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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69층 집에 예술 작품과 맞춤 가구, 프랑스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모였다. 장 누벨과 티에리 데스퐁이 완성한 건축적 토대 위에 컬렉터의 취향을 입힌 레지던스 69.

해 질 무렵 창밖으로 펼쳐지는 맨해튼의 풍경. 69층 높이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롯한 뉴욕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온다.
움베르 & 포예의 에밀 움베르와 크리스토프 포예. 뒤로 보이는 브론즈 스크린은 두 디자이너가 이 집을 위해 디자인하고 프랑스 주조 공방 포도르 Fodor가 제작한 것.

센트럴파크부터 빼곡한 빌딩 숲까지, 뉴욕 풍경이 사방의 통유리를 가득 채운다. 맨해튼을 발 아래 두고 있는 이곳은 미드 타운의 초고층 주거 타워 ‘53 웨스트 53’의 69층에 자리한 레지던스다. 창가에 가까이 다가서면 도시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게 되는 높이지만 실내 풍경도 만만치 않게 풍성하다. 둥글고 풍성한 소파와 브론즈 테이블, 결이 살아 있는 벽면과 조각 작품이 널찍한 거실을 채우고, 그 너머로 뉴욕 건축물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움베르 & 포예 Humbert & Poyet 역시 처음부터 전망에 모든 것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처럼 특별한 전망을 가진 프로젝트에서는 바깥 풍경이 모든 것을 압도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피했어요. 시선이 도시와 실내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도록 인테리어에도 충분한 존재감과 개성을 주고 싶었습니다.” 약 536㎡ 규모의 이 집은 모나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움베르 & 포예가 뉴욕에서 처음 선보인 레지던스다. 건축가 에밀 움베르 Emil Humbert와 인테리어 건축가 크리스토프 포예 Christophe Poyet가 2008년 설립한 스튜디오로 소재와 가구, 예술 작품은 물론 이를 만드는 장인들과의 협업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건축부터 특별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모마 MoMA 바로 위로 약 320m 솟은 이 타워는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설계하고, 티에리 데스퐁 Thierry Despont이 인테리어를 맡았다. “처음부터 우리 원칙은 기존 건축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장 누벨과 티에리 데스퐁에 이어 움베르 & 포예까지, 서로 다른 세대의 프랑스 디자이너가 한 건물을 사이에 두고 작업하게 된 셈이다.

피에르 오귀스탱 로즈의 소파와 에르완 불루의 브론즈 커피 테이블을 배치했다. 중앙의 펜던트 조명은 아틀리에 드 트루프의 페드레갈 랑테른 톨 조명.
창가에 마련한 작은 다이닝 공간.
석재와 브론즈의 조합이 돋보이는 욕실.
아틀리에 드 라 토레 가 스크레이핑 기법으로 완성한 벽과 이탈리아산 레드 애시 바 캐비닛.
아테리어스의 카운터 스툴과 움베르 & 포예가 푸에나와 협업한 오팔린 글라스 조명을 배치했다.

움베르 & 포예는 사선으로 뻗은 구조체와 높은 천장, 전면 유리창 등 기존 건축의 특징을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 안에 손으로 마감한 벽과 맞춤 가구, 브론즈 디테일과 예술 작품을 들였다. 거실 소파와 다이닝 테이블은 프랑스 가구 브랜드 필립 위렐 Philippe Hurel과 별도로 제작했으며, 피에르 프레이 Pierre Frey와 메타포르 Métaphores, 노빌리스 Nobilis의 패브릭을 사용했다. 브론즈 가구와 러그 역시 여러 장인과 아틀리에의 손을 거쳤다. “건축이 아파트에 장대한 스케일을 부여한다면 장인정신은 그 안에 인간적인 온기를 더합니다.” 멀리 보이는 스카이라인과 달리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는 패브릭과 브론즈, 플라스터처럼 질감이 풍부한 소재를 배치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과정도 조금 남다르다. 그토록 장대한 맨해튼 뷰가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은 바로 현관. 어두운 톤으로 감싼 입구를 지나야 비로소 거실이 열리고, 센트럴파크와 도시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쪽에는 거실과 다이닝 공간, 바와 라이브러리가 이어지고 남서쪽에는 한결 차분한 서재를 두었다. 안방은 침실에서 휴식 공간과 드레스룸, 욕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현관은 이 집에서 맨해튼이 잠시 사라지는 유일한 곳입니다. 장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주기 전에 앞으로 펼쳐질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먼저 느끼기 바랐어요. 도시는 집 안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구조와 맨해튼의 풍경이 어우러진 침실. 커스텀 베드에 캐시미어 블랭킷을 더하고, 침대 발치에는 포르타 로마나의 자코메티 스툴을 놓았다.
창을 따라 배치한 데스크와 라운지 체어로 꾸민 홈 오피스.
부드러운 곡선의 소파와 낮은 테이블로 꾸민 마스터 스위트의 라운지. 벽에 걸린 작품은 막달레나 슈머-팡고르 Magdalena Shummer-Fangor
패브릭과 플라스터를 겹겹이 쌓아 완성한 헤드보드가 중심을 이루는 마스터 침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마주하는 라운지.

움베르 & 포예는 이곳을 ‘컬렉터스 홈’이라고 부른다.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와 레이븐 하프문 Raven Halfmoon 등의 작품부터 아틀리에 드 라 토레 Atelier de la Torre와 함께 개발한 빛에 따라 미묘하게 색감이 달라지는 벽 마감, 플라스터와 패브릭을 겹겹이 쌓아 공예 작품처럼 완성한 안방의 커다란 헤드보드까지. 가구를 들이고 남은 벽에 작품을 거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순서부터 달랐다. “컬렉터의 집은 아름다운 오브제로 가득 채운 공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술 작품과 맞춤 가구, 희귀한 소재와 건축적 요소가 모두 같은 중요성을 갖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죠.” 낮에는 유리창 가득 맨해튼의 건축물이 펼쳐지고, 해가 기울면 브론즈와 유광 벽면 위로 빛이 번진다. 전망을 하나의 디자인 소재로 삼은 레지던스 69층의 하루는 그렇게 맨해튼과 함께 흐른다.

장-클로드 뒤레의 브론즈 콘솔 위에 조각 작품을 올리고, 피에르 프레이의 패브릭으로 마감한 암체어.
수작업 마감 특유의 깊이와 질감이 돋보이는 벽 마감.

EDITOR | 원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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