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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은 갖추되 긴장감은 덜어낼 수 있도록. 요리와 와인, 공간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빈호에서 새로운 다이닝의 구조를 제안하는 전성빈 셰프.

갓, 흑마늘, 산나물에 산초 마요, 된장 소스를 곁들인 양고기 요리.
인더스트리얼한 무드가 느껴지는 레스토랑 전경.

록 음악이 흐르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전성빈 셰프와 김진호 소믈리에가 이끄는 빈호 VINHO는 바로 이 실험성에서 출발한다. 이곳에서는 정제된 코스 요리가 이어지지만 공간에는 불필요한 긴장감이 없고, 파인 다이닝의 형식은 갖추되 획일성에 머물지 않는다. 요리와 와인, 음악과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장소. 빈호는 그렇게 경계를 흐리는 방향에서 출발했다. 그 출발점에는 두 사람이 밍글스에서 함께 일하던 시간이 있다. 요리사 출신인 김진호 소믈리에는 주방의 상황을 항상 이해하고 살피려 했고,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빈호에 대한 논의는 밍글스 이후, 전성빈 셰프가 도쿄 플로릴레쥬에서 퇴사하고 돌아온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2022년 7월, 두 사람의 이름 끝 글자를 나란히 딴 ‘빈호’가 문을 열었다.

빈호의 전성빈 셰프.
찰기 있는 무늬오징어에 샐러리악 커드와 유청을 더해 완성한 요리.

일본 츠지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한 전성빈 셰프는 밍글스를 비롯해 오사카 라 심, 도쿄 플로릴리레쥬 등 저명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그가 여러 레스토랑을 거치며 깨달은 것은 요리법이나 레시피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였다. “일본에서 근무할 때는 레시피가 거의 없다시피 했어요. 셰프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있는 게 전부니,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야 했죠. 잘 정리된 레시피 책이 많지만, 알랭 뒤카스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대단한 요리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중요한 건 스스로가 요리와 식재료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러한 인식은 곧 빈호를 설계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손님들의 다이닝 경험은 예약한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거예요.” 하나의 식재료를 단일한 방식으로 소비하기보다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태도 역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김진호 소믈리에의 취향으로 완성된 다양한 셀렉션의 와인.
공간 한쪽에는 좀 더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룸이 마련되어 있다.

빈호에서 셰프와 소믈리에가 동등한 관계를 전제하는 만큼, 메뉴 개발 또한 역할을 명확히 나누기보다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저와 김진호 소믈리에는 그저 레스토랑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덕에, 때로는 요리보다 와인이 코스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이러한 인식 덕분에 메뉴 개발 역시 한쪽이 주도하기보다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새롭게 구성한 메뉴에 어울리는 와인이 먼저 제안되면, 세프는 그에 맞춰 요리를 보완하거나 다른 와인 옵션을 함께 고민하며 조율한다.

귤과 캐모마일로 완성한 아이스크림에 귤젤리와 귤칩, 홍시, 허브, 귤오일을 더한 상큼한 겨울 디저트.

캐주얼하지만 가볍지 않은 빈호만의 균형은 공간에서 비롯된다. 빈호의 공간은 의도적으로 열려 있다. 화장실을 제외한 공간 대부분이 하나로 이어지고, 주방과 홀의 경계 역시 흐릿하다. 그래서 요리사는 손님의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손님은 궁금한 점을 바로 묻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손님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게끔, 캐주얼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음식과 와인의 퀄리티는 최상으로 유지하는 게 전제 조건이었지만요.” 요리와 와인, 주방과 홀, 직원과 대표 사이의 경계가 존재하는 대신, 모든 요소는 이곳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라 리스트, 미쉐린 가이드 상패가 눈에 띄는 레스토랑 전경. 5 공간 한쪽에는 좀 더 프라이빗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룸이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균형 위, 3년 반의 여정을 지나온 그에게 미쉐린 1스타라는 성과가 더해졌다. 이 성취는 하나의 이정표이되 결코 도착점은 아니다. 전성빈 셰프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로 향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지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지, 무엇을 더 해보고 싶은지도 선명해졌고요. 매년 트렌드가 바뀌면서 제 취향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어요. 처음 레스토랑 열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재미있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그는 여러 종류의 사이드 디시를 개발해보겠다는 한해 목표는 이루었다고 돌아봤다. 이제 그의 관심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 있다. 코스는 코스대로, 단품은 단품대로 각각의 성격을 극대화해 분리해보는 것. 그것이 지금의 빈호 안에서 구현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레스토랑 형태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저는 그저 제 자리에서 꾸준히, 하던 대로 성실하게 해나갈 생각이에요. 미식에 대한 국내 손님들의 관심이 커진 만큼, 오히려 더욱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레스토랑을 찾는 분들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갈 수 있도록, 그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 문헤준
포토그래퍼 | 이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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