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의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1977년 유영국이 남긴 이 말은 그의 회화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일 것이다. 작가의 회화 속 날카로운 선과 단단한 색채가 화면 안에서 공존할 때, 우리는 실제 산보다 더 선명한 내면의 지형을 마주하게 된다. 그에게 산은 고향 울진에서 바라본 자연의 기억이자, 평생 붙들고 다듬어온 소재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는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가 60여 년에 걸쳐 쌓아올린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다. 유화 115점을 포함해 부조, 사진, 드로잉, 아카이브 등 총 170여 점이 소개되며,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미공개작까지 함께 공개된다.

전시는 1964년을 기점으로 삼는다. 마흔아홉의 유영국이 생애 첫 개인전을 열고, 그룹 활동보다 개인 작업에 집중하기로 결심한 해다. 동료들이 프랑스와 뉴욕으로 떠나던 시기에도 그는 한국에 남았고, 시대의 속도와 거리를 둔 채 매일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추상을 다듬어갔다. 전시는 이 결단의 순간에서 출발해 1930년대 실험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1960~70년대 추상의 절정과 만년의 심상 추상으로 나아간다. 이후 전형적인 연대기적 구성을 벗어나, 거장의 시간을 재조립하는 다섯 파트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한 작가가 자연을 재현의 대상으로부터 해방시켜 자신만의 추상으로 바꾸어간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유영국의 회화는 강렬하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강렬한 색채는 화면 안에서 균형을 이루고, 산의 능선처럼 보이는 선들은 구체적 풍경을 암시하는 동시에 하나의 질서 안에 놓여 있다. 전시 후반부에서는 유영국의 산이 ‘마음의 풍경’으로 깊어지는 과정이 도드라진다. 그는 심장박동기 시술을 받은 후 여러 차례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집 안 작업실에서 출퇴근하듯 작업을 이어갔고, 조수 없이 자신의 손으로 캔버스와 마주했다. 강렬한 색과 기하학적 질서로 구축된 화면 위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이 흐르지만, 그 너머에는 생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이 스며 있다. 이 시기 그가 그려낸 ‘산’은 결국 작가 안에서 고요히 완성된 심상이 아닐지.

유영국의 산은 자연인 동시에 삶의 태도다. 그의 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한 화가가 평생에 걸쳐 붙든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한 시대의 격랑을 지나온 예술가가 끝내 도달한 단단한 생명력이자, 오늘의 우리가 다시 바라보게 되는 내면의 좌표다.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10월 25일까지 열린다.
자료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유영국미술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