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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형태와 소재, 전시를 경험하는 방식까지. 페어 기간에 반복적으로 포착된 흐름 15가지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11 아시아의 식탁

두이 한 Duyi Han ‘Alignment’.
최중호의 ‘Not Set’.

젓가락과 소반, 금속 수저처럼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일상 속에 존재해온 생활 기물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밀라노의 ADI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기획한 전시 <서울 라이프>가 열렸다. 전시는 한국의 독상 문화와 좌식 생활을 상징하는 소반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AI와 3D 프린팅, 옻칠과 금속 같은 재료와 기술을 결합해 전통 기물을 새롭게 해석했다. 한편 디자인 플랫폼 S-3가 기획한 <CHOPSTICKS 箸> 전시는 젓가락이라는 동아시아의 익숙한 도구를 통해 중국, 일본, 한국의 생활 문화를 풀어냈다. 최중호 디자이너는 한국 금속 젓가락 특유의 ‘짝을 맞추지 않고 아무 두 개를 집어 쓰는 문화’를 ‘Not Set’으로 드러냈고, 구오 듀오는 한국 수저의 얇고 납작한 형태를 절제된 조형 언어로 발전시켰다. 또 일본 디자이너 쿠라마토 진은 파스타를 젓가락 형태로 변형한 작업을 선보이며 음식과 도구의 경계를 뒤집는 기발한 상상을 보여줬다.

디자인 플랫폼 S-3가 기획한 젓가락 전시.

앤디 & 종 ‘Floating Heritage’.
르쥬 ‘IRI-JEORI’.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Orion’.

12 읽는 럭셔리

아파타멘토와 질 샌더가 함께한 <Reference Library>.
MILAN, ITALY – APRIL 19: Natalia Grabowska and Marine Brutti talk at Prada Frames 2026 day 1 during Milan Design Week at Santa Maria delle Grazie on April 19, 2026 in Milan, Italy. (Photo by Vittorio Zunino Celotto/Getty Images for Prada)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시대 속에서, 유독 책을 읽고, 머무르고, 대화하는 공간이 많아졌다. 패션 하우스들은 제품을 보여주는 대신 텍스트와 담론, 사유의 시간을 새로운 럭셔리 경험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미우미우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미우미우 리터러리 클럽>을 통해 문학과 페미니즘, 욕망에 대한 담론을 이어갔다. 프라다 역시 포르마판타즈마와 함께한 <프라다 프레임>을 통해 AI와 이미지 생산, 시각 권력 같은 주제를 철학자와 건축가, 큐레이터들의 대화로 풀어냈다. 아파타멘토와 질 샌더는 <Reference Library>를 통해 느린 독서 경험 자체를 전시로 만들었다. 관람객은 흰 장갑을 끼고 실제 책을 읽고 넘기며 공간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올해 밀란에서 책은 속도를 늦추고 집중하는 태도 자체를 보여주는 패션 하우스의 새로운 문화적 행보로 떠올랐다.

‘Politics of Desire’라는 주제로 열린 미우미우의 문학 클럽.
‘Politics of Desire’라는 주제로 열린 미우미우의 문학 클럽.

13 도시를 점령한 대형 풍선

10 꼬르소 꼬모를 점령한 몽클레르의 문어 풍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초대형 조형물이 도시 곳곳을 점령했다. 익숙한 사물을 과장된 스케일로 확대하거나, 전시장 자체를 거대한 놀이 공간처럼 바꾸는 설치가 특히 많아진 것. 몽클레르는 <Puffy Summer>를 주제로 10 꼬르소 꼬모 건물 전체를 거대한 문어 조형물로 감쌌다. 브랜드 특유의 패딩 볼륨감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형태의 해양 생물로 확장한 설치 전시를 선보였다. 특히 건물 파사드를 타고 내려오는 거대한 문어는 이번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힌 장면 중 하나다. USM 역시 스뇌헤타 Snøhetta, 아나벨 슈나이더 Annabelle Schneider와 함께한 <Renaissance of the Real>을 통해 거대한 팽창형 구조를 선보였다. USM 모듈 시스템 위로 부드러운 텍스타일 막이 덮이며 마치 숨 쉬는 유기체 같은 공간을 만든 것. 관람객은 이 안을 직접 걸으며 빛과 사운드, 촉각을 경험했다.

스뇌헤타와 아나벨 슈나이더, USM이 협업해 선보인 팽창형 구조의 거대 전시장.

14 먹음직스러운 음식 열풍

끌로에와 폴트로노바 협업으로 공개한 1970년대 토마토 체어.
거대한 과일 회전목마로 관람객을 동심으로 불러들인 아르켓 × 라일라 고하르 전시.

토마토와 달걀, 채소처럼 익숙한 음식 형태가 거대한 오브제로 등장했다. 복잡하고 무거운 담론의 전시들 사이에서, 밀란 디자인 위크를 가장 유쾌하게 환기시킨 공간 중 하나는 라일라 고하르와 아르켓의 협업 전시였다. 어른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전시장들과 달리, 이곳에는 아이 손을 잡고 온 가족과 유모차를 끈 관람객에 반려동물까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채소와 과일을 닮은 거대한 설치물을 더한 회전목마 앞에서 관람객들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공간을 즐겼다. 또 패션 브랜드 끌로에는 폴트로노바와 함께 1970년 크리스티앙 아담의 ‘토마토 체어’를 다시 선보였다. 잘 익은 토마토를 그대로 확대해놓은 듯한 형태의 의자는 래디컬 디자인 특유의 유머와 조각적 존재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뉴욕 디자이너 에니 리 파커는 달걀과 에그컵에서 착안한 거대한 조명을 공개하며, 익숙한 식재료를 건축적인 오브제로 확장했다.

에니 리 파커의 달걀 조명.

15 브랜드 경험이 된 F&B

온통 마리메꼬 제품으로 가득 찬 카페, 오스테리아 피오리 디 마리메꼬. © Alberto Strada

수많은 전시장을 누비다 보면 잠시 쉬어갈 카페가 절실해진다. 하지만 아무 공간에나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디자인 러버들의 공통된 생각일 터. 올해는 쉬는 순간조차 디자인 경험이 되는 브랜드 카페들이 도심 곳곳에 샘터처럼 자리했다. 마르니는 1936년부터 이어져온 밀라노의 명소 ‘파스티체리아 쿠키’를 에스프레소 바와 아페리티보 문화를 중심으로 한 카페로 만들었다. 스트라이프 차양과 도트 패턴, 컵과 컵받침, 패키지와 유니폼까지 모두 마르니의 디자인을 입혀서 말이다. 마리메꼬는 ‘오스테리아 피오리 디 마리메꼬’를 통해 보다 감각적인 방식의 미식 공간을 선보였다. 꽃 패턴은 테이블웨어와 텍스타일뿐 아니라 향기와 음료, 아페리티보 메뉴까지 확장됐고, 정원과 테라스, 보체 게임이 어우러진 공간은 작은 휴양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역사적인 명소, 파스티체리아 쿠키에서 열린 마르니 카페. © Alberto Strada
© Alberto Str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