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눈의 미소녀 캐릭터와 반짝이는 색채로 밝고 사랑스러운 세계를 그려온 작가 미스터. 그의 천진한 화면에 담긴, 어두운 시대를 견디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대형 회화, <그때의 꿈을 아직 꾸고 있어>에는 드물게 당신의 자화상이 등장한다. 내 작품은 보통 관람객과 2차원 애니메이션풍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지만, 때로는 나 자신을 캔버스 안에 함께 등장시키곤 한다. 관람객과 캐릭터, 그리고 작가인 나 사이 삼자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작품의 구조를 더욱 다층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자화상은 중세 시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회화의 전통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왔는데. 이러한 화풍으로 작업한 지 어느덧 25년가량 됐다. 유학 시절 정형화된 회화를 그리는 방식에 의문을 품었고, 아시아인이자 일본인으로서 동시대 일본 문화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타쿠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몸과 머릿속 깊이 스며든,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을 제외한 나 자신은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약 10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과거 전시에선 동일본 대지진 등 재난을 겪은 일본 상황을 표현한 혼돈스러운 분위기의 작품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 작업은 다시 희망과 환희에 가까운 정서가 느껴진다. 그 사이 당신의 작업 세계는 어떤 변화를 거쳤는가? 나는 본래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빠지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만 계속 머물다보면 심연에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하려는 편이다. 그럼에도 일부 작품에는 작업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이미지가 일부 투영되곤 한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시기엔 폭주족이 오토바이에 ‘동북지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불량한 이미지로 인식되던 폭주족과 연대의 메시지 사이, 서로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장면이 인상 깊어 한동안 그 문구를 작품에 자주 사용했다. 최근엔 화면에 반짝이는 효과를 자주 쓰곤 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며 힘을 얻듯, 내 작품을 통해 계속해서 희망찬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
특히 작품 속 캐릭터들의 눈에 담긴 밝고 희망찬 이미지가 인상적인데.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엔 나 자신이 투영돼 있다. 모든 캐릭터의 눈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세계가 담긴 동시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 또한 비쳤다. 그 대상은 상황에 따라 매번 바뀌지만 평화나 사랑이 될 수도, 단순히 즐거운 음악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당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작품을 보는 순간,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따뜻함이나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모에(萌え)’라는 개념 역시 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모에는 가상의 캐릭터를 향한 애정과 보호 본능, 정서적 유대감을 뜻하는 일본 개념인데, 내 작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를 귀엽게 여기는 것을 넘어, 무언가를 아끼고 보살피고자 하는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 캐릭터마다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름을 정할 때 특별히 고려하는 기준이 있는가? ‘노도카’, ‘미나오’, ‘리사오’처럼 일본적인 인상을 지니면서도 쇼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골랐다. 쇼와 시대는 쇼와 천황 재위 기간(1926~89)의 시기로 전쟁과 패전, 전후 경제 부흥과 버블 경제에 이르는 일본 현대사의 격변을 아우른다. 이와 동시에 영어권에서도 비교적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정적인 제목도 눈에 띈다. 전시명 <계절이 두고 간 것. 음? 날이 개었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일종의 일본적인 ‘풍정’을 담고자 했다. 풍정은 일본 특유의 정서와 회포를 불러일으키는 정취를 뜻한다. 짧은 제목이지만 그 안에 풍경과 상황, 나아가 움직임까지 담아내고 싶었다.
때로 세일러복 입고 여학생 코스프레를 하는 행위는 작가 ‘미스터’ 작업의 연장선인가? 그렇다. 10여 년 전 매우 힘든 일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당시에는 감정을 어떻게든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기에 여장과 코스프레를 시작하게 됐다.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캐릭터가 되어 잠시나마 ‘나’라는 존재를 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 같다.

©Mr./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Seoul, and London.

활동명 ‘Mr.’는 야구선수 나가사마 시게오의 별명 ‘미스터 자이언츠’에서 착안했다고 알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성 젠더의 상징과 미소녀 작품 세계관이 대비를 이루는 재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미소녀를 그리는 작업과의 대비 역시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의외성이 작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전쟁과 재난의 소식이 여전히 세계를 뒤덮고 있는 지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희망과 밝음을 그려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어두운 뉴스가 많은 시대이기에 오히려 작품에는 희망을 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내 작품을 보고 조금이라도 ‘내일도 힘내보자’는 마음이 들거나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이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밝게 만들 수는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가능성을 믿으며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미지 제공: 리만머핀 서울




