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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세계.

(The Self in Others), 2024, Mixed media, Dimension variable

삶의 시작과 끝은 모두 ‘흙’과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 주체와 타자, 기억과 소멸. 시오타 치하루는 언제나 그 사이를 탐색해온 작가다. 그에게 인간의 육체는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정체성과 영혼은 또 다른 자연의 일부로 흩어지는 요소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는 지난 25년에 걸친 작가의 사유가 가장 응축된 방식으로 펼쳐지는 자리다. 생명과 상실, 정체성과 순환에 대한 그의 질문은 더 이상 개인적인 고백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생명의 기원과 귀환에 대한 보편적인 서사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다시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간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업은 언제나 ‘실’에서 출발한다. 붉거나 검은 선들은 개인과 세계, 기억과 감정, 자아와 타자를 연결하고 단절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맥락을 가시화한다. 지난 전시 에서 흰 실과 배, 드레스 같은 사물들을 통해 ‘기억’을 다룬 작가는 이번엔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더욱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Second Skin), 2023, Wire, 35 × 45 × 50(h)cm.

(Cell), 2024 – 2025, Glass, metal wire, thread, Dimension variable.

생명과 존재를 단일한 서사가 아닌 순환적 구조로 사유하는 이번 전시는 개인적 상처의 언어를 넘어선 우주적 차원의 질서에 대한 시각적 번역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설치작품 〈Return to Earth〉는 수미터 높이에 이르는 공간 전체를 뒤덮는 검은 실과 흙의 구조물이다. 천장에서 얽히고설킨 실이 마치 신경계처럼 바닥의 흙더미를 향해 흘러내린다. 생명의 흔적이자 죽음의 은유인 장면에서 관객은 ‘인간은 자연을 관망하는 존재가 아닌, 그로부터 비롯된 존재’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의 유리 조각 연작 〈Cell〉은 더욱 내밀한 차원의 질문을 던진다. 항암 치료 중 만들어진 이 작업은 영혼의 그릇으로서의 몸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담고 있다. 작품 재료인 유리와 철사는 단단하고 고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열이나 압력에 의해 다시 변형 가능한데, 이는 고통 속에서도 재생과 순환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생명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파괴와 생성이 반복되는 순환 과정이며, 죽음 또한 끝이 아닌 새로운 생성을 향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Connected to the Universe), 2024, Thread and ink on canvas, 33 × 33cm.

(Return to Earth), 2025, Installation: Rope, earth.

“우리는 종종 우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단지 그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흙(Earth)에서 태어났고,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작가 노트에서 발췌한 일부 문장이다. 이는 슬픔이나 절망이 아닌, 수용과 순환의 언어로 읽힌다. 결국 전시명 는 시오타 치하루가 오랜 시간 품어온 하나의 문장인 셈이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