 집, 쇼룸, 살롱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곳에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지난 26년의 커리어가 함께 겹쳐진다. “베니스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담은 집이었어요. 가족적이고 친근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죠. 이곳이 사람들이 편안히 머물고, 함께 식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기 바랐습니다.” 디자이너 루카 니케토 Luca Nichetto는 최근 베니스 카나레조 지구의 15세기 건물 최상층에 새로운 공간 ‘카 니케토 Ca’ Nichetto’를 완성했다. 이곳은 그의 새로운 주거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디자인 갤러리, 스튜디오의 철학을 보여주는 쇼룸이자 친구와 클라이언트를 위한 살롱이다. 베니스 무라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오랜 시간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지만, 최근 다시 베니스와의 연결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특히 7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글라스 브랜드 바로비에 & 토소 Barovier & Toso의 아트 디렉터를 맡게 되며 무라노와 가까운 거점이 필요해졌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업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게 됐다. “베니스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한다면 다양한 역할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리빙 쇼룸’처럼 스튜디오의 작업을 실제 삶의 맥락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요. 최근 베니스가 다시 문화적 에너지를 되찾고 있다는 점도 큰 영감이 되었습니다.

입구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주방. 다이닝 테이블 위 펜던트 조명은 니케토가 바로비에 & 토소를 위해 디자인한 발로네.
카키색 우드로 마감해 포근한 거실. 사이드 테이블은 니케토가 디자인한 앤트레디션의 라토, 소파 옆 조명은 스벤스크 텐을 위해 디자인한 퓨사.
최근 바로비에 & 토소 브랜드 최초 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루카 니케토.
단정하고 미니멀하게 마감한 다른 공간과 달리 욕실에는 강렬한 패턴의 팔라디오 모로 테라조를 사용해 포인트를 줬다.

”베니스 도시 자체는 이번 리노베이션에서 가장 큰 도전 과제였다. 물류와 운반 시스템이 극도로 제한적인 도시인 만큼, 모든 가구는 창문의 크기와 대각선 길이까지 계산한 뒤 리프트를 이용해 외부에서 끌어올려야 했다. “결국 이런 물류적 제약이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미적인 선택까지 연결되었죠.” 130㎡ 규모의 복층 아파트는 15세기 등록 문화재 건물의 일부로, 엄격한 보존 규정 아래 기존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 벽을 철거하거나 욕실 위치를 바꾸는 일조차 불가능했기에, 니케토는 구조를 해체하기보다는 두 개의 독립적인 ‘볼륨’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재구성했다. 하나는 어두운 월넛 톤으로 마감해 욕실과 수납을 감추고, 다른 하나는 카키 그린 MDF를 사용해 TV룸과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기존 건축의 시간성과 현대적인 개입이 충돌하지 않도록 절제된 태도를 유지한 셈이다. 입구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선브레이커 월과 산업적인 스테인리스 키친이다. 유약 타일과 스틸 소재를 조합한 주방은 다이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커다란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집의 중심축을 이룬다. 테이블 위에는 니케토가 바로비에 & 토소를 위해 디자인한 ‘발로네 Vallonné’ 조명이 우아하게 달려 있다. “나이가 들수록 집의 중심은 결국 주방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공간이니까요. 대부분의 일이 그곳에서 일어나죠.” 월넛 캐비닛 라인을 따라가면 영국 작가 니콜라스 셔리의 브론즈 조각과 함께 거실이 이어진다. 

마스터 침실에는 울트라프라골라 거울을 배치해 유쾌함을 더했다. 침대 프레임은 노르딕 오브 베니어로 맞춤 제작한 것. 창가 앞에 위치한 잭 라운지 체어는 롤프 벤츠.

알루미늄 선반에는 니케토가 여행하며 수집한 책과 오브제가 빼곡히 채워져 있고, 그가 디자인한 셀라 라운지 체어는 에로 사리넨의 아이코닉한 웜브 체어와 나란히 놓였다. 욕실 역시 인상적이다. 얇은 알루미늄 패널과 대담한 팔라디오 모로 테라조 패턴이 대비를 이루며, 미니멀한 구조 안에 강렬한 리듬을 만든다. 2층 침실 공간은 아래층보다 한층 차분하고 사적인 분위기로 구성했다. 첫 번째 침실은 지노리 1735를 위해 디자인한 비너스 라운지 체어를 중심으로 라운지 같은 무드를 연출했고, 또 다른 방에는 맞춤형 데스크를 배치해 작업 공간의 성격을 더했다. 마스터 베드룸에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영향이 짙게 드러난다. 노르딕 오크 베니어로 제작한 플로팅 구조의 침대와 캐비닛은 자연 소재의 질감을 강조하며, 에토레 소트사스의 울트라프라골라 거울 조명이 공간에 예상치 못한 유쾌함을 더한다.

루카 니케토는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바로비에 & 토소의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총괄하며, 오랜 유산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이식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면모를 증명했다. “700년 이상의 유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것,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정교한 다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어쩌면 ‘카 니케토’ 역시 그런 태도의 연장선에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15세기 건축적 시간 위에 현대적인 가구와 기능을 영리하게 덧입힌 공간. 그가 이 집에서 꿈꾸는 미래는 의외로 소박하고 낭만적이다. “1900년대 초,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파리의 오래된 카페 같은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창의적인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며, 그 순간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 말이죠.” 사람들을 연결하고, 대화를 만들고, 과거의 유산 위에 현재의 삶을 얹어내는 것. 이 집은 니케토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본질을 투영한다. 베니스의 유구한 시간 위에 세워진 이 사적인 살롱은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니케토가 지노리1735를 위해 디자인한 비너스 라운지 체어.

또 다른 침실에는 작은 책상을 두어 서재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