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만나면 진탕 마실 테고, 집에 가봤자 뻔하게 마시겠지.
적당히 근사하게 취하고 싶었던 7월의 밤, 호텔 깊숙이 숨겨진 바의 문을 슬그머니 열고 들어섰다. 쿠바? 멕시코? 여하튼 그 언저리 어딘가에 도달한 듯, 고막이 터질 것처럼 강렬한 열대의 음악이 귓가를 때렸다. 앞과 뒤가 깊게 파인 옷을 입고 진한 립스틱을 바른 여자들. 그리고 오직 그 여자만이 세상의 전부인 듯한 몸짓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남자들. 노란색 조명 아래 반짝이는 그들을 은밀히 감상하며 싱가폴슬링을 주문했다. “날씨랑 무척 잘 어울리는 술이죠? 덥고, 습하고. 마치 싱가폴 같잖아요.” 찰스 H(02-6388-5000)의 윤태은 바텐더가 싱그러운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롱 글라스에 담긴 세 개의 투명한 얼음 사이로 옅은 주홍빛의 액체가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와인도 아닌데 괜히 잔을 흔들어보고, 빛에 비추며 법석을 떨었다. 참 신기하다. 고작 한 잔인데, 그 안에는 생각하는 여름의 맛이 모조리 들어 있었다. 파인애플 주스, 라임과 체리, 오렌지 리큐르, 베네딕틴…. 본래 칵테일은 2~3개의 베이스를 기본으로 하기 마련이지만, 싱가폴슬링은 꽤나 많은 술이 섞인다. 그럼에도 무척 맛있다. 1915년에 싱가포르 래플즈 Raffles 호텔에서 만들어졌다느니, 롱바의 바닥에는 사람들이 먹고 버린 땅콩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느니, 그리고 그 껍질이 액운을 막아주는 의미가 있다느니. 술을 마시며 바텐더에게 듣는, 칵테일에 대한 여담을 듣다 보니 여흥은 쉽사리 달아올랐다. “여기, 몇번 오시지 않았어요?” 한 잔이 두 잔, 두 잔이 세 잔쯤 되었을 때 지나가던 바텐더가 친절한 미소로 물었다. 그냥 그런 척. 슬쩍 웃으며 애매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노련한 척 보이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여느 주당들은 싱가폴슬링이 술이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으나, 에이. 여름이니까. 핑계대기도 참 좋은 계절이다. 싱가폴슬링이 아니라면 다이퀴리나 사우스사이드피즈, 마이타이 같은 것들은 어떨까. 여름의 칵테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잠도 오지 않는 불면의 밤, 약간의 알코올은 필요한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