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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해법을 따르기보다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출발점으로 삼아, 효율과 미감을 동시에 충족시켰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들의 선택이 집 안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패브릭으로 마감한 빈티지 마라룽가 소파와 이탈리아에서 직접 들여온 사이드 테이블. 영국에서 함께 온 반려견 코튼이가 햇살 아래 서 있다.

집 안 거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한강을 향해 시원하게 열린 창이 시선을 붙들었다. 물 위에 맺힌 윤슬의 반짝임 앞에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집은 덩치 큰 가구로 공간을 채우기보다, 실제 생활 패턴에 맞는 가구와 소품을 하나씩 신중하게 선택한 점이 돋보였다. 응당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라이프스타일 기준으로 동선과 효율을 다시 구상한 집. 아파트라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식 안에서 최대한 익숙지 않은 방향을 선택한 이곳은 김영원 씨가 남편, 그리고 반려견 코튼이와 함께 오래도록 꿈꿔온 첫 보금자리다.

“20여 년간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어요. 남편도 영국 유학 시절 만났고요. 영국에 머무는 동안 가방 브랜드 단슬렁을 운영하며 패션 신에서도 활동했죠. 지금은 한국으로 거처를 옮겨 지속 가능한 가방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집은 소유하지 못했지만, 대신 가구와 오브제는 꾸준히 모아왔어요. 그러다 약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하기로 결정했고, 이 집이 남편과 함께 처음으로 매입하고 리모델링한 첫 집이에요.”

거실 벽 한쪽에는 서재로 바로 통과할 수 있는 작은 개구부를 냈다. 천장에는 작은 거울 선반을 더해 위트를 더했고, 코튼이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여행 중 하나씩 모은 독특한 형태의 촛대.

고심 끝에 선택한 이 아파트는 ‘편리함’이라는 이유로 내려진 결정이었지만, 구조만큼은 새롭기 바랐다. “아파트는 편리한 대신 구조가 비슷하잖아요. 최대한 익숙지 않은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아파트라는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다 바꿔보고 싶었어요.” 처음 집을 보자마자 결정하게 된 것도 한강을 향해 시원하게 열린 뷰였다. 탁 트인 풍경 앞에서 부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리모델링 파트너로 이혜인 디자인 스튜디오를 선택한 데에는 오랜 신뢰가 있었다. 두 사람은 과거 같은 업계에서 일하며 알고 지낸 사이로, 취향의 결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큰 방향만 제시했고, 대부분은 믿고 맡겨줬어요. 오히려 그런 태도가 제게도 자유를 준 것 같아요. 워낙 취향이 분명했고, 실험적인 제안도 재미있게 받아들여줬죠.” 이혜인 디자이너가 말했다. 공간 구성에서 가장 큰 변화는 주방과 거실의 경계를 없앤 점이다. 식탁을 두지 않은 것도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다. “우리 부부는 주로 소파에 앉아 식사를 해요. 지인을 초대하는 경우도 많은데, 식탁이 없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각자 편한 자리에 흩어지더라고요. 누군가는 아일랜드에 기대서 먹고, 누군가는 소파에 앉으며 집이 훨씬 자유롭게 쓰이는 느낌이에요.” 거실에 등장하는 두 개의 검정 기둥 역시 이 공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 기둥들이 공간을 나누는 디바이더처럼 작동하기 바랐어요. 장면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공간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죠.” 소재 선택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다. 전체 톤은 두 가지로 제한했고, 바닥과 벽, 천장은 배경처럼 차분하게 정리했다.

스웨덴 브랜드 포보의 마모륨 바닥재를 거실과 주방, 아일랜드까지 이어 시각적 확장을 꾀했다. 거실과 주방 천장을 가로지르는 선 조명은 다비데 그로피 제품.
무라노 글라스 화병과 샬롯 페리앙의 벽 조명.
한강을 바라보며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한 평상.

주방 아일랜드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독특한 패턴의 바닥재는 스웨덴 브랜드 포보의 마모륨 제품이다. “마모륨은 친환경 소재로 질감이 부드럽고, 층간 소음에도 효과적이에요. 보통은 채도가 낮은 색을 추천하지만, 이 집에는 조금 더 진한 노란색을 선택했어요. 결과적으로 집 캐릭터를 결정짓는 중심 색이 됐죠. 블랙 가구와 우드 기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요.” 서재에 마련한 평상 역시 눈에 띄는 포인트. 바닥에 단차를 둔 평상은 구조적 한계를 장점으로 바꾼 결과다. 철거가 어려운 조건을 활용해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창을 바라보며 앉아 있거나 아무 목적 없이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생겼다. 조명 역시 이 집을 설명하는 중요한 장치다. 천장에 박힌 조명을 최소화하고, 간접 조명과 오브제 조명으로 빛의 밀도를 조절했다. “천장에 조명이 많으면 시선이 계속 위로 분산되잖아요. 가능하면 천장을 깨끗하게 두고 싶었어요. 밤에는 조금 어두운 편이지만, 유럽 생활에 익숙한 우리 부부는 오히려 그게 더 편하게 느껴져요.” 여행 중에 모은 무라노 글라스와 대리석 오브제, 멕시코와 지중해 감각이 남은 물건들은 ‘제품력’과 ‘지역성’을 기준으로 신중하게 고른 것인데, 집 안 곳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다. 과시하지 않고, 구조와 디자인을 앞세우기보다 생활을 중심에 둔 이 집을 두고 김영원 씨는 “이제야 집에 대한 한이 풀렸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취향과 삶의 방식이 구조와 흐름에 고스란히 반영된 이 집은 세 가족이 앞으로 함께 살아갈 일상을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타일 벽으로 마감한 욕실. 욕조 크기를 확보하기 위해 변기를 과감히 없앴다.
천장의 틈새 구조를 활용해 선반장을 계획한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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