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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컬렉터를 위해 지어진 은밀한 동굴 같은 집. 광활한 초원의 풍경을 그림처럼 품고, 세월의 흔적까지 공간의 일부로 녹였다. 단순히 휴가용 별장을 넘어, 취향과 감각이 온전히 스며든 안식처다.

통창 너머로 빅토리아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오 폰티 디자인의 암체어와 사이드 테이블은 모두 빈티지 제품. 플로어 램프는 아르테루체.
아프라 & 토비아 스카르파가 디자인한 몽크 체어, 세 개의 갓이 달린 펜던트 조명은 빈티지 제품. 왼쪽의 아카리 조명은 인 굿 컴퍼니.

호주 멜버른을 떠나 북동쪽으로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도시의 질감이 사라지고, 알프스 산맥의 고요한 능선이 시야를 채우기 시작한다. 이곳이 바로 빅토리아 고지대다. 그 언덕 위에는 황야와 오래된 지층의 색을 그대로 품은 한 채의 집이 자리한다. 도시의 속도를 잠시 벗어나기 위한 세컨 하우스로 설계됐지만, 이곳은 휴식처를 넘어 부부의 취향과 삶의 리듬을 담아내는 ‘워킹 하우스’로 완성되었다. 처음에 디자인을 의뢰하며 부부는 설계 방향을 또렷하게 말해주었다. “우리 집에 와서, 우리가 얼마나 과감해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이 말 한 마디에는 주거의 기능과 개인적 취향, 그리고 오랫동안 수집해온 예술품과 가구를 자연스럽게 결합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이 광활한 풍경을 콤팩트한 건축 안에 어떻게 풀어낼지가 가장 큰 과제였다.

광택이 있는 아라베스크 마감 천장 아래 무게감 있는 가구와 빈티지 작품 컬렉션으로 채운 거실. 그린 벨벳 소파는 데파도바, 대나무 암체어는 제르바소니, 버건디 가죽 암체어는 세르지오 로드리게스.
침실에서 바라본 거실 복도. 벽에 걸린 작품 ‘Attention Span’(2023)은 벤자민 바레토.

플랙 스튜디오 Flack Studio는 이 곳을 주변 환경을 품은 집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1990년대 지어진 단층 주택은 놀라울 정도로 전망이 좋았지만 단조로운 평면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재구성되었고, 교차 환기가 가능하도록 벽을 조정하며 빛이 머무는 고요한 공간으로 다듬었다. 전체적인 벽면은 시간과 함께 깊어지는 색감과 독특한 질감을 담았다. 단단한 자연 소재를 중심으로 마모되고 녹슨 흔적 등 세월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변화를 하나의 표정으로 받아들이고, 강한 자연 속에서 오는 긴장감과 따뜻한 생활감이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중 플로어 구조는 움직임의 흐름을 만들고, 빛이 스며드는 깊이에 따라 공간이 수축했다가 다시 확장되는 리듬을 완성한다. 여기에 지오 폰티에게서 영감을 받은 목공 디테일은 구조적 안정감과 클래식한 미감을 더하고, 다양한 질감의 대비는 클라이언트가 수집한 가구와 오브제를 자연스럽게 돋보이게 한다.

안쪽에 마련된 히든 키친. 빨간 벽 타일은 비바 라메고, 대리석은 아르테도무스.
앤티크 브라운과 버건디, 딥 그린 컬러의 대리석 마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주방. 다크 브라운 컬러의 바체어는 놀.
주방 선반 위 그린 보틀과 조개 모양 티팟은 글렌 버클리 작품으로 설리반 & 스트럼프 갤러리.
구리 냄비 사이에 얼굴 모양의 세라믹 오브제를 함께 걸어 유머러스하게 연출했다.

프로젝트 기간이 길었던 만큼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의 컬렉션을 깊이 이해했고, 이를 공간에 자연스럽게 배치할 수 있었다. 세컨 하우스라 해서 기존 집에서 남은 가구를 옮겨온 듯한 느낌은 철저히 배제했다. 그 대신 공간의 구조와 생활 패턴을 반영한 새로운 구성이 이루어졌다. 파우더 룸 추가, 벽난로 방향 조정, 확장된 주방, 올리브 오일을 숙성하는 펜트리 등 실제 생활을 위한 새로운 공간이 더해졌다. 마감재 역시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유럽 오크 바닥은 모로코 타일, 테라코타, 대리석과 조합되며 풍부한 표면감을 만든다. 낮은 천장에도 베네치아 석고가 빛을 부드럽게 확산시켜 여유로운 공간감을 형성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오크, 황동, 검은 아연 마감은 클라이언트의 빈티지 가구 컬렉션과 자연스럽게 조응한다. 데파도바의 그린 벨벳 소파, 지오 폰티 체어, 이사무 노구치 조명, 호주 추상미술 작품들까지. 이 집은 글로벌 디자인과 지역적 감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흐름을 품고 있다.

침실로 연결되는 입구. 라임 컬러의 작품은 벤자민 바레토 작품으로 애니멀 하우스 파인 아츠 갤러리.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디자인한 BIO-MBO 침대, 우드 벤치는 까시나.
프리 스탠딩 난로는 모르소, 에나멜 마감한 벽등은 비에이지 투르기 제품으로 조프리 해티 컬렉션.

이곳의 진짜 매력은 빅토리아 초원의 거친 풍경을 실내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조용한 긴장감이다. 이 집은 주 4일 동안 실제로 ‘살아지는’ 공간이다. 올리브를 수확하고 오일을 만드는 작은 의식, 지는 해와 함께 초원의 색이 변하는 순간, 바람이 남긴 흔적까지 모두가 이 집의 일부가 된다. 잠시 머무는 휴가용 별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는 곳. 사색의 순간과 일상의 리듬이 맞물리는 이 집은 빛과 재료, 그리고 삶의 온도가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콤팩트한 세면대이지만 풍부한 마감재 사용으로 다채롭게 구성했다. 베르데 밍, 로소 르반테 대리석은 모두 아르테도무스. 브라스 마감의 수납장은 알루스테인.
욕실 입구에 둔 암체어와 에나멜 벽등은 조프리 해티 컬렉션. 그래픽적인 작품 ‘Piano’(2021)는 말리 맥마혼.
칼라카타 대리석과 테라조 타일로 마감한 욕실. 욕조에 앉아 초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1990년대 단층 주택을 리노베이션한 이번 프로젝트. 광활한 빅토리아 초원의 올리브 나무 숲을 내려다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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