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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되새기되 현대적인 감각으로 빚어낼 수 있도록, 한국의 중심 서울에서 현시대의 한식을 선보이고 있는 소설한남의 엄태철 셰프.

찹쌀과 엿기름, 늙은호박으로 만든 조청에 우유만을 더해 제조한 아이스크림. 세 가지 보리튀밥, 계피전병과 수박씨정과를 곁들였다. / 유자화채. 배와 유자 속, 유자 껍질을 채썰어 접시에 담은 뒤 꿀로 만든 화채 국물을 부었다. /개성약과, 잣사탕, 타래과(매작과), 말차와 팥앙금으로 만든 앙금 과자로 이루어진 다과 디저트.

소설한남의 다이닝 공간. 한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벽면이 돋보인다.

카메라를 보고 미소짓는 엄태철 셰프.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접한 요리가 한식일 것이다. 그만큼 한식에 있어서는 각자의 입맛과 주관, 역사와 취향이 있다는 뜻인 동시에, 한국에서 선보이기 어려운 요리가 한식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처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태철 셰프의 관심사는 오직 한식이었다. 한식을 더 넓은 세상에 알리고 싶은 포부를 처음 품은 것도 그 시절이다. 이후 품 서울, 모수 등을 거친 엄 셰프가 2018년 처음 문을 연 소설한남은 한식의 정체성과 뿌리, 식문화를 주연 삼아 이를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해가는 곳이다. 소설한남 속 ‘소설’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문학의 양식 중 하나인 소설처럼 한식에 엄태철 셰프의 상상력을 더한 한 편의 소설 같은 음식을 선보이겠다는 의미, 두 번째는 한자 소설(素設)처럼 수수하고 정갈한 본연의 한식을 선보이겠다는 뜻을 지녔다. 마지막은 영문 이름 ‘So Seoul’인데, 한국의 중심 서울에서 현시대의 한식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전통 한식보다는 모던 한식을 요리하고 있지만, 재료나 맛에 있어서는 그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늘 고민하고 있어요. 요리를 조금 변형하더라도 한국의 장으로 간을 맞추려 하고, 흔한 재료이더라도 되도록이면 한국의 것을 쓰려 합니다. 디저트 경우 케이크나 무스가 손님 선호도에 좀 더 맞을 수 있지만, 한식을 먹고 나서 서양의 디저트를 먹는다는 데에 이질감이 조금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 좀 더 한국적인 맛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소설한남의 대표적인 디저트 중 하나는 시즌마다 구성이 바뀌는 다과다.

프라이빗한 룸 벽에는 노기쁨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갤러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매장 곳곳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했다.

소설한남의 등심 요리. 취나물과 만가닥버섯 위에 한우채끝등심구이를 먹기 좋게 썰어 담아냈다. 곁들이는 소스에는 대추와 간장, 등심을 넣어 갈비찜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미국과 스페인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경력을 쌓던 시절에도 엄태철 셰프의 마음속엔 오직 한식뿐이었다. 요식업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그와 관련된 노하우를 한식에 적용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컨템포러리 음식이 발달한 동시에 요리의 전통을 지키는 스페인에서 쌓은 경험은 한식의 정체성을 잃지 말자는 다짐을 되새기게 해줬다.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매력은 무엇이기에 이토록 한 분야만 확고하게 파고드는 것일까? “다양성이라 생각해요. ‘한국인 자체가 먹는 것에 대한 진심인 민족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거든요. 소금만으로도 충분히 간을 맞출 수 있는데 일부러 콩이랑 소금을 사용해 메주나 장을 담그잖아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고스러운 일인데도, 조금 더 건강하고 풍부한 맛을 내고 싶어서 오늘날까지 장을 담그고 있는 거죠. 김장도 마찬가지고요. 또 계절 절식이 발달해 시즌마다 먹는 음식이 다양하고, 생일처럼 특별한 날을 축하할 때도 음식을 통해 하고요. 이 모든 면에서 한식의 다양성을 볼 수 있습니다.” 엄 셰프가 생각하는 다양성 안에는 한국만의 식문화도 포함되어 있다. “쌈을 싸 먹는 건 우리의 문화잖아요. 그 안엔 좋은 기운을 복주머니에 담는다는 의미가 있기도 한데, 이런 한식 식문화도 다이닝 신에서 보여주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실제로 소설한남의 메뉴 중에 쌈을 한입 요깃거리로 변주한 메뉴가 있기도 했고요. 특정한 음식이나 재료만 한식이 아니고, 이런 식문화도 한식으로서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한식의 가치를 전개하려는 엄태철 셰프의 노력은 2022년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미쉐린 1스타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옥돔 요리. 조개 육수와 미역, 오징어 먹물로 만든 소스에 고추 오일과 고수 오일을 곁들였으며, 볶아낸 줄기콩 위에는 참숯에 구워낸 옥돔을 올렸다.

미쉐린 1스타의 의미는 ‘요리가 훌륭하여 들를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다. 미쉐린의 스타 선정과 더불어 세계 시장에서 나날이 굳건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한식의 위상 덕에 소설한남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의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 예전에 레스토랑을 방문한 이들이 소개한 지인들도 찾아오곤 한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한식을 선보이고 싶다는 어릴 적 목표에 한층 가까워졌지만, 지금은 만족하기보다는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다. “우리가 추구하는 한식의 정체성을 담은 음식과 서비스를 보여드리고, 더 발전한 모습도 보여드려야죠. 요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닌 포부를 이루기 위한 과정을 올해도 계속해서 밟는 게 목표입니다.” 새해 마음가짐을 묻자 굳건하게 대답한 엄태철 셰프였다.

프라이빗 룸의 손잡이를 장식한 김현성 작가의 작품.

노기쁨 작가의 도자 오브제는 공간에 한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소설한남의 테이블 세팅. 소설 책의 형상을 한 메뉴판이 눈에 띈다.

소설한남의 내부. 천장을 장식한 버드나무 조형물 역시 김현성 작가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