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보다 깊이를 택한 뉴욕의 말차 전문점을 소개한다.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1층 카운터에는 맞춤형 정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 Michael Carbone
뉴욕은 요즘 말차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 말차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 소위 ‘힙스터’ 카페들이 말차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앞다투어 선보이면서부터다. 팬데믹 이후에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젠지 세대’의 트렌디한 음료로 떠오르며 도심 곳곳에 말차 전문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차의 본질에 충실한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맨해튼의 노호 NoHo에 지난 4월 문을 연 12말차 12Matcha는 유행과 조금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교토 근교 우지에서 5대째 차를 재배해온 홋타 가문과 일본 최고의 차 감정사 하루히데 모리타가 손잡고 차 한잔에 담길 맛과 향을 빚어냈다. ‘12’라는 숫자는 별자리와 영적 상징, 그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는 12Hz 뇌파에서 착안했다. 매년 첫 수확한 찻잎만 손으로 따서 섬세하게 볶아, 차 본연의 풍미와 향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지하 테이스팅 룸. 은은한 조명 속에서 집중도 높은 시음을 즐길 수 있다. © Michael Carbone

말차 바스크 치즈 케이크. © Michael Carbone

시그니처 말차 라테. © Michael Carbone
공간 설계는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 시귀 Ciguë가 맡았다. 19세기 말 지어진 주철 건물을 개조하며,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차를 마시는 고요함과 집중의 미학을 젠 Zen 감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하나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는 말차 제조 과정처럼 이들 역시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시귀 팀은 직접 우지를 찾아가 차밭과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다도에 참여했다. 그렇게 몸으로 익힌 경험을 설계에 녹여 불필요한 장식 대신 맛을 최적화하는 공간을 완성했다.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1층에는 표면을 매끄럽게 마감한 짙은 녹색 라바 스톤 바 카운터가 길게 놓이고, 그 위 차 사발과 차선이 가지런히 자리한다. 옆에 나란히 놓인 대형 유리 용기 안에는 활성탄을 이용해 물맛을 조율하는 맞춤형 정수 시스템이 마련됐다. 지하에는 원목 가구 좌석을 넉넉히 배치했고, 은은한 조명의 테이스팅 룸에서는 한층 집중된 시음을 즐길 수 있다. 빠른 유행을 좇아 겉모습만 흉내내는 말차 스토어가 늘어나는 가운데, 12말차는 우지에서 보고 익힌 맛과 과정을 느리고 진득하게 지켜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