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해보려 합니다.” 음악과 미술 사이를 유영해온 작가 홍승혜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분명했다. 자유와 해방, 그리고 열린 결말.

현재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이동 중>에서는 총 세 가지 키워드의 ‘움직임’을 다룹니다.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평면 작업,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 작업, 그리고 관객이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입체 작업이 함께 놓여 있죠. ‘움직임’을 중심적 개념으로 과거 작업들을 다시 모아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분류되더군요. 아이디어는 전시의 시작점이기도 하지만 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되기도 합니다.
1997년 처음 픽셀을 작업에 사용한 이후, 그림판과 포토샵에서 출발한 작업은 이후 일러스트레이터, 아이패드, LED 패널 등으로 확장했죠. 이런 변화 속에서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개념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개념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유기적이란 단어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과거에는 수평과 수직으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서 그리드가 깨지거나 갈라지는 등 노이즈를 통해 유기성을 추구했다면, 벡터 환경으로 넘어오면서 곡선이나 사선과 같은 좀 더 직접적인 유기적 형태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이테크로 작업 범위를 넓혀가면서도 여전히 개러지밴드 같은 ‘로우 테크’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로우 테크를 고집한다기보다는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그 도구의 한계에 도달하면 더 나은 도구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하이테크에 대한 반감도 전혀 없습니다. 농담처럼 ‘15세기엔 유화도 하이테크였을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웃음)

이번 전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음악이죠. <셰이프 트윈_네잎 클로버> 작업을 제외한 나머지 작업 모두에는 홍 작가님이 직접 만든 음악이 포함되어 있다고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저는 늘 움직임의 동력으로서 음악을 필요로 했습니다. 제가 즐겨 듣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선곡한 음악을 배경으로 ‘The Sentimental’ 시리즈 9개를 만들었고, 그러던 중 한 작가 친구가 아이패드가 제공하는 ‘개러지밴드’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막상 사용해보니 정말 장난감처럼 재미있더군요. 그 이후 직접 음악과 사운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간담회에서 지속적으로 음악적 아름다움, 그리고 음색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전시를 위해 작품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하며 ‘악보’를 그릴 때, 머릿속에 구상한 큰 그림은 무엇인가요? 음악적 아름다움이란 음색, 볼륨, 하모니, 리듬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절묘하게 만나는 순간 탄생합니다. 미술 역시 작곡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하나의 전시 안에서 개별 작품의 색상과 크기를 고려하고 작품 간 간격을 조절하며, 동시에 상영되는 영상 작품의 볼륨을 조절하는 일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이 그러하듯 왜 그렇게 하는지 언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선언처럼 도입한 ‘움직임에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문장은, 미술에 작용하는 음악의 추동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픽셀, 도형, 스누피, 이모티콘처럼 친숙하고 가벼운 기호들을 작업으로 가져오기도 하죠. 그 친숙함에서 어떤 힘을 발견하곤 하나요? 추상적 도형에서 출발한 작업에 어느덧 인지 가능한 사물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월 속에서 어느덧 나만의 조형적 문법이 형성된 것 같았고, 그 문법으로 좀 더 다채로운 얘기를 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된 사물들은 결코 제 경험과 무관한 대상이 아닙니다. 어떤 이야기인지는 그동안 제가 해온 선택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표정 연습>에 대해 설명할 때, 이모티콘은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들에게 ‘유연한 관계’를 만들어준다고 말하셨죠. 반면 예술은 전통적으로 감정의 심층을 드러내는 매체로 여겨져왔습니다. 문득 이러한 이모티콘의 단순성과 예술의 복잡성이 홍승혜라는 예술가 안에선 어떻게 공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복잡성과 단순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복잡함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취한 방법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들어 이모티콘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시각 예술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의 순화’와 ‘관계의 회복’은 제가 지속적으로 꿈꿔온 예술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이모티콘의 형태를 빌려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상태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정지 이미지, 영상, 가구, 설치를 병치하며 ‘이동’의 의미를 획득하죠. 이동은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한다는 긴장도 동반합니다.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역설적 표현이 보여주듯, 자유와 긴장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구속이 있어야 해방도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긴장이 없다면 자유와 생동 역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AI 이미지가 순식간에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처음부터 끝까지 의도가 개입된’ 작업은 오히려 느리게 움직이고 오래 조율된 이미지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느림’이 특히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 움직이는 속도가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속도에 휘말려 길을 잃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인간의 판단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느림이 좀 더 사색할 여유를 주는 건 맞지만 저는 ‘완급의 조절’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의 <액자형 부조>나 이동 가능한 가구들은 관객이 작품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배치와 이동에 개입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열린 결말’을 의도한 이유가 있나요? ‘열린 결말’은 누구에게나 흥미롭지 않을까요? ‘닫힌 결말’은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상태처럼 보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야말로 도파민을 자극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은 새로움을 향해 직선적으로 전진하기보다 과거 작업을 다시 불러내고, 분해하고, 다른 매체로 옮기는 방식으로 진화해왔습니다. 결국 전시 제목 <이동 중>은 작가님의 작업 방식은 물론, 전체적인 작업 세계와 이력을 포괄하는 단어라는 생각도 드네요. 제 작업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내내 반복했던 ‘자유’, ‘해방’, ‘열린 결말’은 결국 제가 지향하는 예술관이자 삶의 방식입니다. 그것들은 결국 ‘유기성’이라는 단어로 조용히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 대해 “디지털 세계로 진입한 이후 전개해온 기하학적 이미지의 움직임에 관한 보고서”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근 30년간 이어온 작업을 다시금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한데, 그 시간을 다시 마주하며 어떤 생각이 가장 크게 남았나요? 개인전할 때마다 저는 늘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음악이 제 작업과 삶을 움직여온 결정적인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해보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