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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은 개인적으로 가장 부산스러운 달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의 생일이 포함된 일주일을 ‘생일주간’으로 부르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 올해는 그간 코로나19로 만남을 미뤄뒀던 지인들을 만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생일주간에 할애했다. 특히 서로의 생일 당일을 꼭 챙겨주는 친구들 무리가 있는데, 서로의 선물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지라 매년 골치를 앓는다. 그중 한 친구가 챙겨준 선물이 올해 꽤나 인상깊어 소개한다. 그가 조심스레 내민 것은 술잔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춘 강정은 작가의 잔. 가야 시대 토기에서 모티프를 딴 묵화 시리즈의 일종으로, 유리로 되었지만 하단에 독특한 질감처리를 해 대비 효과를 준 것이 특징. 로스팅한 나무가루로 거친 텍스처를 표현하는 동시에 7번 이상 옻칠을 해서 이 같은 결과물을 낸 것이라고 한다. 이 잔의 핵심은 술을 따른 뒤 바닥을 보일 때다. 선물로 받은 제품은 온더록 형태인데, 투명한 갈색의 액체가 바닥을 보일 즈음 마치 작은 묵화를 그려놓은 듯한 바닥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 이 묵화가 바로 로스팅한 나무가루로 구현해낸 것. 입과 코로 술의 향과 맛을 즐기고, 아쉬울 즈음 바닥에 자리한 작은 작품을 보는 듯해 눈까지 즐거워지는 선물이다. 여담이지만, 이 잔을 구하는 데에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잔이 딱 하나만 남아있어 구하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작가에게 직접 사정을 설명하고 급하게 공수했다고 으스대며 말하는 친구덕에 더욱 행복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에게 한잔 대접하려 한다. 마감아, 빨리 끝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