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 스튜디오 이악크래프트를 이끌고 있는 전현지 작가는 번잡한 도심 생활을 뒤로하고 주말이면 춘천으로 훌쩍 떠난다. 자연과 함께하며 작가로서의 제2막을 시작한 이곳은 끊임없이 영감이 흐르는 샘물과도 같은 장소다.

자연의 색을 담은 세라믹 스튜디오 이악크래프트를 이끌고 있는 전현지 작가.

새롭게 시작한 백색 조형물 작업.
한남동 작업실에 이어 춘천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했는데, 이곳에 작업실을 지은 이유가 뭔가요?
원래 고향이 춘천이에요. 부모님도 저도 전원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언젠가 집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요. 대룡산 풍경을 품은 작은 주택 단지예요. 이 위치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어요. 탁 트인 시야가 확보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어요.
똑같이 생긴 두 채가 앞뒤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윗집은 부모님이 살고 계시고 아래는 제 작업실이에요. 사실 작업실을 지을 계획은 없었어요. 그런데 두 개의 부지로 나눠 있어서 건축법상 한 동을 또 지어야만 했죠. 그리고 때마침 한남동 작업실의 공간적인 한계도 느끼고 있었고, 최근 개인 작업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던 터라 겸사겸사 작업실을 추가했어요.

서가건축에서 설계한 춘천 작업실은 높은 박공지붕으로 개방감을 살리고 창을 여러 개 내어 실내에서도 자연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젊은 건축가들로 구성된 서가건축에서 설계했다고요?
네. 여러 사무소를 알아봤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미팅한 곳이 서가였어요. 알고 보니 이곳 소장님 역시 춘천에서 나고 자라셨대요. 워낙 춘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설계하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 같아요. 두 채 모두 드넓은 마당을 품고 있고 다락방 같은 분위기를 줄 수 있는 박공지붕이 포인트예요.
설계 과정에서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작업할 때 거슬리지 않는 동선이나 구조에 특히 신경 썼어요. 이곳에서는 부피가 큰 작업을 할 예정이라 끌고 다닐 때 바닥에 걸리는 게 없어야 했고 입구도 작품을 실어 나르기에 넉넉하게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잔디를 깔고 갖가지 식물과 나무로 조경을 마무리한 앞마당.
앞뒤로 널찍한 마당이 있는 것도 눈에 띄던데요.
앞마당은 잔디를 깔고 뒷마당은 마사로 덮었어요. 잔디밭에서는 유약 작업을 하고 뒷마당에서는 먼지가 나는 작업을 주로 해요. 지대도 높거니와 나무로 촘촘히 가려져 있어 가만히 앉아 작업할 때면 정말 풍경밖에 안 보여요. 마음이 평온해지고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작업실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최근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고요?
아무래도 한남동 작업실에서는 브랜드인 이악크래프트를 신경 써야 하니까 다른 일을 하기 힘들더라고요. 좀 더 작가로서 개인적인 조형물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벌써 시작한 지 10년이 된 이악크래프트는 사용성에 초점을 맞춘 실용적인 테이블웨어라면 개인 작업은 제가 도자로 표현하고 싶은 것, 도자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실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악크래프트를 등에 업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 실용성보다 조형성에 의미를 두고 작업한 다양한 신작.
- 실용성보다 조형성에 의미를 두고 작업한 다양한 신작.
유연한 곡선이 돋보이는 백색의 도자네요. 작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시작은 일부러 색을 싹 뺐어요. 형태적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흙이라는 소재가 얼마만큼 늘어나는지 실험해봤어요. 흙이 자연스럽게 늘어지고 처지면서 생기는 곡선을 담았어요. 계속해서 흙을 쌓아 올리면서 그 속도를 조절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최대한 인위적으로 형태를 만들지 않으려 했어요. 흙의 덩어리를 쌓아 올리는 작업이 건축적인 과정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능이 없는 조형물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이악크래프트에서 워낙 실용성에 치중한 테이블웨어를 하다 보니까 이 또한 화병으로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기능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화병처럼 생겼지만 입구가 막혀 있는 것도 일부 있어요. 점차적으로 기능성을 잃어가는 것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오히려 예술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거죠. 작가로서 작은 일탈 같은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부피가 큰 작업을 하기 편리하도록 구조와 동선에 특히 신경 썼다. 테이블 이동이 용이하도록 바퀴를 달았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 나갈 예정인가요?
우선 단색을 주제로 작업할 계획이에요. 백색으로 시작해 점차 색으로 넘어가려고 해요. 처음은 깨끗한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그다음은 블랙을 생각하고 있어요. 흑백 사이의 새로운 것을 발견해보고 싶어요.
다가오는 연말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작년에 크리스마스 세라믹 오너먼트 수업을 했어요. 올해는 항아리를 만들어 그 위에 오너먼트를 함께 연출해보려고 해요. 아직 세분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협업 프로젝트도 계획 중이에요.

흙을 쌓아 올리며 자연스러운 형태를 잡는 과정을 거친다.
춘천 작업실로 오면서 심리적인 변화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춘천이 분지거든요.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어 어딜 봐도 산이에요. 또 저 멀리 정면에 보이는 큰 산이 삼악산인데, 노을 질 무렵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리가 정화되는 기분이에요. 그러한 리프레시가 작업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요. 작업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