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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별장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출발점으로 변모한 토스카나의 17세기 농가.  크로스비 스튜디오 특유의 금속 마감과 그래픽은 오랜 석조 주택을 실험적인 생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금속 마감이 돋보이는 주방 너머로 드넓은 올리브 농장이 펼쳐진다.
해리 누리에프의 태피스트리 소파, 크로스비 스튜디오가 제작한 크롬 큐빅 의자, 맞춤형 칵테일 테이블과 백미러가 놓인 거실.

“마치 엽서 속 사진 같죠.” 크로스비 스튜디오 Crosby Studios 창립자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해리 누리에프 Harry Nuriev는 지난해 리노베이션을 마친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저택을 보고 이와 같이 말했다. 목가적 풍경을 지닌 이 저택은 해리 누리에프가 파트너 타일러 비링거 Tyler Billinger와 그의 가족을 위해 작업한 공간이다. 가족의 별장으로 쓰이는 공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크로스비 스튜디오의 핵심 철학이기도 한 ‘트랜스포미즘 Transformism’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신, 외면받거나 잊혀가는 오브제에 새로운 목적과 쓰임을 부여해 그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행위를 뜻한다. “이 개념은 단순한 재료 조작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낡고 해진 소파든, 방치된 올리브 나무든 어떤 대상 안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죠.” 17세기 지어진 석조 주택의 틀은 그대로이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크로스비 스튜디오 특유의 금속 마감과 그래픽, 조각적 개입이 더해져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기존 목재 판자를 강돌로 대체하고, 투박한 조명이 있던 자리엔 샹들리에를 설치한 덕에 불규칙한 표면과 입체감을 보는 재미도 있다. 누리에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크로스비식 터치’가 가미된 셈이다. 일반적으로 마이너하게 여겨지는 실용적인 재료들이 이 집에서는 중심을 차지한다. 4m 길이의 다이닝 테이블과 벤치, 스테인리스 스틸에서 출발한 실험성은 120장의 재활용 티셔츠로 장식한 침대를 통해 직물로 확장한다. 태피스트리 문양을 재해석한 AI 기반 벨벳 패턴, 특수필름 마일라 Mylar의 질감을 닮은 천 또한 그 연장선의 일부다. 

타일러 비링거와 해리 누리에프.

4m 길이의 다이닝 테이블, 거친 석재와 금속 마감에서는 크로스비 스튜디오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마일러 질감의 직물과 헤드라이트를 조립해 만든 샹들리에로 꾸며진 방.

오랜 시간 방치됐던 밭의 생태적 복원 작업 또한 진행되었다. 조경가 안나 안드레예바 Anna Andreyeva와 협업해 무성하게 뒤엉킨 52만m² 규모의 올리브 밭을 정비하고, 오래된 나무를 가지치기하며 식물이 다시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토양 상태를 안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건강한 농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식재 또한 더했다. 집 고치는 일이 실내의 표면과 구조를 다듬는 과정이었다면, 땅을 회복하는 일은 멈춰 있던 터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4년 가까운 복원 과정을 거치고, 비링거는 다시 한 번 크로스비 스튜디오와 함께 또 다른 도약을 준비했다. 이곳에서 수확한 올리브 오일과 함께 홈 굿즈, 가구까지 폭넓게 전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라 테라 드 니나 La Terra di Neenas를 론칭한 것이다. 크로스비 스튜디오는 인테리어 디자인에 사용한 그래픽 라인, 거울처럼 반사되는 표면과 재료를 다시금 브랜드 전반에 적용했다. 올리브와 가지를 넣어 만든 비누, 브랜드 모티프가 새겨진 거울 같은 식기, 올리브 오일 캔으로 만든 의자 등이 컬렉션을 이룬다. 

수작업으로 도배한 강돌이 기존 바닥의 나무 판자를 대체했다.

크로스비 스튜디오의 크롬 커버를 씌운 침대.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활용한 오브제가 돋보인다.

집 안에서 금속과 직물, 오래된 토대와 새로운 오브제가 공존하듯, 브랜드 또한 농업적 재료와 일상의 사물을 낯선 형태로 다시 제안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해리 누리에프는 한때 트랜스포미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진정한 과제는 새로운 발명에 있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각입니다. 지금은 혁신을 외칠 때가 아니라 감수성과 공감, 그리고 솔직한 응답을 통해 과하게 밀어붙여온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다시 빚어내야 할 때예요.” 본래 목적을 다한 대상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기존 가치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일. 새로운 결과물을 창작해내는 것만큼이나 어렵기에 더욱 가치 있는, 크로스비 스튜디오의 창작 방식이 이곳에 녹아 있다.

메인 침실의 침대에는 약 120장의 재활용 티셔츠로 만든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거친 물성과 현대적인 실험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거친 물성과 현대적인 실험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
52만㎡ 규모의 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1600년대 처음 세워진 농가의 석조 파사드.

EDITOR | 문혜준
PHOTOGRAPHER | 제니아 필라토바 Jenia Filat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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