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컬러와 풍부한 질감이 감도는 뉴욕 아파트. 예술적 감각과 조각적 오브제,
개인적인 추억을 겹겹이 쌓아 완성한 디자이너 매튜 피셔의 집.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 룸. 고전적인 아치형 몰딩은 내추럴 월넛 우드로 마감했다. 벽면은 플래스터 패널로 마감해 은은한 광택이 돋보인다.

무게감 있는 컬러와 곡선 디자인, 다양한 패브릭으로 마감한 거실. 천장 샹들리에는 매튜가 직접 디자인한 것. 창 너머로는 맞은편 빌딩의 구리 크라운 장식이 보인다.
“집은 제 관심사와 경험이 살아 있는 기록물과 같아요. 수집한 오브제, 그 안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소재들이 모여 독자적인 조화를 이루죠.” 조각적인 형태의 석재 작품으로 잘 알려진 뉴욕 기반의 아 티스트 매튜 피셔 Matthew Fisher는 고대 유물에 대한 오랜 탐구와 석재 장인 기술을 결합해, 시간의 무게와 감정을 담아내는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전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기능성을 더해 일상을 특별한 경험으로 전환한다. 최근 그는 맨해튼 남단 강변에 첫 번째 갤러리 M. Fisher를 열어, 전 세계에서 엄선한 천연석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블루 래커로 마감한 캐비닛이 시선을 사로잡는 서재. 스틸 오브제와 메탈 다리의 커피 테이블을 두어 은은한 광택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현관 벽면에는 월넛 우드 패널로 마감했다. 벽 조명과 펜던트 조명은 1960년대 이탈리아 빈티지 제품으로 여행 중 구입한 것.

풍부한 패턴의 인디고 그린 마블 컬러로 완성한 욕실.

석재 기반의 오브제를 디자인하는 매튜 피셔.
남편 케이시와 함께 완성한 트라이베카의 아파트 역시 매튜의 손길과 장인정신, 그리고 추억이 가득 담겨 있다. 울워스 빌딩 서쪽에 약 260㎡ 규모의 이 집은 처음 봤을 때 흰 박스 같은 밋밋한 신축 공간이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울워스 빌딩의 상징적인 구리 크라운이 그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 강렬한 풍경이 이 집을 사랑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였죠. 겸손하면서도 영감을 주는 시선이 공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매튜는 이 집을 특정 시대나 스타일에 가두지 않았다. 그 대신 질감과 복합적인 색채, 그리고 개인적인 기억이 담긴 오브제를 통해 감정적인 울림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전체 공간은 촉각적이면서도 층위 있는 분위기로 설계되었고, 고딕 장식에서 영감을 받은 색감과 소재가 곳곳에 스며 있다. 색채는 아르누보 스타일과 1920~30년대 장식미술 (Decorative Arts) 시대의 진하고 복합적인 팔레트를 참고해, 기본 색으로 단정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조합으로 구현했다. 소재 역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예를 들어 파우더 룸의 사암 세면대는 부부가 여러 번 여행한 유타-애리조나 국경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현지에서 직접 들여온 사암으로 맞춤 제작했다. 디자인은 석재를 큐빅 블록에서 절단한 뒤 남은 아치형 형태에서 착안한 것으로서, 첫 석재 소싱 여행에서 발견한 것이 반영됐다.

좋아하는 여행지에서 영감을 얻어, 독특한 컬러와 질감의 마블로 제작한 파우더룸 세면대.

그린 마블과 골드 프레임으로 포인트를 준 욕실 세면대.

높이와 사이즈 등 세심하게 신경쓴 안방의 드레스룸.

뉴욕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침실. 벽면 패널과 침대 헤드보드는 맞춤 제작. 패브릭은 짐 톰슨.
공사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도전은 어두운 월넛 우드로 완성한 거실 천장. 영화 세트 디자이너 세드릭 기븐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 천장은 모든 판재가 퍼즐처럼 맞물리는 기하학적 패턴을 구현해야 했다. 미세한 건물 구조의 오차를 반영하며 완성된 이 천장은 장인의 기술이 빛나는 공간의 중심이 되었고, 그 아래에는 매튜가 직접 디자인한 황동 샹들리에가 리드미컬한 빛을 흩뿌린다. 의외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곳은 메인 드레스룸이다. 아르데코에서 영감을 받아 대칭과 비례를 살리고, 사용자의 동선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손이 닿는 높이, 옷 길이, 거울 주변과 가죽 마감 문 디테일까지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았다. 블루 래커 캐비닛이 있는 서재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남편이 좋아하는 미드나잇 블루로 감싸 몰입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물감이 번진 듯한 패턴의 석재 벽면은 공간에 평온함과 사색적인 기운을 더한다.

문은 모두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은 기하학적인 도형을 넣어 제작했다.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 수직적 그리드가 돋보이는 월 패널이 리듬감을 준다. 조각적인 콘솔 위에는 직접 제작한 마블 오브제들을 두었다.

은은한 금색의 벽지 위로 볼록한 거울 작품을 배치해 공간에 깊이감을 더했다.

안방 침실과 게스트룸 침실. 벽면은 우드 패널로 맞춤 제작. 패브릭은 짐 톰슨의 실크로 제작했다.
세심한 디테일까지 꼼꼼히 신경 쓴 이 아파트에는 부부의 일상이 그대로 녹아 있다. 공사 도중 결혼한 매튜와 케이시는 결혼식 다음 날 가족을 공사 현장으로 초대한 작은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드러난 배관과 전선, 바닥을 가득 덮은 나무 파편, 임시 천막으로 막힌 문까지. 대부분의 가족은 걱정과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지만, 두 사람은 미완의 공간 속에서도 완성된 집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꼈죠.” 그에게 집은 단순히 주거 공간을 넘어 끊임없이 변하며 삶을 반영하는 살아있는 존재다. “공간은 정적일 수 없어요. 사람과 함께 성장하고 변해야 하죠. 이 집도 앞으로 새로운 의미를 더해가며, 우리처럼 변화에 열려 있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우드와 패브릭, 유리와 대리석 등 풍부한 소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멀티 룸.

드레스룸 코너. 공간마다 다양한 패턴의 패브릭과 조명으로 포인트를 줬다.

보라색 칼라카타 대리석으로 마감한 주방 벽면. 하드웨어와 수전은 로만 앤 윌리엄스.

직접 만든 오브제가 집 곳곳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